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교대 4학년에 간 교생실습에서도
나는 내가 교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연히 깨달았다.
하지만 그땐 교사를 관두고 다른 길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학교를 다니면 졸업을 하고
임용고사를 보고 선생님이 되는 보장된 길이 열려있는데
잘 깔린 고속도로를 놔두고
굳이 힘겨운 비포장도로를 선택할 용기가 내겐 없었으니까.
하지만 4학년때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막연하게나마
나는 나중에 교사가 아니라
차라리 교육행정직 쪽으로 나가보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시기에 이래저래
남자 동기와 껄끄러운 일들도 겹쳐서
나는 온전히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임용고사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험 탈락이었다.
난생 처음 실패를 맛 본 순간,
나는 비로소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고작 시험 한 번 떨어진 것 가지고
자살을 떠올리다니
너무나 나약한 태도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내 당시의 심정은
그래도 아직 광주 초등교사 임용경쟁률이 채 3:1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을 떨어졌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럽고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부모님께도 여간 죄송했다.
결국 그때의 나는 다른 길을 시도할 의지가 많이 꺾여버렸던 것 같다.
고작 2.xx 경쟁률의 시험도 떨어지는데
이런 내가 무슨 다른 길을 도모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폄훼했다.
그리고 힘겨운 재수생활을 거쳐
그 이듬해 9월에 발령이 나게 됐다.
하지만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2학기 중간에 빈 자리는
좋은 자리일 가능성보다는
누군가가 견디기 힘들어서
박차고 나간 껄끄러운 자리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내가 맡게 된 반도 역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