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에 순천만 국가공원과 습지

#순천 #여행

by 신푸름

아침운동 : 여수 엑스포


2년 전부터 새벽 운동을 시작하면서 했던 다짐은 '별일 없으면 아침운동은 꼭 나가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2년간 지켜온 나의 아침 루틴이 되었다. 여행을 갔더라도 아침 루틴을 어길 이유가 없었기에 새벽 알람에 맞추어 일어나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여행을 간 곳의 운동 경로를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거리가 된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닐 오전과 오후 시간 외에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라 생각하면서 가볼 곳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또한, 미리 가볼 곳을 답사해서 위치, 휴식공간, 주차공간 등을 둘러보고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여행을 간 기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숙소를 기점으로 동서남북 구역을 나누어 하루는 동쪽, 하루는 남쪽 이런 식으로 1-2시간 내 왕복할 수 있는 곳을 정한다. 오늘 아침은 숙소의 동쪽에 위치한 엑스포 주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빅오쇼를 하는 곳인 '빅 오'의 모습

2012 여수 엑스포가 열린 후 엑스포 건물은 계속해서 여러 행사들과 전시회의 유치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뉴스에서는 엑스포 활용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는 소식도 봤다. 규모는 꽤나 큰 편이라서 이곳저곳 돌아보면서 명소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1시간을 소비했다. 산책하던 걸음을 멈춰 서게 한 곳은 여수엑스포 빅오쇼가 열리는 '빅 오'였다. 밤에는 화려한 분수쇼와 홀로그램, 조명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아침에 공연이 열리지 않는 현장을 와서 보니 녹슨 구조물이 외롭게 서 있었다. 밤에 하는 공연만 봤으면 멋진 곳이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을 텐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빛과 물을 뿜는 큰 기계 구조물이지만 엑스포가 개장하고 10년 이상을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엑스포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설 보수를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하는데 잘 버텼으면 하는 마음이다. 갑자기 엉뚱한 감정이입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숙소로 복귀하면서 어제는 제대로 보지 못한 이순신 광장의 모습도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 관찰했다.


구름이 잔뜩 꼈던 어제의 날씨와 다르게 오늘은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져내렸다. 비가 퍼붓는다는 중부지방의 소식과는 대조적인 날씨에 원주에서는 여자 친구에게 바르지 않는다고 혼났던 선크림을 착실하게 발랐다. 오늘은 여수보다 위쪽에 위치한 순천의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를 가보기로 했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

2023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가 열리는 국가정원

곧 2023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의 개최를 준비하느라 국가정원 입구와 내부 곳곳에서 조경 작업이 한창이었다. 더운 날 구슬땀을 흘리시면서 일하시는 분들을 지나쳐 입구로 들어가니 길을 따라 정해진 테마로 꾸며진 정원들이 나왔다. 국가정원은 강을 따라서 서쪽과 동쪽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꿈의 다리'를 건너면 양쪽을 오고 갈 수 있다. 우리는 서쪽의 빛의 서문을 지나서 순천만 WWT습지(국가정원 북쪽에 위치한 순천만 습지와 다른 곳이다. 국가정원 내 있는 작은 습지다.)를 지나 동쪽으로 가기로 했다. 습지에는 고니와 청둥오리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물고기를 잡고 있었고 건너편 물새놀이터에서는 홍학들이 무리 지어서 특이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홍학의 신기한 목놀림과 걸음걸이를 홀린 듯이 보다가 뜨거운 햇살에 뒤통수가 따끔거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20220812_105037.jpg 무리 지어 울부짖던 홍학들
20220812_123126.jpg 한국 정원 내부의 모습

꿈의 다리를 건너고 동쪽으로 넘어온 순간 우리의 체력이 방전됨을 느꼈다. 순천호수정원 중앙에 있는 봉화언덕에 사람들이 올라서 경치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호숫가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여행의 위기감을 느꼈다. 지도에는 여유를 즐기면서 1시간 정도 걸으면 돌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보였는데 오늘 날씨는 마치 다시 입대한 듯한 행군하는 느낌도 들고 저번 제주도 여행에서 첫날 고생했던 금장대의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뜨거움을 느끼게 했다.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지키기 위해서 순천만 국가정원 한 바퀴를 도는 관람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관람차를 탄 것은 결과적으로 최고의 판단으로 돌아왔다. 여러 나라의 문화 향기가 묻어나는 정원들을 관람차 안에서 소개해주는 안내멘트를 들으면서 빠르게 훑고 다시 서쪽으로 넘어와 마지막 코스인 한국정원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정원에서 전망지를 가는 코스도 있었지만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우선이었다. 정원 중간에 위치한 정좌에서 몸에 오른 더운 열기를 식히고 순천만 습지로 가기 위해 모노레일 '스카이큐브'를 탔다. 습지에 도착해서 갈대열차를 타고 더 안쪽으로 들어간 갈대숲은 가을에 왔으면 눈부신 노란 물결이 가득차 그 경치가 더 빛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만 습지 갈대숲. 가을에 오면 노란 물결이 찬란할 것 같다.

휴식 그리고 생각

저녁으로 먹은 해물삼합

오전과 오후 시간을 야외에서 보낸 후유증은 상당히 컸다.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 먹기 전까지 내내 잠이 들었다. 평소에 그렇게 운동을 하는데도 더위를 이기는 건 나에겐 참 힘든 일이었다. 저녁은 여수에 왔으니 한끼 정도는 해물을 먹어보자 해서 해물삼합(돌문어, 오징어, 삼겹살, 전복, 새우 등)을 먹으러 갔다. 저녁 일정은 정말 저녁만 먹고 끝냈다. 내일의 내가 여수의 또 다른 멋진 곳으로 기운 내서 다닐 수 있도록 컨디션을 조절하기로 했다. 야외 데이트를 여러번 하면서 더위로 고생했던 경험을 통해 '여행 왔는데 시간이 아까우니 알차게 일정을 보내보자!'는 것 보다 내 몸의 건강이 우선임을 잘 알게 되었다. 여름에 야외에 다니는 건 조심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날이었다.


전에는 여행 일정을 시간 단위로 세세하게 짜고 알차게 보내는 것이 중요했었다. 여행을 가는 시간은 일상에서 벗날 수 있는 1년 중에서도 며칠 안되는 황금같은 귀한 시간이기 때문에 허투로 보내면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미국의사이자 작가인 대니엘 트레이크라는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제이다.


편한 여행을 위해 머리 싸매고 준비하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여행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고 짐이 되면 안되는데 좀더 고집을 부려 '편한 여행'보다 '완벽한 여행'을 바라게 되면 자신만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완벽한 여행을 바라는 모습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고 여행 자체를 즐겨보기로 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이런 여행이 힐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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