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나는 멋진 사람이다

심리상담 일기(3)

by 신푸름

첫 번째 상담을 받은 지 한 주가 지났다. 상담사님과 1시간 남짓 나눈 내용을 잊어버리기 싫어서 상담 내용을 따로 메모에 옮겨놓고 계속 읽어봤다. 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것이 아직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하루에 한 번씩 자신에게 응원을 보냈다. 꾸준하게 해낸 것들이 많고 그것들을 통해 전보다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족해'라며 채찍질하는 대신 '잘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너는 매일 꾸준하게 하고 있어'라면서 다독였다. 한 주만에 갑자기 확 바뀌는 건 없었지만 변화의 씨를 심었으니 계속 물을 주고 관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 상담 시간이 되었고 상담사님께 학창 시절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번 상담시간은 그 마음의 짐이 어디서부터 왔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다.


1. 초등학교 시절, 인정해줘야 하는 나의 학습능력


인생의 경험 중 실패의 경험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을 할 때도 주저하게 되고 목표성취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게 된다. 그 실패의 첫 시작이었던 중학교 시절을 곱씹어보기로 했다. 남녀공학이었던 중학교 때는 필기시험 성적은 좋았으나 실기시험 성적은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상위권이긴 했지만 목표로 했던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원했던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상담사님은 중학교 때보다 더 먼 과거인 초등학교 때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셨다.


내가 살던 곳은 신기하게 내 또래 아이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아파트 내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는 유치원에 다닐 정도의 나이대 아이들만 몇 명 나왔을 뿐이다. 나의 생활패턴도 '집-학교'가 끝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끝나면 집으로 와서 학습지를 풀거나 책을 읽었다. 경제적인 여유는 크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교육열은 대단하셔서 학습지 선생님의 답지를 미리 받으셔서 한 주에 한번 선생님 방문하시기 전에 채점을 미리 해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셔야 할 채점 시간을 없애고 그 시간에 진도를 나가서 수업진행이 빠르게 될 수 있도록 도우셨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의 2배의 속도로 진도가 나갔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경우도 없었다. 어머니께서 깔끔한 성격이셔서 한창 놀기에 정신없는 친구들의 흙 묻은 양말로 인해 집이 더러워지는 걸 싫어하셨다. 나도 굳이 친구집에 가질 않아서 생활반경이 자연스럽게 좁을 수밖에 없었다. 공부하기에 바빴던 시절이었다.


상담사님 : "지금 들어보면 학습지 교사들이 와서 진도를 나가고 가르쳐주긴 했지만 거의 본인 혼자 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또 어느 정도 독학 학습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 그런 학습지를 할 때 효과가 나타나요. 지금 보면은 OOO님이 개인적인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도 애쓰긴 하셨지만 사실 학습지 시키는 정도로 아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OOO님이 학습 능력이 꽤 굉장히 있었다는 거는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아요."


요즘 '개천에서 나는 용은 없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어가면서 혼자 힘으로 학업이나 성적을 올리는 경우가 사라지고 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보기 힘든 지 오래되었다. 이렇게 안 하면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더 많은 학원을 등록해서 아이들을 보낸다. 줄넘기 학원, 단소 학원도 있을 정도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혼자서 공부하다시피 해서 높은 성적을 이룬 것이 대단하다며 상담가님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나 : "저는 '나는 머리가 안 좋아서 그렇게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라고 항상 생각했거든요."


상담사님 : "그 반대죠. 내가 머리가 안 좋았다면 그렇게 노력을 해도 성과가 안 나오는 거죠. 머리가 좋았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을 했을 때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아직 받아들이기 과분할 정도의 칭찬을 해주시고 나서 상담사님은 학원을 수없이 다니는 아이들과 겨루어서 높은 수준의 학교들을 꿈꿀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만들어놨다는 것이 대단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빼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2. 숲이 아닌 나무를 바라보고 있던 나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동안 나한테는 학교 성적으로 경쟁하는 라이벌 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전교에서 잘하는 학생들을 꼽으면 한 손가락 안에 드는 학생들이었다. 그 친구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성적 경쟁이 있었고 이것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 간의 자존심싸움까지 번졌다. 시험을 보고 나면 어머니는 라이벌 친구 성적을 물어보셨고 만약 그 친구보다 뒤처졌으면 어느 과목에서 어떻게 틀린 건지 피드백하시면서 다음에는 더 잘하기를 바라셨다. 자연스럽게 나도 성적관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께서 바라시는 자식의 모습에 더 근접해지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상담사님 : "그래서 내가 전체 등수에서 얼마나 잘하는지보다는 상위권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공부를 해왔군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 거네요."


상담사님의 말씀에 내색하진 않았지만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의 시선은 오직 내 위에 있는 친구들, 나와 경쟁하는 친구들 뿐이었다. 제삼자 입장에서 한 걸음 뒤에서 보면 나는 정말 잘하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잘한다'는 기준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원체 높았던 기준 탓에 목표를 이루는 것이 더 어려웠고 이루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도 더 많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기준에 갇혀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기준이 어디서부터 온 걸까에 대한 답이 초등학교 시절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상담사님은 사람이 자기의 진로와 꿈을 정할 때는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능력만큼 도전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은 자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자기 비하도 많기 해서 진로 상담이 어렵다고 하셨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신뢰와 확신을 가진 심리상태와 아닌 상태는 천지차이라면서 말이다.


3.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상담사님 : "만약 OOO님이 아이를 낳았는데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나 : "자랑스럽죠. 내 경제적 능력이 이 정도인데도 잘해주는 모습 보면 어떻게 이런 자식이 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상담사님 : "그렇죠. 그게 OOO님이었다는 거예요."


투박했지만 고민하면서 내뱉은 나의 대답은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최선을 다하셨고 나도 내 능력의 최대한을 발휘했다. 칭찬과 응원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어릴 때는 피드백과 훈계의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건 노력하지 않은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너무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런 생각은 이직을 위한 면접 준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내가 이런 점을 당당하게 어필할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인가?'라는 마음속 의문에 스스로 낮은 평가를 내리고 있던 나는 면접관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없었다.


상담사님 : "OOO님이 옛날 그때로 돌아가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OOO를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나 : "음... 너 진짜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부모님이 칭찬 안 하고 그래도 잘하고 있다, 되게 멋진 사람이다... 너 자신을 좀 사랑했으면 좋겠다..."


대답을 마치고 나서 마음이 울컥했다. 나의 대답이 여자친구가 정말 많이 해주는 이야기였다. 내 능력을 대단하다고 해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사람인데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마음먹고 나 자신을 사랑해 보자 적용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그 말이 다시 내 귀에 들어가니 마음속에서 나를 향한 미안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나 자신을 너무 늦게 인정해 준 것 같았다. 어린 나는 과거이고 지나간 시간이며 내 말을 듣지 못하지만 기억 속에 이어져 내려온 만년설 같은 속상함이 녹으면서 큰 위로가 되었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도 흘러가는 강물에 덕지덕지 묻어있던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마음으로 상담 내용을 되뇌었다. 다음 시간에는 어떠한 모습의 나를 바라보게 될까. 어떤 말을 해줄까.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전 02화[심리상담] 억울해도 돼요. 노력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