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나던 날, 현관에 옷 무덤을 만든 아빠

검은 유화의 시간을 지나, 맑은 수채화의 시간으로

by 청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의 집으로 도망쳤다.

동이 트지도 않은 어스름한 새벽,

엄마는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차에 태웠다.

쫓기는 사람처럼 연신 뒤돌아보던 엄마의 불안이,

잠이 덜 깬 나에게도 찐득하게 묻어왔다.


며칠간 이어진 싸움은

서로를 날카롭게 생채기 냈고,

기름과 물처럼 사이를 갈랐다.


부모님이 엉망으로 칠해버린 네 식구의 캔버스는

검은 안료로 위태롭게 뒤덮였다.


나는 외할머니의 집에 머물며,

한숨을 토로하는 엄마를 뒤에 두고

들고 나온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온통 검기만 한 종이에 색색의 물감을 덧대어본다.


어설픈 손을 있는 힘껏 움직여보아도

잉크는 여전히 검은색을 벗어나지 못했다.


며칠 만에 혼자 집으로 돌아온 나에겐,

엄마의 손이 아닌

먹물을 머금은 종이뭉치가 들려있다.


아빠의 메마른 낯과

베란다에서 새어 나오는 담배 연기가

쓸쓸하게 나를 맞이했다.


세피아 빛 음영에 짙게 눌려진 집 안은

내려앉은 공기로 텁텁했다.


아빠는 회사도 나가지 않은 채 엄마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던 어느 날엔가는,

옷장 속 엄마의 옷을 죄다 꺼내어 현관에 쌓아 올렸다.


어린 날의 나는,

옷걸이째로 아무렇게나 널브러트려 놓는

아빠의 기행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이내 현관은 옷더미에 파묻혔고,

나와 아빠는 그 침전된 절망이 만들어낸

철창 속에 갇혔다.


아빠는 그곳에서,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기다렸다.


옷감으로 덧입혀진 무채색의 무덤에서

아빠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차마 들춰보지 못하고,

그 소리를 신호 삼아 함께 울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외할머니와 함께 돌아온 엄마는

문 앞의 헝겊더미를 맞닥뜨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빠가 세운 성벽은

기다리던 이가 돌아오자마자 허물어졌다.


그날 이후,

현관을 막고 있던 옷더미는 자취를 감췄지만,

그 자리엔 아빠의 뒷모습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 많던 옷들은,

단 한 벌도 옷장 속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아마 완전한 이별을 고하고,

홀로 집을 나선 엄마의 손에 들려

함께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그림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죽어버렸다.


네 식구가 그려졌던 액자 속엔

세 사람만이 남았다.


너덜 해진 헝겊으로 쌓아 올린 아빠의 요새는,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빠는 현관에 마음의 벽을 세운 채,

다가올 이별을 유예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죄책감을 덧 그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언젠가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 천 조각들은

여전히 마음속에 낡은 채로 묻혀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기억은 아빠의 무덤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는 말해주어야지.


이제는 가만히 울지 않고 아빠를 꺼내주겠다고.

함께 손을 잡고 문을 열어보자고.

감옥 같은 건 용서라는 이름으로

쉽게 부술 수 있는 거라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자고.


꼭 그렇게 말해주어야지.


세 식구 앞에 놓인 캔버스의 여백은

영롱한 수채화 그림으로 채워질 것이다.


운전석엔 오빠가, 조수석엔 아빠를 태우고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담기고,

옷더미로 쌓은 성 대신 반짝이는 모래성이 그려지고,

아쿠아 마린색 바다의 시원함을 묻히면서.


때때로, 예상치 못한 불순물이 섞여

색이 혼탁해지더라도.

투명한 물을 붓고 또 부어,

우리는 분명 원래의 색을 찾아갈 것이다.


흔히들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다고 하지만,

세월에 굳어 갈라진 틈이 생기면

그 사이로는 물이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겹겹이 쌓여

유화처럼 굳어진 가족들의 흉터 위로,

빨간약이라 쓰인 수채화 물감을 발라준다.


건조한 기름막이 맑은 물기를 머금으면,

무겁게 말라붙은 과거가

물빛을 닮은 미래를 향해 서서히 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