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부족했다
심리상담 일기 (9)
조금은 답답한 한 주를 보냈다. 지난 상담에서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마치 안개가 가득 찬 숲 속을 탈출하기 위해 헤매는 것 같았다.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지금 이걸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다음 상담 때 대화하면서 찾아가보자 생각했다. 실패, 좌절이 주는 부정적인 힘이 무슨 이유로 나에게 유독 크게 미치는지 말이다. 민사고, 과학고 등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명확하게 나지 않아 그 당시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떤 생각이었는지 골똘히 생각을 해야 했다.
돌아보면, 나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룬 것이 많이 없다. 특목고, 의대, 의전원 모두 단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인생 전체를 두고 성취한 것과 성공한 것을 말하라고 하면 실패보단 많을 것이다. 자격증도 많이 땄고 개인적으로 이룬 건강한 습관들도 있다. 100% 만족이건 아니지만 직장도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룬 것 대부분은 1~2달 기간에 노력을 쏟아부어서 해낸 것들이다. 3~6년 걸리는 학창 시절의 목표에 비하면 노력의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긴 시간이 주는 답답함과 학업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실패의 경험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까지는 풀어나갈 수 있었는데 그럼 왜 큰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상담시간을 맞이했다.
좌절을 통해 보는 나의 모습 : 쓸모없는 사람, 가치 없는 사람
상담사님 : 제가 OOO님이 좌절에 대해서 낮은 인내력을 가졌다고 말씀드렸죠. 특히 OOO님이 다른 감정들은 어떻게 잘 다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좌절감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통스럽게 생각하세요.
다른 감정들은 마음 한편에 잘 쌓아두고 있는데 좌절에 대해서는 쌓아두질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좌절을 쌓아두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건데요. 내가 좌절하면 그런 나 자신이 어떻게 보이세요?
나 : 쓸모없는 사람처럼 생각돼요.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목표를 못 이루는 상황이 되면 보통 그 목표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아는 목표거든요. 그런데 그런 목표가 무산되고 실패를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결과가 어떤지 물어봤을 때 그걸 말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실패를 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운 건지...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 목표를 못 이룬 못난 사람이라고 알리는 것 같아서 대답이 딱딱해진다던지, 날이 선다던지 하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해요.
대답을 하면서 방어적으로 웅크려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결과가 잘 안 나왔으면 인정하고 다음을 위해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인데 그러질 못하는 나 자신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목표를 못 이룬 나 자신도 싫고 그거에 대해서 말할 때 삐진 사람처럼 보이는 내 모습도 싫었다.
결국 난 나의 '못하는 꼴'을 보질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냐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들키고 싶지 않으면 숨기고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이런 방식의 생각은 내가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끼친다. '이런 부분을 내가 잘 모르는데 좀 알려주세요,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 경험에 비춘 예로 생각해 보면 민사고를 가려고 했으면 민사고 입학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내가 어떤 부분을 노력해야 하는지, 당장 나에게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물어본다는 것이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고 공부 방향도 정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거라 생각했기에 못난 사람임을 숨기고 싶은 나에게는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 나 자신을 가치 있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조건부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잘할 때만 괜찮은 사람'
지금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었다. '가치 있고 존재감 있는 나'만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과 원칙을 지키려는 융통성 없는 상사가 있었고 업무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 있다 보니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결국 이 안에서 나의 가치를 찾지 못하니 무기력함만 가득해지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상담사님 : 예전에 부모님이 공부 잘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곳에 간다 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교육시킨 방법으로 본인이 본인 자신을 대하고 있어요. 잘해야 가치 있는 사람. OOO님은 어딜 가든 똑같이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에요. 단지 특목고, 의대에 합격을 못한 거죠. 전에 특목고에 준비할 만큼의 실력이 되기 때문에 도전을 한다고 했잖아요. OOO님이 그런 똑똑한 사람인 거예요.
이래야 하는데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부모님의 시선을 떠올리니까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죠.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무언가 준비할 때 '이거 안되면 나 또 그 못난 꼴을 봐야 하는데, 좌절한 나를 만나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도전을 하면 할수록 못난 나 자신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이번에 준비하는 공기업 준비도 그러했다. 유독 집중이 안 되는 요즘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미래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와 함께할 미래를 위해서 공기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떨어지면 나뿐만이 아니라 내 여자친구, 그리고 내 여자친구의 부모님까지 내가 여자친구와 함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격을 의심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님은 내 생각의 기준으로 이건 미래의 가정을 이끌어갈 가장으로서 실패자라는 판단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 인생 중 통틀어서 가장 힘든 시기일 것이라 했다. 그런 부담감과 불안감을 안고 공부해야 하는데 집중이 되는 게 힘든 건 당연한 것이라 했다.
상담사님은 지금의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선 내가 말한 나의 쓸모없는 모습을 직면해야 할 때라고 하셨다. 중학교 때 목표로 세운 민사고부터 보기로 했다. 냉정하게 파악해서 민사고 왜 떨어진 것 같은지 생각해야 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