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엄지에 담은 자신감 스위치

심리상담 일기(6)

by 신푸름

이번 상담에서는 내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서 독특했던 부분이 있었는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직 준비를 하다 보니 자소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나만의 장점, 특별한 경험이 어떤 게 있는지 상담사님이 물어보셔서 내가 생각하는 장점 몇 가지와 경험들을 말씀드렸다. 그중에서 대학교 3학년 때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가서 리더까지 활동했던 기억을 두고 깊게 물어보셨고 그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면서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사님 : 기독교 동아리 리더를 할 성격이 아닌데 리더를 했다고 했거든요. 여기서부터 조금 풉시다. 리더를 할 성격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리더를 했어요?


나 : 다음 해에 폐부가 되는 동아리였어요.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부원이 3명 있었고요. 활동 인원이 없어서 동아리를 없앤다는 통보를 받은 동아리였는데 제가 들어가고 나서 마음을 모아서 신입생 OT 기간을 이용해 동아리를 살려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원래 있었던 리더 1명과 나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부원 2명, 그리고 선교사님까지 총 5명이 동아리를 살려보자고 아등바등거렸다. 사실 리더 1명만 있을 때는 지친 탓인지 폐부를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 같은데 3명이 새로 들어오니 리더와 선교사님은 희망이 아직 있다고 생각하고 동아리에 대한 마음을 다시 키운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다음 해 신입생이 20명 정도가 들어왔고 그 인원들을 키우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새로 필요했다. 입부한지 1년 가까이 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2명이 함께 리더교육을 받게 되었고 남들 앞에 나서지 않는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 리더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상담사님은 사실 대학교 3학년이면 동아리에 새로 들어갈 생각은 안 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있어도 동방에서 열심히 할 생각은 크게 안 할 텐데 어떻게 동아리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물어보셨다. 외부활동이 많지 않았던 나는 학교 안에서 조용한 장소를 원했다. 도서관 같이 큰 소리 나지 않게 경직되어서 긴장해야 하는 곳보다 사람들이 있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선의 친분만 유지하면서 편하게 있을 곳을 학교 내에서 찾다가 들어간 곳이 이 동아리였다. 잘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기도 했지만 폐부 위기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내가 있을 동안에만 없어지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동아리 문제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수가 적다 보니 매일 같은 사람들을 계속 보게 되었고 그 친구들이 동아리를 살리기 위해 굉장히 간절하게 마음을 모으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랑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무시하고 내 할 일을 하면 됐을 텐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열심 내는 마음이 공유가 되면서 함께 해보기로 했다.


상담사님 : 이 이야기만 들어도 OOO님의 장점이 2가지가 나오네요. 첫 번째는 굉장히 공감능력이 좋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서번트 리더십의 기준 같은 모습이 있다는 거예요.


공감능력이 좋다는 것은 열심 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유가 되어서 팀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가는 모습으로 사업자가 제일 원하는 팀원들의 화합, 팀워크를 그릴 때 굉장히 좋은 모습이라고 하셨다. 본인이 리더 할 성격도 아닌데 리더를 했다는 건 조직과 팀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다. 없다'를 넘어서 능력을 발휘한 것이라 직장에서 굉장히 필요한 모습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부원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섬기는 사람으로서 아랫사람들을 키워가고 지지해 주는 서번트 리더십도 보인다고 하셨다. 뒤에서 도와주면서 리더의 자리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나의 큰 장점 같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칭찬이 어색해서 그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서 궂은일을 도맡아서 한 거라고 둘러댔지만 상담사님은 그런 소리 말라면서 과장이 아니라 있는 걸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인데 내가 있는 것도 격하를 시키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의 논리대로면 세상에 잘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셔서 민망해졌다. 맞는 말이었다. 누가 내가 나이가 많으니 다 도맡아서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목에 칼을 들이밀면서 협박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한 일이었는데 겸손도 지나치면 병이라고 상담사님은 말씀하셨다.


상담사님 : 신입생 OT때 홍보하는 건 어떻게 진행했었어요? OOO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세요.


나 : 음... 신입생 OT 때 와플로 수익사업을 했는데요. 동아리 자체에서 이미 다른 동아리와 차별화를 두고 밀고 있던 사업이었어요. 다른 동아리도 와플을 팔긴 했는데 유독 저희 동아리 와플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었어요. 동아리 이미지를 와플과 연결시켜서 홍보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어서 포스터랑 명함도 와플이 들어가게 만들었었고요.


동아리 수익사업은 동아리 활동비를 버는 목적도 있지만 우리에게 동아리를 알려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와플이 정말 맛있었는데 다른 동아리와 만드는 재료나 비법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맛의 차이가 있는 게 신기했다. 와플 가루와 물을 적당 비율로 섞고 반죽 점성을 원하는 정도로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분석했던 다른 동아리와의 다른 점은 반죽을 하기 위해 어떤 도구를 쓰냐는 것이었다. 규모가 큰 동아리는 자동으로 섞어주는 거품기를 사서 힘들이지 않고 반죽을 했는데 우리는 그런 고급 아이템을 살 형편은 아니어서 대형 거품기를 이용해 수동으로 손수 휘저으면서 섞어야 했다. 가루와 물이 충분히 섞일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계속해서 거품기를 돌리다 보면 108배 후반부에 이른 것처럼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데 팔이 저린 고통은 없어지지 않았다. 부원들이 많아지기 전까진 남자는 나와 선교사님 밖에 없어서 힘쓰는 일을 거의 다 도맡아 했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완성시킨 반죽은 완벽한 식감으로 학생들의 입맛을 만족시켰고 친구들도 데려와 사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우리는 동아리보다 유명해진 와플을 동아리 홍보를 위해 동아리 자체와 연결시키기로 했다. '와플 하면 XXX'라고 이미지를 심어서 와플을 사먹는 사람들이 XXX 동아리를 한 번이라도 인지할 수 있도록 명함과 포스터를 제작했다. 동아리에 디자인학부 친구가 한 명 있어서 디자인 자체에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인쇄비만 들었기 때문에 동아리 회비로 홍보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홍보방법은 꽤 성공적이었고 실제로 이런 홍보방법 때문에 입부한 친구들도 생겼다.


상담사님 : 동아리 살리기 위해서 소수가 복작복작거리면서 열심히 했을 텐데 그런 과정에서 심리 감정의 변화는 좀 어땠어요?


나 : 처음에는 당연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어요. 4명이서 살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신입생 OT 2~3일 동안 신입생들에게 정말 열심히 설문지를 돌렸어요. 그리고 그 설문지에서 우선순위 기준을 정해서 연락을 돌리고 동방에 올 수 있게 유도해서 만나고 했거든요. 정말 많이 오긴 했는데 고정으로 남은 사람들은 20명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 성취감이 정말 짜릿했어요. 이 20명이 내년에 또 더 많은 인원을 불러올 수 있으니 더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어요. 중요한 건 우리보다 더 큰 동아리 사이에서도 살아남고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는 거였어요. 대기업과 스타트업 회사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했어요.


동아리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상담사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어보셨다. 동아리에서 활동은 나에게 많은 부분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다. 수익 사업뿐만 아니라 동아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것이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 처음부터 진심을 다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해야 하니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부원들이 증가했고 동아리 인지도도 높아졌다. 이런 성과들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생기게 했고 이 자신감은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켰었다.


상담사님 : 제가 OOO님과 거의 한 달간 상담을 하면서 얘기를 나눴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상기되고 행복한 느낌으로 말씀을 해주셔서 말하면서 느낌이 어땠는지 조금 궁금해졌어요.


그 당시 함께 일했던 리더들 중 이 추억을 싫어하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자기희생을 많이 하면서 고생했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힘들었고 동아리 내에서 갈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하면서 얻은 자신감은 갯벌에서 꺼낸 조개의 값진 진주 같다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꺼낸 맛이 있는 것이다.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동아리에서의 추억들은 나에게 열정적으로 토해내듯이 이야기하는 주제가 되었다.


상담사님은 지금 내가 한 이야기를 영상화해서 영화관 스크린에 띄웠다고 상상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영상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어때 보이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저 주인공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험도 대단하지만 처음 시작만 봤을 때는 열심히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크게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팀워크를 이루고 노력해서 목표 초과달성을 해냈다는 점이 나중에 뭘 맡겨도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상담사님은 공감해 주시면서 무엇을 맡겨도 처음에 힘들어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방향을 잡아서 성공할 것 같다고 하셨다.


pexels-tima-miroshnichenko-7991486.jpg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면 재밌을까? 평범한 인생이지만 적어도 나 혼자는 재밌게 볼 것 같다.

상담사님은 저 영화에 제목을 붙여보면 어떨까 하셨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오래 고민하다 보니 상담사님이 임의로 'OO, 할 수 있을까? OO, 할 수 있겠는데!'로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떤 업무나 과업이 주어질 때 팀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고 최상의 성과를 낼 것을 의심치 않는 것. 그런 나만의 스토리를 지원하고 싶은 기업에 연결해서 그 기업에서 탐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상담사님이 동작을 알려줄 테니 따라 해보라고 하셨다.


오른손을 집게모양으로 만들고 왼쪽 엄지를 꾹 누른다. 통증이 좀 느껴질 때까지 누르면서 방금 상담하면서 꺼낸 동아리 이야기를 이미지화해서 머릿속에 떠올린다. 열심히 홍보해서 동아리를 살렸던 그때 느낀 자신감, 성취감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떠올려본다. 심장도 조금 빨리 뛰고 흥분되기도 한다. 이제는 왼쪽 엄지를 누를 때마다 그때의 기쁨과 성취감,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한 마디로 왼쪽 엄지는 이제 자신감 뿜뿜의 스위치가 되는 것이다.

상담사님은 왼쪽 엄지에 이름까지 지어주셨는데 'OOO의 자신감'이라 하기로 했다. 종종 기분이 가라앉거나 자신감이 떨어질 때 'OOO의 자신감'을 눌러서 그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기운을 내기로 했다.


조금은 유치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심리적인 장치들을 준비해 놓으면 유비무환이 될 수 있다. 정말 막막하고 힘든 상황을 겪을 때 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보단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시야가 좁아져서 올바른 해결방법을 쉽게 찾지 못한다. 그때 'OOO의 자신감'이라는 스위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생각을 환기시켜 주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방법인 것 같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흔들려도 힘없이 꺾이지 않고 다시 해보려는 마음. 그 바탕에 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화상 채팅을 끝내고 왼쪽 엄지를 지긋히 눌러보면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느낌을 즐겼다. '내가 이런 일들을 해냈었지!'라고 속으로 되뇌어본다. 이 엄지에 저장하고 싶은 멋진 기억은 더 없을까 머릿속을 한참 뒤적였다. 밝은 기억들 앞에서 가슴 아프고 슬펐던 기억들은 한순간의 것들이고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짧은 시간 전후로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았다. 다음 한 주도 어떤 일이 있든 잘 풀어나갈 자신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