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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l 04. 2019

자전거 도둑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전화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사고를 쳤다며 학교에서 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녀석이 자전거를 훔쳤다는 것이다황망히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떨구고 두 손을 힘없이 쳐들고 있었다."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이야기해 봐라손은 내리고."녀석이 말하는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그날 학교에서 누군가 농구공을 잃어버렸는데 없어진 농구공이 자신의 사물함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누군가가 녀석이 얼마 전에도 자전거를 훔친 적이 있다고 선생님께 고자질하여 자신이 꼼짝없이 범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농구공은 정말 훔치지 않았단 말이에요." 농구공을 훔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렸다며 볼멘소리를 계속했다. "농구공은 훔치지 않았다고 하자그런데 자전거를 훔쳤다는 건 뭐냐자전거를 훔쳤다는 건 사실이냐그리고 자전거를 훔쳤다면 그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 "아니에요. 잘못했어요그렇지만 나도 자전거를 두 대나 잃어버렸잖아요." 

  자전거 건에 대한 녀석의 변명은 가관이었다자신은 자전거를 두 대나 잃어버렸는데 자전거를 한 대쯤 훔친 것은 큰 잘못이 아니라는 말투였다정신이 아찔했다도둑질을 하고도 그 잘못을 모르다니. "난 널 믿는다농구공을 훔치지 않았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그러나 자전거를 훔친 것은 정말 나쁜 일이다이 일이 알려지면 너는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고 죗값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자전거를 훔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도둑질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널 용서해 주겠다어떠한 벌도 주지 않겠다앞으로는 절대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너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아빠는 내 아들을 믿는다."

  녀석은 계속 울먹였다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자전거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신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녀석에게 새 자전거를 한 대 사주었는데 그것을 한 2년인가 탔을 때 마당에 세워 둔 자전거를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잃어버린 자전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녀석이 안쓰러워 새 자전거를 하나 더 사주었다녀석이 늘 가지고 싶어 하던 좀 비싼 자전거였다녀석의 새 자전거에 대한 애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자전거를 한 일주일쯤 탔을까 학원에 타고 간 자전거를 또 누군가가 훔쳐 가 버렸다학원 앞 나무에 쇠사슬로 묶어둔 자전거를 쇠사슬을 끊고 가져간 것이다학원 바로 옆에 있는 파출소를 믿은 것이 불찰이었다

  녀석의 상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전거는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녀석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나도 값 비싼 자전거를 한 대 훔쳐 멋지게 복수를 하리라 다짐하고 치밀한 준비를 했다거사(?)를 함께 할 동지를 5명이나 확보하고 절단기도 구했다거사 단계에서 두 명은 겁이 나서 빠지고 네 명이 거사를 단행했다마을에서 수 ㎞ 떨어진 빌라로 가서 한 녀석이 절단기로 쇠줄을 끊고는 자전거를 유유히 가져왔다.  자전거를 집에 가져오면 웬 자전거냐고 추궁당할 것이 뻔할 것이므로 훔친 자전거는 거사에 참여한 한 친구에게 맡기기로 했다그 친구는 자전거를 두 대 가진 친구가 빌려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로 하고그러다가 몇몇 친구가 알게 되고 누군가 선생님께 고자질을 했다는 거였다

  다음 날 학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을 만났다함께 일을 저지른 아이들의 엄마들도 여럿이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엄마가 아니라 아버지가 온 것이 의외였던지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모든 것은 아들을 잘못 가르친 내 책임이라며 선생님께 용서부터 빌었다아이들의 엄마들에게도 일을 꾸미고 부추긴 우리 아이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만큼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할 테니 믿고 맡겨 달라고 부탁을 했다엄마들은 모두 큰 짐을 던 듯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다들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로 문제아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고 했다학교에 보고를 하게 되면 분명 징계가 내려질 것이기 때문에 아직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아버지를 믿어 보겠다고 했다.  거사에 동참한 녀석들을 모두 모으라고 한 토요일 오후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녀석들은 나를 보자 후다닥 무릎부터 꿇었다.

  "주인을 찾아 자전거를 돌려주려고 한다주인이 일부 변상을 해 달라면 변상을 해 줄 것이다그렇다고 너희들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자전거 주인이 경찰에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그러나 그러한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내가 그러한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녀석들을 차에 싣고 현장에 갔으나 주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빌라 경비실에 가서 경비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주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대씩 자전거를 잃어버린다는 거였다그리고 잃은 자전거를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그러면서 훔쳐 간 자전거를 돌려주려고 온 것은 경비 생활 7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어쨌든 방송을 해서라도 꼭 좀 주인을 찾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적어두고 왔다.

  이튿날 아침젊은 목소리의 남자가 방송을 듣고 자전거를 찾았다며 전화를 해 왔다자전거를 새로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돌려주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자전거를 일부 개조한 것은 변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녀석은 큰 짐을 던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 주셨다내가 힘들어할 때 힘을 주시고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 그에 마땅한 벌과 꾸지람 대신 다정한 말투로 내 잘못이 얼마나 큰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그 검던 머리카락이 하나하나 흰빛으로 변해 가면서도 짜증 한 번 내시지 않고 자상하게 대해 주시는 아버지는 정말 위대하신 분이다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처럼 아들을 키울 수 있을까아버지가 계시다는 게 정말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녀석은 글짓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나중에 그 글을 훔쳐본 것을 안 녀석의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2000년 9월 매일경제신문이 연재한 명사들의 자녀교육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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