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기(4)
가끔씩 악몽을 자주 꾸는 시기가 있다. 악몽 속에서 나는 힘없는 존재로 무서운 존재로부터 온 힘을 다해 도망치고 쫓기느라 꿈에서 깨면 몸이 평소보다 배로 무겁고 컨디션이 좋질 않았다. 상담 전날이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이번 꿈은 악몽이긴 했는데 흐름이 조금 달랐다. 악령에 씐 사람이 차에 치이는 잔인한 장면을 목격했는데 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길한 일도 있고 흉한 일도 있지'
꿈에서 깨고 차 사고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기분이 찝찝했는데 내가 한 말이 생각나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악몽에서 도 닦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해탈한 말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항상 힘듦에 지쳐 욕하고 소리지르는 게 다였는데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 자체는 상황에 맞지 않게 생뚱맞긴 했지만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것처럼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처음보다는 좋아졌다.
1. 나의 자신감 점수는?
3번째 상담시간이 되었다. 본격적인 상담 시작 전에 상담사님은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본인 자신감과 지금 자신감에 점수를 매긴다면 0~100점까지 해서 몇 점 정도 점수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처음에는 대략 30점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45점 정도라고 말씀드렸다.
상담사님 : 저 15점 차이는 꽤 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부분이 조금 달라져서 15점이 좀 늘어난 것 같아요?
나 : 예전에 누군가가 제 칭찬을 하거나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저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받아쳤는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해 주는 게 고마운 마음이 크고 '내가 그런 사람인가 보다' 인정해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최근에 꾼 꿈과 꿈속에서 나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렸다. 상담사님은 엄청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하시면서 삶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상담사님은 이어서 처음에 점수를 준 30점은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정한 건지 물어보셨다.
예전에는 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실패를 많이 겪었지만 코로나 이후,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으로 살도 많이 빠지고 컨디션도 좋아졌다. 운동을 싫어하던 나였지만 새벽, 저녁 꾸준히 나간 운동으로 좋은 결과를 얻으니 기분이 좋았다. 또 취업관련해서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쳐서 하나씩 합격을 해나갔다. 노력을 해서 이룬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하니까 이루는 것이 있구나 하면서 자신감이 조금 올라갔다.
상담사님은 운동기간을 물어보시고 3년 동안 꾸준히 한 거면 대단한 건데 30점 준 건 박하다고 하셨다. 나는 멋쩍어하면서 최근에 이직 준비하면서 쓴맛도 여러 번 맛보고 해서 점수를 내렸다고 했다. 상담사님은 심리적으로 건강해지고 마음이 좋아지면 상담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하셨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은 듯이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끼며 상담을 시작했다.
2. 내 안의 많은 화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상담사님은 상담 때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날은 에피소드가 하나가 번뜩 떠올라서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나 : 제가 주말에 여자친구랑 당일치기로 잠깐 단양을 다녀왔는데 주말에 가서인지 차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주차 자리를 잡느라 오랜 시간을 썼어요. 계속 돌았는데도 차들이 안 빠져서 힘들었거든요. 제가 그런 답답한 상황이나 해결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표정도 엄청 굳어지고 태도가 달라져요. 전에도 건물 지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려다가 자리가 없어서 나오려고 했는데 통로가 너무 좁았거든요. 차 돌리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 되니 예민해져서 스트레스받고 했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고민이에요.
상담사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현재 경험하는 일에 대한 태도는 파고 들어가보면 과거의 경험이나 신념에 연결되어 있다면서 아까 말했던 자신감에서 점수를 준 요인들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자신감 점수랑 예민해지는 거랑 무슨 상관일까?' 궁금해졌는데 상담사님은 바로 질문을 이어가셨다. 예전에 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결과를 많이 얻었는데 언제부터 성적의 하향 곡선이 그려졌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교 10등 밖으로 밀려나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상담사님은 그래도 본인이 열심히 공부해 왔던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도 성실하게 공부했는지 궁금해하셨다.
나 : 근데 신기한 게 제가 고등학교 때 기억이 통째로 날려버린 것처럼 진짜 안 나요. 그래서 공부를 제가 계속 꾸준히 했는지도 사실 모르겠어요.
상담사님 : 이거는 의미 있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기억이 안나는 이유는 너무 평범해서 기억이 안 나는 걸 수도 있고요. 뭔가 나한테 불편하니까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어요. 또 정서가 포함되지 않은 사건만 있을 때도 기억이 안 나요. 지금 아예 통째로 날려버린 것처럼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재가 있을 수도 있어요.
상담사님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겪은 하강 곡선 부분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끝나지 않는 테스트를 계속 받는 느낌으로 긴장과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는 시절을 겪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 즐겁지 않고 만족할 만한 결괏값이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한 모습이 처음에 이야기 한 자동차 주차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하셨다. 나의 대답 중에 해결을 못하는 상황이 어떤 의미이길래 답답한 마음이 드는지 물어보셨다.
나 : 남한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운전이 미숙해서 버벅거리고 있으면 다른 차가 들어왔을 때 저 때문에 주차를 못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 싫어요. 또 그 당시에는 옆에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고 싫은 것도 있었어요.
상담사님 : OOO님한테는 남한테 피해를 안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네요. 저는 그 이유보다 조금 더 궁금한 부분이 남한테 피해를 끼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싫으신 걸까요? 내가 사고를 내서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길래 그렇게 싫은 걸까요?
나 : 음... 다른 사람들이 저를 안 좋게 보고 욕하고 이런 상황을 안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기보다 심리적으로 저 사람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걸 피하는 것 같아요.
상담사님 :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안 좋게 평가하고 욕하고 부정적인 말을 퍼부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길래 싫은 걸까요?
나 : 어찌 보면 운전을 많이 안 해봐서 능숙하지 못한 탓이 큰데...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욕 듣고 눈치 봐야 하는 게 억울... 한 느낌?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시고 상담사님은 첫 회기 때 이야기 나눴던 부분을 언급하셨다. 능력이 있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 만큼 좋은 학교를 목표로 할 수 있었지만 매번 아쉽게 미끄러졌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능력부족 때문이 아니라 가정 경제 상황 같은 외부 요인 때문이니 '억울한 일'인 거라고 하셨다.(목표 달성 실패에 대한 이유를 가정 탓으로 돌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자기를 미워하는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그 억울함이 방금 주차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억울함과 비슷한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외부에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더 파고들어 살펴보니 나의 내부에서는 서툴러서 그런 건데 욕먹는 게 '억울'하고,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이런 상황이 안 만들어졌을 텐데 하면서 속상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드러났다. 실제로 욕먹거나 나쁜 평가를 받은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억울함과 속상함은 외부로 '화'가 남으로 표출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화를 누르고 있어서 소리 지르고 과격한 행동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얼굴이 굳어지고 예민해지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했다.
즉,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결괏값이 나오지 않거나 예상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주변 사람으로 부터 오는 비난과 비판, 부정적인 평가가 올 것을 예상하고 신경을 많이 쓰느라 예민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예민해짐의 바탕에 깔린 근본적인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상담사님은 억울한 감정이 생기게 하는 나의 생각 흐름 중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원인에 집중하셨다. 이 억울한 감정이 시작된 학창 시절의 실패들을 떠올리면서 그 감정이 생기게 된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기억 남는 경험 등을 돌아보다 문득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