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아르떼뮤지엄 #카페 여수에서
아침 운동 : 교동시장과 벽화골목길
어제는 숙소의 동쪽을 돌았고 오늘은 서쪽으로 떠나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 구조상 방음이 잘 되지 않아서 이른 아침에 나가는 게 조심스러웠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계단도 살금살금 내려가서 잠을 좀 깨고 출발하려고 로비에 잠깐 앉아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 길을 떠나는 숙박객들이 몇몇 보였다. 등산가방 하나 걸쳐 메고 나가신 어떤 분은 여행에 통달하신 분 같았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정말 필요한 것만 챙겨 다니시는 모습이 어떤 상황이 오든 대비하려고 많은 것을 싸들고 다니는 나와 비교되는 것 같았다. 아침 시간대였지만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습하기도 했고 햇빛도 일찍 내리 쬐고 있었다.
여수 교동시장은 이미 잠에 깨어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갓 잡힌 싱싱한 물고기를 사려고 줄을 지어 서있었다. 큰 소리로 손님들을 모으는 호객행위가 없어도 물건을 사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 시장은 바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영상에서 봤던 긴 갈치조림에 들어갈 것 같은 갈치가 은빛 보석처럼 반짝이면서 길고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는데 사지도 않고 계속 보기만 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뭐라 하실 것 같아서 그냥 시장 골목을 빠르게 지나갔다. 여수에서 유명한 '낭만포차거리'의 메뉴들이 몸값이 꽤나 높아 현지인들은 이곳 수산시장 가까이 있는 음식점에서 먹는다고 들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포차 분위기의 가게에서 한잔 해보고 싶었다.
교동시장을 지나서 숙소 남쪽에 위치한 이순신 광장을 좀 더 지나면 바닷가를 따라 여수구항해양공원이 있고 맞은편 시내 쪽으로 천사벽화골목이 있다. 아침에 이곳까지 올 생각은 없었는데 시간을 내서 온 이유는 여수에 친척을 만나러 왔던 어느 유튜버분이 점심에 갔던 카페가 기억에 남아서였다. 가로로 긴 창을 통해서 바닷가가 보이는 분위기 좋은 카페였는데 사실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어서 가고 싶은 장소로만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감으로 왠지 이 골목에 그 카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여기저기 골목을 누비면서 여행하는 겸하고 골목에 올라간 지 얼마 안돼서 내가 생각한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카페 여수에서'. 땅에 묻어 놓았던 보석을 이제야 찾은 느낌이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쾌감이 느껴져서 사진에 담아두고 만족스럽게 숙소로 복귀할 수 있었다.
카메라가 불날 정도로 사진 찍을 수 있는 곳 : 여수 아르떼뮤지엄
우리가 방문하려는 아르떼뮤지엄이 인플루언서들과 관광객 사이에서 여수 관광의 필수코스로 자리를 잡은 덕택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일찍 입장하기로 했다. 오전 10시부터 입장을 할 수 있었고 우리가 입장할 때도 사람들이 꽤나 입장한 상태였다. 그래도 일찍 온 덕택에 여유롭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아르떼뮤지엄은 미디어아트 상설전시관으로 여러 주제와 소재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멋진 작품들이 규모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조금이라도 사진에 예쁘게 담길 장소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전시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보기보다는 사람들 눈치에 밀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빨리 지나가고 빨리 찍는 데에 열중했던 것 같다. 나도 여자 친구의 인생 샷을 찍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 인생샷의 결과가 어떠했냐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굉장히 노력했다는 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여기에 올리지 못하지만 정말 그러했다. 유명한 권투 만화 <더 파이팅>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노력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노력했다는 걸 명심해!' 나는 노력한 사람이다. **
아르떼뮤지엄 전시 중 'GARDEN'이라는 주제로 르네상스부터 상징주의까지 명화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장소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서 전시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서 쉴 새 없이 찰칵거리던 카메라는 끄고 멍하니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바뀌는 명화들을 바라봤다. 해상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정말 전시되어 있는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명화들이 나온 뒤에는 정글에 있는 동물들이 배경과 동화되어 걸어 다니는 영상이 나오고 그 뒤에는 여수 밤바다의 모습이 나왔다. 여자 친구와 30분 동안 별말 없이 영상을 바라보면서 쉬다가 다음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볼거리도 많고 신기한 체험하는 곳도 있다. 'LIVE SKETCHBOOK' 전시관에서는 내가 색칠한 해양생물이 미디어 수족관에서 헤엄쳐 다니게 할 수 있었다. 준비되어 있는 바다에 살고 있는 몇몇 생물들(거북이, 돌고래, 열대어, 가오리 등)의 도안을 형형색색의 색연필로 꾸미고 그림을 스캔하는 곳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리에 맞게 위치시키고 화면에서 안내하는 대로 버튼을 누르면 잠시 뒤에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내 그림이 미디어 수족관에 들어가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자신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릴 적 누구나 가져봤던 꿈 아닐지. 내가 색칠한 거북이가 바닷속을 돌아다니는 걸 한참 바라보니 옛날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 같아서 묘한 느낌도 들었다.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 마지막에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추가 요금을 주거나 예매 당시 패키지로 결재를 했으면 이용할 수 있다. 찻 잔을 놓는 곳에 프로젝트 빔이 쏘여서 가상의 꽃받침 같은걸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곳 대신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침 산책에서 찾아본 카페로 가보기로 했다.
긴 창에서 보이는 여수의 바닷 풍경 : 카페 여수에서
카페에 오기 전 주차공간을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것보다 내가 찾은 이 예쁜 카페를 여자 친구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아침 산책 때는 카페 내부까지는 들어가 보지 못해서 알지 못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내 취향을 저격하는 장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이 넓진 않지만 그걸 단점으로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카페 안쪽의 넓은 창에 보이는 여수 바닷가가 시원함을 가져다주었다. 정신없이 사진 찍으면서 많은 걸 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눈에 담기는 광경이 바뀌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같은 곳을 바라봐도 그곳의 모습이 계속 변하는 것을 바라본다. 바다가 슬금슬금 물결치고 배도 천천히 지나간다. 바람 때문에 주변의 나뭇가지들도 흔들거리고 저 멀리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자기 갈길을 가느라 바빴다. 카페 내에 사람도 많이 없어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여자 친구와 오후 시간을 흘러 보냈다.
오늘은 새로운 숙소로 체크인을 했다. 오늘 아침까지 묵었던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이루다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저렴한 숙소 비용을 위해 무인으로 운영하는 중이었다. 짐을 풀고 저녁 전까지 쉬다가 저녁 먹을 장소를 정해서 편한 차림으로 나갔다. '백 패커스 펍 앤 카페'에서 치킨과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먹으면서 여행의 3번째 날을 마무리 했다.
휴식 그리고 생각
누군가와 같이 다니는 여행이 장점도 많지만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면 예상치 못하게 상처도 많이 주고 받게 된다. 전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멀리까지 왔는데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라는 보상심리와 더불어 상대방을 더 편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편한 동선을 위한 계획을 짜고,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느라 내 체력과 멘탈은 뒷전이 되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내 마음이 편한 것 같지만 사실은 옆 사람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나도 모르게 불편한 기분을 은연중에 비친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하고자 했던 행동이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내 행동을 많이 되돌아 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것은 내가 힘든 부분이 있을 때 솔직히 이야기해서 불편한 부분을 조율해보려고 노력한 것이다. '남자니까 이 정도는 버텨야지, 리드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하면서 힘든 감정을 참는 것은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 뚜껑을 억지로 눌러 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참아왔던 감정은 주전자 속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이 되어 수증기를 내뿜고 주전자는 달그락 거리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주전자 가까이 있다가 그 물이 넘쳐 튀면 데인다. 감정이 끓어오른 사람도 자신 때문에 상대방이 데어서 미안하고 상대방도 불편하게 된다. 여행은 내가 평소에 살아가면서 만들어 놓은 나만의 편한 울타리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장소와 상황에서 겪는 모든 것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은 자신도 몰랐을 수도 있기에 '자기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처음엔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오히려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겪는 모든 경험은 긴장할 수 밖에 없고 실수할 수도 있다. 새로 나타난 모습에서 모난 부분이 있다면 변화해서 조금씩 둥글게 갈아본다. 여행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