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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Aug 05. 2019

드디어 자대로 - 23 연대 12중대

   백골교육대 동기 대부분은 23 연대로 배치되었다. 23 연대가 곧 철책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병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23 연대 대기병 막사는 신병 120여명이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비좁았다. 그 비좁은 막사에 말쑥한 옷차림을 한 기간병 하나가  들어오더니 나와 또 한 명을 지목하며 다짜고짜 따라오라고 했다. 보안대였다. 그 병사는 한쪽 구석에 잔뜩 쌓여 있는 너저분한 식기를 깨끗이 닦아 놓으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같이 잡혀 간 녀석이 기간병이 나가기 무섭게 찬장을 뒤지더니 '야 오뎅이다' 낮게 외치고는 잽싸게 주머니에 어묵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차마 그걸 주머니에 쑤셔 넣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안됐던지 녀석은 내 주머니에도 어묵을 쑤셔 넣어주었다. 녀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주머니에 든 어묵을 혼자 먹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냇가에서 식기를 닦으면서 몇몇 녀석들과 나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병 막사는 120여 명이 자기에는 좁아도 너무 좁았다. 대기병 막사 내무반장은 머리를 한참 굴리더니 15명이 한꺼번에 불침번을 1시간씩 서나머지 병력은 앞뒤로 등과 가슴을 밀착시켜 하나, 둘, 셋, 할 때 동시에 옆으로 쓰러지라고 했다. 동작이 굼떴다가는 대열에서 이탈해 잠잘 공간 확보가 불가능하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신통하게도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동시에 쓰러져 옆으로 누울 수 있었다. 불침번 시간에 일어나서 보니 모두가 바른 자세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이튿날 더플백을 짊어지고 3대대 문서 수발병의 인솔에 따라 연대 본부 뒷산을 넘어 3대대로 갔다. 산은 상당히 높아 더플백을 짊어지고 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대대본부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병사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철책 투입을 앞두고 병력들은 유격훈련을 갔다고 했다. 대대본부 행정반에서 신상명세서를 쓰고 중대를 배정받았다. 중화기 중대인 12중대였다. 교육대 동기 세 녀석이 함께 12중대로 배정을 받았다. 12중대 행정반에서 신상명세서를 쓰고 나니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행정반에 불을 켜는데 남폿불이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군 생활이 남포불처럼 암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음날 아침 점호 시간에 연병장으로 나가니 거지꼴을 한 병사들 몇 명만 넓은 연병장에 서 있었다. 며칠 후 유격훈련을 마치고 귀대한 병사들 또한 모두가 상거지 꼴이었다. 군복과 통일화는 물론 탄띠까지 기운 것을 차고 있는 병사들이 태반이었고 영화에서 보았던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쓰던 벙거지 비슷한 방한모를 쓴 병사도 있었다.

   중대원들이 전원 복귀한 다음날 아침 점호 시간에 전 대대원이 영문도 모른 채 온갖 기합을 받아야 했다. 한참을 혼을 빼놓던 주번 사령이 장교 식당의 식기가 하나 남지 않고 다 없어졌다고 했다. 주번 사령은 식기 훔친 놈이 나올 때까지 점호를 끝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병사들 것도 아닌 장교들이 쓰는 식기를 훔친 간 큰 놈이 그걸 훔쳤다고 말하겠는가?

   참으로 오랜만에 12중대에서 함께 군 생활을 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 식기 사건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녀석이 그때 장교식당 식기를 훔친 게 자신이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전방에 들어가면 식기가 부족할 거라며 어떻게든 식기를 훔쳐오라는 고참들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한 녀석과 함께 훔치기가 가장 쉬울 거 같은 장교식당을 덮쳤다고 했다. 그 훔친 식기는 내무반 천정에 숨겨 두었다가 전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점호 때 이어지는 기합을 참지 못하고 실토를 하자는 같이 훔쳤던 녀석을 말리느라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도 했다.

   중대장께 전입신고를 하고 박격포 소대인 3소대에 배치를 받았다. 3소대에서는 남포 닦는 일이 나에게 처음 주어진 일이었다. 소대에 갓 전입되어 아무것도 모를 때라 긴장의 연속이었고 언제 누가 찾을지를 몰라 언제나 통일화를 신은 채로 침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어느 날, 소대원은 모두 막사 뒤로 집합을 하라는 신호가 떨어졌다. 말로만 듣던 줄빳다를 치려는 것이었다. 고참 순으로, 같은 동기라도 군번 순으로 차례대로 엎드리라고 했다. 소대원을 집합시킨 고참 병장이 욕지거리를 하면서 일장연설을 하더니 5파운드 곡괭이 자루로 병사들의 엉덩이를 세 대씩 치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맞은 병사는 다음 병사가 맞기 쉽도록  일어나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빳다 소리를 들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줄빳다는 맨 위 고참이 치기를 마치면 다음 고참이 자기 밑의 졸병을 치고, 다음 고참이 또 차례대로 치는 것이었다. 같은 동기라도 군번이 늦으면 그 동기한테 빳다를 맞아야 했다. 도대체 얼마를 맞아야 할지를 몰랐다. 빳다를 기다릴 때가 맞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맞을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공포감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우리를 집합시킨 병장은 월남에 파병되었던 제대를 눈앞에 둔 악독하기로 소문난 고참이었다. 엉덩짝을 두어 차례 맞고 불안에 떨며 또 차례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무반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중대장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줄빳다 경험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곧 중대본부로 보직을 받게 되었고 이어 전방 철책으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책에서는 빳다나 기합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 총과 실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대본부 서무계 조수로 명령이 났다. 중대본부에는 서무계, 교육계, 보급계, 통신계, 병기계가 있었고 중대장 전령이 있었다. 각 계는 사수 한 명에 조수 한 명씩이었는데 서무계에는 사수 위에 제대를 앞둔 왕사수가 한 사람 더 있었다.

   서무계는 일반 행정 일을 보는 자리였는데 진급이나 휴가, 외출 같은 소위 끗발 있는 일과 월급을 수령하여 지급하고 정산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이러한 소위 끗발 있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였는데 그것보다 점호를 받지 않아서 더 좋았다. 점호 때마다 일을 만들어 점호를 받지 않도록 사수가 배려를 해 주었던 것이다.

    소대 고참들은 물론 소대 선임 하사나 심지어 소대장조차 서무계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썼다. 중대장에게 하는 모든 보고와 외출, 외박에 인사고과까지 서무계가 매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행정반 근무자들은 거의 점호를 받지 않았지만 가끔 점호를 받을 때 주번 사관의 지적을 받은 고참들이 가슴에 병장 계급장을 달고 있으면서도 상병이라고 관등성명을 외치는 것이 몹시 궁금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는 있지만 대다수 병장들은 실제는 상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병사는 병장 진급을 하지 못하고 상병 제대를 했다. 병장으로 진급하지 못한 병사들은 상병이면서도 병장 계급장을 달고 병장 행세를 했다. 중대장이나 소대장, 선임하사도 알면서도 그것을 묵인해 주었다.

   우리 서무계 사수는 병장이었는데 왕고참인 그의 사수는 상병이었다. 사수가 조수보다 계급이 낮고, 계급이 높은 병장이 상병을 깍듯하게 대하는 것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 사수는 진급을 마다하고 조수를 진급시켰다고 누군가 말을 해 주었다. 왕 사수가 존경스러웠다.

   중대장 전령이 장교 숙소에 가서 중대장 밥을 타오라고 했다. 플라스틱 식기에 담긴 보리쌀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새하얀 쌀밥을 보자 눈이 확 뒤집히는 것 같았다. 군에 입대하고 몇 달 만에 보는 하얀 쌀밥이었다. 그 하얀 쌀밥이 담긴 식기를 들고 오면서 먹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을 몇 번이나 먹어 보려고 했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그 짓을 못하게 막았다. 전령에게 식기를 넘겨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방 투입을 앞두고 목욕 준비 지시가 떨어졌다. 목욕탕이 있는 인근 부대로 목욕을 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비누와 수건을 챙겨 들고 열을 맞추어 군가를 부르며 갔다. 족히 3, 4 Km는 되는 것 같았다. 목욕탕은 샤워기만 달려있었다. 따뜻한 물이 잘 나와서 기분 좋게 목욕을 할 수 있었지만 비눗물을 채 씻기도 전에 물을 잠근다는 말을 들은지라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씻기를 끝마쳤는데도 물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며 겁을 먹고 빨리 끝낸 것이 아쉬웠다.

    철책에 투입되기 전 화력시범이 있었다. 전 대대원이 산 아래 모여 대전차 지뢰와 대인지뢰, 크레모어가 터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전차 지뢰는 집채만큼 큰 바위를 하늘 높이 날렸다. 대전차 지뢰는 사람이 밟아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대인지뢰는 발목을 날려버린다며 전방에 들어가면 곳곳에 있는 지뢰지대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크레모어는 전방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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