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을 감추던 아이에서, 온기를 나누는 어른이 되기까지
태어나 여섯 번째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날,
아이의 머리맡에는
빨갛고 커다란 양말 한 켤레가 놓여있다.
산타가 몰래 놓고 간 그 주머니 속엔
하트 모양의 초콜릿들이 들어있었다.
아이는 그 작은 사랑의 조각들이 아까워
차마 꺼내 먹지 못했다.
아이의 일곱 번째 크리스마스 날부터는
아무 양말도 놓여있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서랍 속에 숨겨둔 빨간 양말을
종종 꺼내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는 아이의 자그마한 두 발에
하얀 양말을 신겨주며 말했다.
‘엄마가 내일부터 집에 없을 거야.’
아이는 천진한 눈을 들어 엄마에게 묻는다.
그럼 언제 오냐고
하루 밤만 자면 오냐고
두 밤 더 자면 오냐고.
엄마는 그저 아이의 새하얀 발만
물끄러미 본다.
여덟 살이 된 아이의 운동회날,
아이는 스스로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선다.
옆집 아줌마의 집에 들러,
엄마가 부탁해 놓고 간 도시락을 기다린다.
아이는 같이 밥 먹고 가자는 아줌마의 말에
고개를 내저으며 가만히 앉아만 있다.
아이는 끝까지
신발을 벗지 않았다.
운동장은 시끌벅적한 아이들과
엄마, 아빠의 우렁찬 응원 소리로 가득하다.
한 아이가 자기 엄마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신나게 달린다.
아이는 아줌마네 가족의 돗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본다.
계주의 다음 주자로 나가야 하는 아이는
어느 낯선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달린다.
아이는 발을 헛디뎌 넘어졌지만,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벗겨진 신발부터 다급히 찾는다.
구멍 난 아이의 양말이
흙으로 잔뜩 더러워져 있다.
아이는 자갈 같은 모래알에 쓸려
손이 따끔거리는 줄도 모르고,
모난 돌처럼 튀어나온
부끄러운 발가락을 감춘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되던 날,
친구는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양말을
새로 샀다며 자랑한다.
아이는 귀엽다고 말하는 반 친구들 틈에 끼어
부럽다는 말을 슬쩍 얹어본다.
양말 삼매경에 빠진 친구들은
서로 자기 양말을 자랑하기 바쁘다.
아이는 살짝 올라간 바짓단을
몰래 조금 내린다.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친구가
아이의 바지를 홀라당 들춘다.
바지 속에 감춰진 새카맣고 두꺼운 양말과
짝이 맞지 않는 조금 더 어두운 양말.
아이들은 아빠 양말을 뺏어 신고 왔냐며
얄궂게 놀린다.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애꿎은 바짓단만 자꾸 내린다.
동그랗게 홈이 나고,
닳아서 해진 양말을 신고서도
아이의 발은 계속 자랐다.
실내화를 신고, 운동화를 신고, 구두를 신었다.
가끔은 가시에 박히고, 크고 작은 흠집이 생겨도.
아이의 하얀 발은
조약돌처럼 반듯하게 자랐다.
아이는 이제
아빠에게 두툼한 기모 양말을 선물한다.
아이는 이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양말에서도
따듯한 온기를 느낀다.
아이는 이제
까슬거리고, 넝마 같은 양말은 벗어던진 채
기꺼이 맨발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