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석 Jul 22. 2019

70년대 그 시절 병영에서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40여 년이 지났으니 잊힐 만도 한데 어제 일인 양 생생하다. 군문을 나설 때는 세상을 다 삼킬 듯 기개가 있었고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젊음이 있었다.

  군에서 제대하면서 동료들은 불투명한 장래를 걱정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배운 것도 부족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부모님을 잘 만난 덕분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제대를 하면 다니던 학교에 복학을 하면 될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때 가서 걱정할 일이었다.

 군대 3년! 정확히는 34개월, 즉 2년 10개월이었다. 결코 허송한 시간은 아니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그 기간을 썩는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결코 썩는 기간도 썩힌 기간도 아니었다. 평소 하기 어려울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때로는 어려웠고 때로는 힘들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기쁜 일, 즐거운 일도 많았다. 가끔은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다. 진한 우정으로, 진한 동료애로 어려움을 넘긴 적도 있었다.

 저마다 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뇌에 저장된 기록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내 머리에 저장된 34개월간의 희로애락을 기록해 보려 한다. 보급이 좋지도 않았고 폭행이 다반사로 일어났지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그러한 것들이 많이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1973년 11월 27일 입대하여 12월 6일 군번을 받고 제2 훈련소 25 연대에서 6주간의 전반기 교육을 마쳤다. 보병 3사단 백골 교육대에서 4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3사단 23 연대 12중대에서 1976년 9월 말까지 근무를 했다. 안동 36사단에서 전역증을 받고 군 복무를 마쳤다. 1976년 10월 5일이었다.

  

                                          

                                                                         지루하게 보낸 수용 연대     


  깜깜한 밤, 찬 공기를 가르며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 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머리를 박박 민 녀석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옆자리를 흘끔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어디든 겁 없는 인간들은 있게 마련이다. 여기저기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도 별 일이 없다는 걸 확인한 놈들은 이제 대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들아 여기가 니들 안방인 줄 아나?”

인솔병의 악쓰는 소리의 위력은 대단했지만 그 위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것들이 말로 해서는 안되겠구만. 모두 일어서.”

 “모두 그 자리에 대가리 박아.”

멀뚱멀뚱 서로 눈치만 살피는 놈들에게 인솔병은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대가리가 뭔지 몰라 새꺄. 대가리를 기차 바닥에다 처박으란 말이다 대가리를. 빨리 안 박아?”

인솔병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군홧발로 몇몇을 짓이기자 박박 머리 들은 기차 바닥의 빈 곳에 머리를 대느라 부산했다.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어 웃어. 이 새끼들이... 어떤 새끼야?”

인솔병의 군홧발이 누군가를 걷어차는 소리와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뒤섞여 기차 안은 더욱 부산스러웠다.

 그러든 말든 기차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바깥이 깜깜해지고 한참이 지난 후에 인솔병이 저녁식사라며 건빵을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어린 시절 형님이 휴가 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맛있던 그 건빵 맛이 아니었다. 봉지를 뜯긴 했지만 입이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기차는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늘에 별이 가득했고 바람은 차가웠다. 인솔병을 따라 대강 줄을 맞추어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건빵을 던져 달라는 소리였다. 건빵을 얻어서 팔려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소곤댔다.

 한참을 걸어 위병소를 지나 얼마를 더 가자 불빛이 희미한 칙칙한 막사가 보였다. 막사 안에는 몇 녀석이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인솔병의 지시에 따라 후다닥 침상에 올라가 앉자 인솔병은 윗옷을 벗어 왼쪽 가슴에 실로 번호와 이름을 새기라고 했다. 가지고 간 바늘에 실을 꿰어 서투른 솜씨로 이름을 새겼다. 시간은 한 시가 넘고 있었다.

 낯선 상황에서도 금방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기상’, ‘기상’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찬  바람이 부는 깜깜한 바깥으로 나갔다. 추위에 떨며 줄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깜깜한 밤하늘에 대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애국가를 불렀다. 아침 점호라고 했다.

 간밤에 당번으로 정해진 몇몇이 버킷에 밥과 국, 김치를 타 왔다. 국에서는 콩나물 비린내가 역하게 났다.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하겠다며 숟가락을 아예 대지도 않는 녀석도 있었지만 억지로라도 밥을 입에 퍼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기를 닦을 때 한 눈만 팔면 식기를 다 훔쳐간다며 식기 씻는 당번뿐 아니라 식기를 지키는 경호인력도 필요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입대 전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충실히 받은 녀석들인 듯했다.

 무료하게 며칠을 지내는 동안 가끔 기간병들이 기록카드를 들여다보며 몇몇의 이름을 불렀고 이름을 불린 녀석들은 신체검사를 받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름이 불리지 않아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신체검사를 끝낸 친구 놈들이 다 떠나고 나만 남으면 어떻게 하나 겁이 나기도 했다.

 막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널브러져 자고 있던 녀석들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쇠꼬챙이로 난로 속 석탄을 헤집으면서 고참 행세를 하려고 들긴 했지만 녀석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들을 수 있었다. 속절없이 수용 연대에서 썩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고 신체검사에 불합격하면 귀향조치를 받는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왔는지 귀향조치를 받기 위해 필사적인 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는 비책들이 난무했다. 폐가 망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잉크를 몇 병이나 마시고 입대했다는 녀석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왔다는 녀석이었다.

 신체검사를 받기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었고 누가 시키는 일도 없어 무료하게 지내야만 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둘러앉아 돌아가며 노래를 부를 때는 하나같이 외설스런 노래만 불렀다. 노랫말이 저질스러울수록 그 대목을 크게 불렀고 더 신나 했다.

 마침내 신체검사 합격 도장을 받았다.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던 꾀죄죄한 녀석들이 부러워했다. 녀석들은 특과병이기 때문에 정원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고참 행세를 하던 녀석들이 우리 졸병 신세가 된 것이다. 

신체검사에 불합격해 귀향조치를 당하게 된 녀석들은 기뻐 길길이 뛰었다. 잉크를 마셨다는 친구도 다행히 거기 끼어 있었다. 그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것은 창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병장에 모여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았다. 어림짐작으로 몸에 맞는 옷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기간병은 옷을 뒤적거리지 말고 아무거나 골라 몸을 옷에 맞추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눈치껏 몸에 어느 정도 맞는 옷을 찾아 입었다.

 입고 온 옷은 나눠준 종이에 싸라고 했지만 옷을 모두 싸기에는 종이가 너무 작았다. 입고 온 점퍼 안에다 볼펜으로 큼직하게 안부 인사를 재빠르게 긁적였지만 그 점퍼가 너무 두터워 나머지 옷들은 모두 버려야 했다. 가진 돈은 잔돈만 남기고 모두 맡기라고 했다. 100원짜리만 몇 장 남기고 다 맡겼다.

 옷을 갈아입기를 마치자 상병 계급 기간병이 뺑뺑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몇 차례 선착순에 이어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반복해서 시켰다. 팔 굽혀 펴기에 쪼그려 뛰기까지 수없이 반복하더니 줄을 서라고 했다. 키 큰 사람은 앞에 작은 사람은 뒤에 서야 했다. 멀찌감치 뒷자리에 서 있는데 상병 계급 기간병이 전체를 휘둘러보다가 나를 지목하며 맨 앞줄 맨 오른쪽에서 기준을 잡고 서라고 했다. 옆에 선 녀석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오른 줄 맨 앞자리 그 자리가 재앙의 전조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을 지키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