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기 (8)
심리상담에 대한 글을 오랫동안 쓰질 못했다. 그동안에 진행되었던 상담 내용은 불안, 우울 검사 테스트를 통해서 나의 성향에 대해서 기존에 알던 것보다 자세히 분석해서 알게 된 것과 개인적인 진로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짧게 요약하면 나는 내면의 에너지가 많이 없는 편이라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불을 붙여서 활활 타올라야 요리를 할 수 있는데 불을 키울 장작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또한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실망한 경험을 많이 했고 굉장히 무기력한 상태임도 확인했다. 사실 자신의 직장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어서 신나게 일을 다니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직장을 다니면서 드는 부정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깊게 파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일했던 경력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했다.
1. 나의 경력, 얻기 쉽지 않은 결과
코로나 전, 농업 관련 교육 업무를 진행하는 회사에 다녔다. 외부로 출장을 몇 차례 다니면서 농업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판매 경로를 넓히기 위한 교육들을 진행할 때 필요한 교육 자료, PPT 등을 제작했었다. 단기로 일했던 것이라 3개월 후 그만두었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일자리는 구하기 더 힘들어졌고 쿠팡 야간 물류작업 알바를 하면서 몇 개월을 버텼다. 이후에 코로나19 사태가 더 심해지고 장기화되자 정부에서 내놓는 복지사업에 참여하여 코로나재난지원금 지급 보조업무나 보건소 생활방역 근무자들 근태관리를 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면접까지 합격돼서 들어온 것이 지금의 직장이다.
상담사님 : 나는 과학고를 떨어졌고, 특목고도 떨어졌고, 그 이후에 의대를 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됐죠. 그러면 대신 의전원(의학전문대학원)을 가보자라고 해서 생명과학과로 입학해서 준비를 했는데 결국 의전원도 연결이 잘 안 됐어요. 그다음에 이제 졸업하고 나서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았고...
계속 인생이 내가 계획한 거는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결과를 얻고 싶었던 대로 인생이 이렇게 풀려오지는 않았잖아요. 이 과정을 조금 거쳐오면서 좀 마음이 어떠셨어요?
나 : 그냥 평범하게 다른 과 친구들처럼 살았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어요. 그 당시 학교랑 협약을 맺은 기업들이 방학 때 인턴 경험을 쌓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별일 없었으면 그렇게 가서 회사를 정해 쭉 다니거나, 대학원을 갔거나 했을 것 같은데 저는 의전원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질 않았었어요. 결과는 만족하지 않게 나왔고 제 자신에게 짜증과 화가 많이 났었어요. 부모님이 가지셨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마음도 있었지만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제가 선택한 거잖아요. 누구한테 짜증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저한테 감정이 쏟아진 것 같아요.
상담사님은 만약 부모님께서 다른 길을 열어줬다면 나는 뭐가 되었을 것 같은지 물어보셨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취업프로그램에 맞춰 제약회사나 백신 생산 회사 쪽에 들어가 일했을 것 같았지만 더 옛날로 돌아가 중학교 때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기 전에 꿈을 찾았다면 아마도 글을 써서 돈 버는 쪽으로 일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문예창작과 같은 곳에 들어가서 지금과는 완전 다른 모습의 생활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한다. 상담사님은 내가 글쓰기 쪽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자 하셨다.
2. 실패를 통해 발전하지 못하는 나
글쓰기를 제대로 시작한 건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어떤 시인분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방문하면서였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시인분께서 에세이 교실에 참가해 볼 것을 제안하셨고 새로운 경험에 솔깃했던 나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여러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공모전 참가도 권유하셔서 몇 번 참가해 봤으나 쓴맛을 많이 맛봤다. 안 좋은 결과를 계속 맛보니 그나마 흥미가 있었던 글쓰기 자체도 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공모전 참가는 그만두고 브런치에 나만의 글을 올리기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자신감을 굉장히 많이 잃어버린 상태. 그래서 그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과거의 내가 잘했던 부분에서 끌어올 수도 있고 앞으로 내가 잘할 부분에서 끌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글쓰기에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면 이런 쪽으로도 진출해 볼 법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지금은 내 삶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하셨다.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진로를 결정하는 것.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했다.
상담사님 : '안 좋은 결과들이 쌓여가니까 이것마저도 싫어진다'라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OOO님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누군가한테 인정받아서 무언가 혁혁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굉장히 익숙하신 분 같아요.
근데 무언가를 오랫동안 꾸준히 하려면 인정받는 것도 물론 필요한데 그 자체를 좀 즐기고 재미있게 살 줄 알아야 되거든요. OOO님은 뭔가 실패하거나 안 되거나 그러면 '내 실력이 부족하다, 나의 어떤 것이 문제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보세요. 정말 그게 내 문제다, 내 실력이 부족한 거다라고 생각을 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돼요?
나 : 실력을 키워야죠.
상담사님 : '이번에는 안 됐으면 뭐 때문에 안 된 걸까? 이래서 안 된 거구나'하면서 원인을 찾고 고쳐나가면 발전이 돼요. 이 포인트가 되게 중요한 것 같은데 OOO님은 좌절되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져서 무엇을 더 개선하거나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가는 게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안이 안되면 2안을 통해 1안에 접근할 수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쓰기 공모전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면 만약에 떨어진 결과를 맞이했을 때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고 다음에 또 도전해 보는 것이 좋은 모습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공모전에 글을 내놓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게 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써서 작품을 만들고 제출한 것인데 그것이 안 좋은 결과를 받게 되면 그것을 고쳐서 다시 도전할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힘들다. 이미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쏟아서 재도전의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아지는 삶을 살기 어렵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답습하고 유지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성장하는 삶은 아플 수밖에 없다. 성장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이겨내면 멋지게 성장해 있는 것이다.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는 과정 중에 얻어지는 어부지리 같은 것이다. 상을 받으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잘 쓰게 되면 입상이라는 결과물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고 미흡하면 안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이치다. 상담사님은 과정이 어땠는지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고 결과가 무언가를 결정짓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실패한 것에 대해서 나와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 길에 대한 문을 닫아버린다. 그것이 직장 생활에서도 이어져서 과장님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 원칙만을 고수하는 과장님의 입장에 번번이 내 의견이 묵살되니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
상담사님은 나를 이렇게 좌절시키는 과장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으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렵게 말을 꺼내봤다. 과장님이 말씀하시는 원칙을 따르려고 과 사람들이 노력하는데 과장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이것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큰 요소이며 조금만 생각을 바꿔주시면 모두가 즐겁게 일할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다고. 한 조직에 묶였다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현재 우리 과는 누가 아프다고 하면 아픈 이유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아팠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최근 내 생일은 카카오톡 메신저에 뜬 생일자 알림을 보고 챙겨준 1층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 외에 아무도 챙겨준 사람이 없었다. (3년 넘게 다니는 병원인데 아무도 몰랐다는 것도 섭섭하긴 했다.) 생각도 '원칙대로'라는 말 아래에서 자유롭게 공유할 분위기도 아니다. 한마디로 일할 맛이 안 나고 인간적인 교류가 없으니 굉장히 외로운 곳이다.
상담사님 : OOO님은 누군가와의 정서적 의존이 굉장히 중요하신 분 같으세요.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됐을 때 위로와 공감을 받아야 힘을 내시는 분 같으세요. 그런 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하신 분 같으신데 정서적인 의존이 돼야 한다는 말과도 비슷하거든요. 혼자서 좌절하고 나서는 스스로 극복이 잘 안 되시는 거고 다시 일어날 의욕이 생기게 만드는 그런 동력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마음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나의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수많은 목표들을 달성하지 못한 심리적인 요인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 같았다. 실패했을 때 그것을 왜 그렇게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지를 다음시간에 깊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재도전할 에너지가 없다고 하기엔 회복의 시간을 충분히 두고 잘못된 부분을 분석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아예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건 왜 그럴까. 어찌 보면 가장 만나기 두려워하고 힘들어한 감정을 마주 봐야 한다. 2달 넘게 진행되어 온 상담의 큰 변환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