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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kies Jul 31. 2016

나루, 미안해

 나는 동생 집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작은 카페 앞으로 길고양이가 서성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얼룩무늬의 고양이는 깡마르고 배가 고픈지 먹이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말고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넛 보였다. 어두운 밤 불이 환하게 켜진 작은 카페 앞에 고양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양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데도 피하지도 않고 그 앞을 계속 서성거렸다. 그런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나는 동생이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떠오르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어떤 한 남자 학생이 자신이 먹고 있던 소시지를 잘게 잘라 고양이에게 주었다. 그런 소시지를 주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고픈 고양이가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기르고 있는 고양이 나루는 연브라운과 하얀 털이 섞여 아주 예쁜 페르시안 종의 수컷 고양이다. 녀석은 처음엔 겁이 많았는데 지금은 동생과 내게 애교도 부리고 이젠 나루가 없으면 너무나 슬플 것 같은 어느새 한가족이 되어버린 존재이다.

페르시안 종의 고양이 나루

 어느 날은 나루가 너무 보고 싶기도 하고 동생집으로 놀러 갔을 때였다. 그날은 동생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밤늦게까지 나루와 시간을 더 보내고 있었다. 나루의 귀 뒤쪽 아래에 상처가 하나 나있었는데 동생과 나는 도무지 그 상처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당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자기 손톱으로 가려워 긁다가 생긴 상처인지 아니면 동생이 돌봐준다고 신경 써주다 도리어 실수로 내버린 상처인지 알 수 없었다. 동생은 딱지가 앉기 시작하고 나아가는 중인 것 같아서 굳이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기르는 고양이는 아니었어도 나 역시 애지중지하는 마음 때문에 그 상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살짝 만져보면 나루가 움찔거리는 것이 아파 보였다. 나는 나루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 역시 내 왼쪽 팔뚝에 난 상처 때문에 가지고 있던 마데카솔을 생각해 냈다. 마데카솔은 100% 식물성분이라 쓰여 있었고 아기 피부에도 쓰는 연고이니 고양이에게 발라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두어 차례 나루의 상처 부위에 마데카솔 연고를 조심스레 발라주었다.

 그리고 문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동생과 내가 한바탕 다툰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리 크지도 않은 집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청소가 깨끗이 되지 않았던 부엌 탓이었는지 동생과 먹겠다고 비빔면을 만들다 괜히 크게 싸운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네가 설거지를 하면 내가 비빔면을 끓이겠다고 하고 비빔면을 끓였다. 어쩐지 크기가 시원치 않은 냄비에 비빔면을 구겨 넣고 끓이고 있는데 동생이 겹쳐놓고 가버린 비빔면을 옮길 큰 그릇과 물을 빼는 체 그릇이 보였다. 그리고 동생에게 불평을 해댔다. 그리고 나 역시 뜨거운 비빔면을 옮기기 전에 두 그릇을 분리한다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그래서 동생에게 더 짜증을 냈다. 동생은 부엌으로 다가와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알았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 나 역시 목소리가 올라가고 했겠지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화를 냈다.

 동생이 그만 두기는커녕 끝까지 자기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옆으로 나루가 자기 화장실 지붕으로 올라가 '야옹~' 하며 싸우지 말라는 듯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루가 우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에게 듣기 싫으니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는데 동생이 자기가 비빔면을 마저 비비면서 이거만 먹고 집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뭐? 나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아니 됐어, 그냥 먹지 말고 나가!"

 "내가 왜 나가, 네가 나가!" 내가 말했다.

 "여기 내 집인데 내가 왜 나가, 언니가 나가!"

 우리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생에게 자기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언니로서 기분이 확 나빠져 동생의 저런 태도를 그냥 참고 집을 순순히 나가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생이 다 비비고 옆으로 밀쳐 놓은 비빔면 4개가 든 큰 양동이를 싱크대 안으로 확 밀쳐 엎어 버렸다. 비빔면을 엎는 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놀란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이제 우리의 싸움은 수습하기 힘든 지경까지 와버렸다. 나는 굉장히 화가 난 제스처를 취하면서 옷을 팍팍 갈아 입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 물건을 가방에 확확 담았다. 그때까지 우리 나루는 어디 간 것인지 너무 화가 난 나는 작은 고양이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닫고 집을 나갔다. 이럴 때 대문이 쾅하고 닫혀줘야 했는데 대문이 매너가 좋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1층을 누르고 내려가는데 고양이에게 발라주던 마데카솔이 생각났다. 그 마데카솔은 동생 침대 위에 있을 것이다. 순간 마데카솔을 두고 갈까 고민했지만(어차피 있어봤자 동생은 발라주지도 않을 테고 내가 충분히 발라 줬으니) 동생에게 내게 조금의 인정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동생 집으로 돌아가 쿵쿵 거리며 마데카솔을 가지고 다시 되돌아 나오려는데 나루가 겁을 먹고 방 한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집을 나왔다.

나루가 추웠는지 이불 밑으로 숨었을 때

 늦은 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거실에 앉아 고요히 화난 맘을 추스르려는데 나루가 계속 눈에 밟혔다. 괜히 나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나루 마데카솔까지 들고 와 버리다니. 화가 나서 다른 건 다 들고 나왔어도 나루 발라 줄 마데카솔은 그냥 두고 나올걸. 좀 후회가 들었다. 그런 난리를 쳐서 나루를 놀라게 한 것도 미안하고 계속 상처 난 나루가 생각이 나서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루 생각을 하지 않도록 일부러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어차피 동생이 잘 돌봐주고 있을 테니 걱정은 하지 않기로.

 나루가 우리 집(동생 집)에 들어온 이후로 우리가 기르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달라진 걸 조금 느끼기는 한다. 그래서 그동안 마주쳤던 길고양이들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길에서 길고양이를 볼 때면 딱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문제 되었던 고양이 문제들이 눈에 띄고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또 한 번 길고양이를 마주쳤다. 고양이가 골목길 한복판을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여자 두 명이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 고양이가 걱정스러웠던 것인지 한참을 그 고양이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고 그 고양이 역시 피해 숨지 않고 여자 두 명 앞에 멈춰 섰다. 두 여자는 이 길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느라 그들이 고양이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은 고양이가 불쌍하지만 어찌해줄 수가 없어 그냥 자리를 떴을지도 모르고 들고 있던 비닐 봉다리에서 먹을 것을 꺼내 조금 떼어 잠시 보살펴준 뒤에 자리를 떴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 위를 떠도는 고양이 같이 작은 생명을 위해 잠시 멈춰 줄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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