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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l 08. 2019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상대를 무어라 불러야 하나 고민해 보신 적 없나요? 하루에도 수없이 그런 고민에 맞닥뜨린다고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할 적당한 호칭이 없어서지요? 기분 좋게라기보다 기분 나쁘지 않게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 모르겠네요.

  아줌마! 식당에서 흔히 듣는 말이네요. 그런데 불리는 당사자들은 이렇게 불리는 걸 썩 달가워하지는 않는 것 같지요? 아가씨! 아주 이쁜 말이지요?  뜻도 좋고  젊은 처녀들을 상당히 높여 부르는 말이기는 한데 쓰기는 좀 부담스럽다고요? 이렇게 불리는 당사자들이 아주 못마땅해하고 기분 나빠하기 까지 하는 것 같기 때문이겠지요?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다나 뭐라나 하면서 말이지요.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상대방을 부르기 애매하면 사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누구나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회장님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마을마다 널린 게 회장이지요. 모임이 만들어지면 회장부터 뽑지요. 그러다 보니 회장이 아주 많아지고 흔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대방을 사장님 대신 회장님으로 부릅니다. 요즘 어지간한 규모의 회사에는 회장이 다 있습니다. 오너는 사장이 아니라 다 회장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을 사장이라고 부르면 썩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회장이라고 누구나 불러줍니다.

  이 회장님들이 골프장에 가면 딸보다 어린 여자 도우미를 ‘언니야!’라고 부릅니다. 나이 어린 언니(?)들은 당연한 듯 군말 없이 받아들입니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때로는 할아버지보다도 나이 많을 남자 어른이 나이 어린 여자 아이의 여동생을 자처합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고도 아무렇지 않게 기분 좋게 몇 시간을 보냅니다.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외국인들이 언니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이 어린 여자를 부르는 호칭인 줄 알고 나이 어린 여자 아이를 보고 ‘언니, 언니’ 할까 두렵습니다. 

  백화점이나 시장 같은 델 가면 나이 듬직한 가게 아줌마가 나이 어린 여성이나 자기 또래 여자들을 언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또한 외국인들을 당황스럽게 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언니’의 뜻은 뭔가 하고 말이지요.

  식당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온갖 호칭들이 다 동원되지요? ‘어이’ ‘야’ ‘여기요’에서 ‘아가씨’ ‘처녀’ ‘아줌마’ ‘아지매’ ‘아주머니’ ‘아저씨’ ‘총각’ ‘학생’ ‘사장님’에 이르기까지.

  대학교 선생님들은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 아닌 ‘교수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존경의 뜻을 담은 가장 높임말인데 어느새 직업에 그 호칭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불렀다가 ‘자네는 호칭과 직업도 구분하지 못하나’ 하고 혼이 난 적도 있었는데 말이죠. 아마도 선생님이라고 하면 초 중 고 교사들과 구분이 안 되니까 학생 입장에서 대학교 선생님들이 ‘선생님’이란 호칭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교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다가 아주 호칭으로 굳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학생들의 교수님(?)들에 대한 배려가 지나쳤다고나 할까요!

  이즈음 젊은 새댁들은 남편을 다 오빠라고 부른다지요? 미혼이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진척되고 연인관계가 되면 자연스럽게 오빠가 된다면서요? 그러면 진짜 오빠는 뭐라고 부를까 궁금해지네요. 

  우리 민족은 아주 예의 바른 민족이었지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상대를 높이고 존중하고 받들어 모실 줄 아는 민족이었지요. 상대를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는 심성 착한 백성들이기도 했고요. 아이가 맞고 들어오면 자신의 아이부터 꾸짖고 혼내던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세태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만 소중한 아이가 된 것이지요. 아이를 적게 낳다 보니 그야말로 금지옥엽이 된 것이겠지요. 아이에게 버스나 지하철 같은 데에서 나이 든 어른들이 앞에 서 있더라도 자리를 양보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엄마, 할머니들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공부하느라 힘들고 피곤한데 어른들이 앞에 서있더라도 자리를 양보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으라’고 아이에게 당부까지 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던 그 사람들이 자신보다 조금만 못하다 싶으면 깔보고 무시하기까지 하는 세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식당 같은 데서 심부름하고 시중드는 분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가씨, 아줌마 같은 좋은 호칭이 아랫사람을 부르는 일반명사 같이 되어 이쁘고 친근한 호칭인데도 불리는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때 대리 운전하는 분을 함부로 대했다가 혼쭐이 난 국회의원이 있었지요. 대리 운전하는 분이 들려준 이야기인데요. 인격적 모독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야’, ‘너’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고 심지어는 뒷자리에 앉아 대리기사의 뒤통수를 툭툭 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합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뒤통수를 치면서 욕을 하고 비아냥거릴 때는 죽여 버리고 싶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는 ‘너 한 번만 더 때려봐라 핸들만 틀면 바로 한강이다.’ 생각할 때도 있답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목숨마저 부지하지 못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말을 올바르고 바르게 쓰자 아무리 외치고 캠페인을 벌여도 호칭이 바로잡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회구조가, 국민들의 의식이 이렇게 잘못되고 있는데 이것을 바로잡지 않고 호칭이 원래대로 바로잡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쉽게 배우니까 버릇없는 행동을 쉬이 배웠듯이 좋은 행동도 쉬이 배우지 않을까요? 그러면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는 말도 사라지겠지요? 이것은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고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선진국 대접을 받고 세계인으로부터 존중받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하고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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