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토마토가 가장 맛있게 익어가는 시간
서울시의 어느 오피스텔,
이곳은 나라는 토마토가 익어가는 비닐하우스다.
단단한 껍질과 달큼한 과육으로 중무장한 나는,
벌써 5년 차 싱글 토마토다.
그런 내게 지인들은
지겨우리만치 끊임없이 묻는다.
연애는 안 하냐,
왜 아직 솔로냐,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냐.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설탕 뿌린 말로 걱정하고
꿀에 절인 소개팅 따위를 제안해도,
내겐 그다지 영양가 없는 재료로 여겨질 뿐이다.
사람들은 나 홀로 익어가는 삶이 외로울 거라,
혼자 보내는 주말이 밍밍할 거라
지레 걱정하곤 하지만.
나는 이미 완숙인 토마토다.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단단하고,
완연히 영글어 싱그러움을 과시하고 있는 과채이다.
나의 본연의 맛과 가치는 이 자체로도 완전하기에,
굳이 당분을 집어넣지 않아도
농축된 과실의 향과 깊은 풍미를 발산한다.
그저 삶이 더 풍부하게 무르익도록,
헛헛한 위장에 갓 짜낸 향긋한 올리브오일을
한 바퀴 둘러주면 된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싱싱한 생기와 결 고운 윤기는
삶에 탱글탱글한 탄력을 더해주니까.
질 좋은 고기를 닮은 내 커리어는
가끔 좀 퍽퍽해서 목이 메일 때도 있지만,
반드시 곁들여야 하는 필수 단백질이다.
미우나 고우나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배어 나와
통장 잔고를 반짝거리게 만들어주는
보람찬 주식이기도 하다.
사실 나의 맹물 같은 하루에
감칠맛을 끓어 올려주는 건 따로 있다.
때때로 이탈리안과 프렌치를 담은 전시회를 음미하거나
생생한 콘서트에서 비타민을 채우기도 하고,
짠맛 가득한 드라마에 펑펑 울기도 하다가,
올리고당에 폭 담긴 멜로 영화에 말랑한 심장을 느낀다.
특히, 요즘은 알룰로스나 스테비아 같은
대체 감미료가 온 식탁에 널린 세상이니
굳이 하얗게 정제된 설탕을 뿌리지 않아도,
나는 엇비슷한 단맛을 한 숟가락 맛볼 수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해마다 갖가지 나라의 향신료들이 후미를 자극하여
동서남북의 식당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해산물 스튜의 본고장을 거닐 수도 있고
소바의 열도에서 미식을 즐기기도 한다.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가르며
허브의 향취를 묻히고, 파슬리의 텍스처를 입는다.
이런 갓 구운 바게트 빵처럼 포근한 취미들이
간의 세기와 영양의 균형을 맞춰주니,
나는 그저 예정된 일상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아 절로 침샘이 고여버리고 만다.
때로는 발사믹 식초처럼 톡 쏘는 시큼함에
코가 시큰거릴 때도 있지만,
인생에 적당한 산미는 단맛을 더 극대화시켜주고
무감한 미각을 깨워주는 드레싱이 된다.
물론, 이 비닐하우스에서의 안온한 삶을
영원히 영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토마토의 진가를 알아본 미슐랭의 주인이 나타나
하우스에 숨은 나를 예쁜 접시에 담아 갈지,
그건 오직 미래의 요리사만이 아는 일이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성질을 가진 토마토는
지금 가장 적절한 온도에 머무르고 있다.
단지 지나치게 가열하여 영양소를 파괴시키거나,
냉장고에 오래 방치하여
흐물거리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나는 오래도록 건강한 식감을 유지할 것이다.
사실 토마토는
딱히 주의를 요하는 나쁜 궁합이 없는,
어디에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언제든 카프레제 샐러드에 쏙 들어가
누구와도 담백하게 함께 할 수 있고,
주스 속에 어우러져 혼연일체가 될 수도 있으며,
스프레드 소스처럼 졸여져 어떤 재료와도 섞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다고,
요리의 베이스가 되지 않으면 뭐 어떤가.
파인다이닝 셰프의 디시에 오르지 못하고,
코스 요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토마토가 토마토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무너뜨리고 새로 짓기를 무수히 반복한
나의 비닐하우스는 견고하고,
과즙과 씨앗이 균일하게 응축된 내면은
더는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충분히 이븐 하게 익은
완숙 토마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