마음을 햇볕에 바싹 말려보기로 했다

그림자가 없는 계절은 없기에

by 청은



우리 엄마가 한부모 가정인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고 해서..





스물여섯의 겨울,

첫 남자친구에게 받은 이별 통보에 볼이 얼얼했다.

그 칼바람 같은 말이 매섭게 뺨을 때리고 가더니

이내 심장을 서걱 베었다.


여차하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준비를 했었건만,

붙잡을 수 조차 없는 말에 두 팔이 축 늘어졌다.

시큰거리는 콧방울은 한파 때문인지,

쌀쌀한 독언 때문인지

나는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얼빠진 표정만 지었다.


한 때 자기 명의인 집의 시세와 평수를 읊어대며

결혼하자고 속살거렸던 남자는,

나에게서 발견한 그늘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며

서늘하게 일갈했다.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결핍이나 상처 따위는

묵은 때처럼 벗겨져 내려갈 거라 믿었건만.

남들과 비슷한 구색을 맞추고, 표정을 따라 입으면서

구저분한 굳은살들을 감추려 노력했건만.


그저 지나친 낙관에 지나지 않았는지.

허탈한 깨달음이 서럽게 밀려왔다.


머뭇거리며 털어놓았던 가정사를 듣고서,

가만히 안아주던 남자의 너르고 온화한 품은

고작 한 번의 사철을 지나자마자 볼품없이 식었다.


나의 첫 연애는 다시 봄을 맞지 못한 채

설원에 덮였다.


외마디의 이별 사유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메아리가 되어

난폭하게 소용돌이쳤다.


폭설이 헤집고 간 자리엔 쓸쓸히 빈 터만이 남았다.

나는 모든 소음이 지워진

적막한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갇혀

꼬리표처럼 늘어진 그림자만 더듬었다.


소홀함, 성격 차이, 가치관 문제 같은

뻔한 이유였다면 뭐가 달랐을까.


주홍글씨처럼 짙게 그을린 그늘은

어떤 빛을 쫓아도

어느 조명 아래에 숨어도

가려지지 않는 것일까.


이미 그렇게 태어났고

결국 이렇게 자라 버린 나는,

평생토록 닿지 않는 빛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걸까.


태풍의 눈이 걷히자

연일 세찬 폭우가 쏟아져 마음을 눅눅하게 적셨다.

나는 저기압 아래에 망연히 선 채로,

불어나는 원망과 자책을 있는 대로 빨아들였다.


웅덩이에 비친 그림자가 몸집을 부풀리고

이내 거대해진 무저갱이 발치에 닿았다.


나는 그 구정물 속에서

추하고 처량한 내 모습을 보았다.

눈동자가 일렁이는 수면과 함께 요동쳤다.


불현듯, 축축이 달라붙는

옷감의 거친 섬유가 불쾌했다.

밭 끝에서부터 감겨드는 어둠이 꺼림칙해

연신 몸을 떨었다.


나는 이 심연의 밑바닥 속으로 가라앉고 싶지 않다.

나는 절대 이 그늘이 나를 좀 먹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꽁꽁 언 땅 속에 묻은 마음을 꺼내어

햇빛에 말려보기로 결심했다.




안개가 걷히자 뚜렷하게 떠오른 건

의외로 분노였다.


우리 아빠는 아직도 나를 공주라고 부른다고.

매일 아침마다 기상 예보로 알람을 자처하고,

매일 밤마다 잘 자라는 인사를 자장가 삼아 보낸다고.


나는 남들보다

아빠의 사랑을 두 배로 머금고 자란 자식이라고.


웬 호랑말코 같은 놈이 그 마음을 짓밟고 간 것에

벼락같은 분노가 치솟았다.

치미는 욕지기들이 번쩍이며 하늘을 갈랐다.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엔 잔해들이 남았다.

부지런히 비질하고 가지런히 담아 버리면서

어질러진 집 안을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그의 취향이 아닌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던 베이지색의 옷을 사고

안 울린다고 했던 오렌지색 립스틱도 발랐다


상투적인 위로의 제목이 유난히 눈길을 끄는 책들을

홀린 듯이 구매한 다음,

그와 자주 갔던 카페에 앉아 읽었다.

사막에서 물을 찾는 낙타처럼

촉촉한 활자의 호수에서 위로의 문장을 찾아 긷고,

마음을 향해 연거푸 부었다.


어느 날엔, 잘 알지도 못하는 기도문을 종일 외우다가

다음 날엔, 싱잉볼의 묵직한 울림과 함께

명상에 잠겨 들었다.


내친김에 핑계 삼아 미뤘던 요가학원을 끊어

들숨에 미움을 삼키고, 날숨에 원망을 내보냈다.

찌꺼기진 채 뭉쳐진 상념들이

숨소리에 섞여 나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달이 차고 기우는 수 없이 많은 밤을 지나

마침내, 나는 무더운 여름의 하지를 맞았다.


정오의 햇살이 유난히 따스한 날,

옥상에 고이 널어 둔 옷들이

덕분에 바싹 말려져 기분 좋게 바스락거린다.


덩달아 함께 산들거리던 마음은

볕을 잔뜩 받아 훈훈한 온기를 내뿜는다.

반질반질 윤기가 도는 표면엔

눈부신 반사광이 윤곽을 타고 흐른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하늘엔

언뜻 희미한 무지개가 비친다.


시간이 지나, 나는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뽀송하게 말려 오랫동안 고이 보관해 둔

마음을 꺼내어 새로운 사랑에게 건넸다.


신기하게도

그는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와 만나는 사계절 동안

그의 그늘 한 점조차 발견한 적이 없었다.


밝고, 장난기 많고, 쾌활했던 남자는

비슷한 인영에 이끌려 내게 왔던 것일까.

아니면, 음영이 걷힌 내가

비로소 맑은 마음으로 비추게 된 사람인 걸까.


내가 태연자약한 척하며 상처를 내보였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소매를 걷어 보이며

나에게도 같은 상처가 있노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단지, 조금 흉이 졌을 뿐인 자국인 것처럼.


두 번째 사랑도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소멸했지만,

덕분에 나는

흉터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법을 깨달았다.


평범한 가정이라는 건,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라는 건

누가 정의를 내리는 걸까.


겨울엔 그림자가 길어지고, 여름엔 짧아지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처럼.

사람은 모두 크고 작은 그늘을 달고 사는 것 아닌가.

누군가에겐 겨울이 길기도,

또 누군가에겐 여름이 길기도 할 뿐.


냉기를 맞고 갈라지던 상처에서 새순이 돋고,

바싹 말라가던 마음이 단비를 만나

생을 연장하는 것처럼.

우린 모두 사계의 순환 속에서

아픔과 극복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다.


나를 심고 싹을 틔운 것은

부모의 역할이었을지라도.

들판 한복판에 아무렇게나 내려앉은 나를,

푸릇하게 가꿔내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의 몫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희망차게 다짐한다.

나의 자리는 내가 쓸고 닦는 만큼 빛나는 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