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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l 15. 2019

건강을 지키려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사달이 났다.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입맛이 없더니 오슬오슬 오한이 들면서 온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면서 이빨이 덜덜 떨리고 솜이불이 들썩일 정도로 오한이 몰려왔다.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났지만 누워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1주일간의 여름방학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공부 한번 해보자고 이를 악문 것이 화근이었다.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밥도 부실하게 먹으면서 평소 하지 않던 공부만 꼼짝하지 않고 일주일을 계속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자취를 하고 있을 때라 간호해 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없었다.

  일주일간의 방학이 끝났지만 학교를 갈 수가 없었다. 이틀 동안 학교에 가지 않자 한 친구가 집으로 찾아와 내 몰골을 보고는 빨리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다음날 기다시피 학교에 가자 담임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당장 고향 집으로 가라고 했다. 고향 집으로 가서 한약을 먹고 한 달 동안 놀기만 하다가 2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 가자 친구 녀석들이 무장공비 같다고 놀려댔다. 광대뼈가 불거지고 몸은 바짝 말라 있었던 것이다.

  그때 빠진 체중은 이후로 불어나지를 않았고 흉악해진 몰골은 변하지 않았다. 가벼운 체중은 늘 콤플렉스였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저울에 올라갈 걱정부터 하게 되었다. 살을 찌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살찌는 한약조차도 효과가 없자 그냥 포기하고 살기로 했다. 그런데 나이가 쉰이 넘어가면서 체중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조금씩 늘어나던 체중이 대망의 60kg을 넘기고 얼마간 더 늘어나다가 신기하게도 딱 멈추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체중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체중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때 아픈 이후로 크게 아프거나 사고가 나거나 다친 적이 없다. 병원에 갈 일도 많지 않았고 크게 수술을 할 일도 없었다. 언젠가 코 속에 난 물혹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간의 입원생활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가끔 주사 맞고 조용히 누워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자면 되었으니 얼마나 편했겠는가.

  그렇지만 병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군 말년병 시절 피부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의무대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통 낫지를 않았다. 군을 제대하고서도 유명하다는 병원을 수없이 찾고 약을 먹었지만 피부병은 영 낫지를 않았다.

  어느 때부터 눈이 쓰라리고 따갑기 시작했다. 안구건조증이라고 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인공눈물만 가끔씩 넣어주면 된다고 했지만 오후만 되면 온 몸이 피곤하고 눈이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백화점에만 가면 눈이 따갑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고 어찌할 수가 없으니 참고 견딜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저 무심히 참고 견디며 살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눈이 별로 아프지 않고 눈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 치료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초록빛 먼 산을 보려고 노력한 것 외에는 달리 한 것이 없었다.

 피부병 역시 치료를 포기하고 그저 견디며 살고부터 언제였는지 모르게 나아 있었다. 병에 신경 쓰지 않고 그 병을 낫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 않고 살자 어느 때부터인가 병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몸이 가렵지 않고 눈이 편안해지니 살 것 같았다. 눈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 고마웠고 책을 맘껏 볼 수 있어 좋았다. 스마트 폰을 끼고 살면서 시력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껏 책 보는 데 지장은 별로 느끼지 않고 산다. 흔들리는 버스나 기차간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지금껏 건강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게 된 것은 오롯이 부모님 덕분일 것이다. 맘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을 가졌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나 후배들조차 한참 동생으로 보인다며 부러워할 정도로 젊어 보이는 얼굴은 다 부모님 덕분일 것이다.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도 모두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먹는 대로 소화가 잘 되고 살을 찌지 않게 된 것은 일정 부분 할머니 덕분인 것은 분명하다. 어릴 적 여름에는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만 먹었지만 할머니 밥그릇에는 늘 하얀 쌀밥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그 쌀밥을 끼니때마다 반은 남겨서 내게 주었다. 할머니가 주는 쌀밥을 먹기 위해서는 내 꽁보리밥은 천천히 그리고 되도록 많이 씹어야 했다. 보리밥을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 할머니가 주는 쌀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밥을 천천히, 많이 씹는 습관이 버릇이 되어 많이 씹지 않으면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게 되었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거나 얹힌다거나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할머니의 사랑이 손자의 평생 건강을 지켜 주게 된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껏 큰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은 분명 좋은 운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흔한 교통사고나 안전사고 한 번 당하지 않은 것은 운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건강에 매달리는 시대다. 만나면 건강부터 묻고 눈뜨기 무섭게 공원을 찾고 가까운 산을 찾는다. 헬스클럽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도 너무 이른 나이에 쓰러지는 사람 또한 많다. 운동을 하다가 도리어 건강을 해치는 사람도 많다. 건강을 지키려고 산에 올랐다가, 마라톤을 하다가 쓰러진 친구도 있다. 무엇이라도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러하지만 건강에 관한 한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히 겸손해야 할 것 같다. 매사에 감사하며 살면서 너무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것 또한 건강에는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건강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건강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나 중병에 걸린 사람이 병을 잊고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래저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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