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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Apr 16. 2020

따사로운 봄날 분수대에서

어렵게 봄이 왔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봄이 거칠게 문을 두드립니다. 꽃들도 가늠을 못하는지 필 듯 필 듯하더니 마침내 한꺼번에 순서도 없이 꽃 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뒤늦게 호수공원은 천국이 되었습니다. 연두 빛 수양버들과 연분홍 수양 벚꽃이 어우러진 모습은 참 환상입니다. 뒤늦게 핀 개나리까지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호수공원은 꽃 천지가 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때 호수공원 분수대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드넓은 광장이 시골장터로 변했습니다. 단돈 천 원이면 물건을 살 수 있는 장터입니다. 백 원, 이백 원짜리도 있습니다. 쓸 수 없는 물건이 아닙니다. 완전한 새것도 많습니다. 코흘리개까지 나와 손님들을 부릅니다.

아는 얼굴들이 곳곳에 천막을 치고 먹거리를 팝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보고 싶었다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느냐면서 반 강제로 천막 안으로 손을 끌기도 합니다. 커피를 권하고, 녹차를 권합니다. 김밥도 건네고 떡도 건네줍니다. 빵도 주고 순대도 주고, 족발도 권합니다. 다들 뭔가 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천막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들어오라고 야단입니다. 그냥 이대로 주저앉을 거냐고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반겨주고 격려해 주고 제 처지를 자신의 일인 양 걱정해 주는 정 많은 분들입니다.     


새삼 분수대를 지을 때가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그 많은 돈을 분수대 만드는데 쓰는 것이 맞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아원, 양로원을 열 개는 지을 수 있는 돈을 그깟 분수대를 만드는 데 쓰는 것이 옳으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말도 일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나가 있었습니다. 설계를 마치고 자재 구매 계약을 다 마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분수대를 고양시에 유치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당시 경기지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해 몬주익 분수대를 보고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온갖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멋진 모습에 반해 경기도 어딘가에는 이런 분수대를 짓자 결심하고 귀국 즉시 시군을 대상으로 공모를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고양시가 선정이 되고 건설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시장에 취임하기 전 일이었지요. 

    

시민단체들의 반대는 날이 갈수록 격렬해졌습니다. 피켓 시위를 하고 성명을 발표하고 고양시와 시장을 성토했습니다. 마라톤 대회장에서 분수대 반대 구호를 등에 붙이고 달리기도 하고 꽃 박람회장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분수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에게 말했습니다.

'시장으로서 분수대는 만들 수밖에 없다. 고양시의 신뢰 확보를 위해서도 분수대는 반드시 지어야 한다. 전임 시장이 약속하고 계약까지 끝낸 상황에서 시장이 바뀌었다고 계약을 파기한다면 앞으로 누가 고양시를 믿고 일을 하려고 하고 투자를 하려고 하겠는가? 고양시의 신용확보를 위해서는 아무리 잘못된 사업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업은 잘못된 사업이 아니다. 고양시에 꼭 필요한 사업이다. 앞으로 고양시는 문화도시를 지향할 것이다. 공연장을 짓고 국제 전시장을 지어 고양시를 국제적인 컨벤션 도시로 발전시킬 것이다. 분수대가 만들어지면 문화도시, 컨벤션 도시에 걸맞은 고양시의 명소가 될 것이다. 심하게 반대를 하고, 아주 잘못된 행정이라고 시장을 질타하는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분수대를 다 만들고 나서 광장 한 모퉁이에 동판을 세우자. 당시 시장이었던 강모는 시민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이 분수대를 세웠고 시민단체 어디 어디는 분수대 건립을 끝까지 반대를 했다고 동판에 새기자. 그리하여 역사의 심판을 받자.'

 시장의 의지를 알게 된 시민단체들은 한 발 물러서면서도 분수대가 들어설 땅을 뒤덮고 있는 나무 한 포기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심을 것이다' 약속을 했습니다. 

분수대 만드는 데는 모두 218억 원의 돈이 들었습니다. 도비를 125억 원 지원받고 시비를 93억 원 들였습니다. 51,700㎡ 부지에 분수 직경 50m, 뿜는 물의 높이는 최대 35m로 최대 500가지의 물줄기가 음악에 맞추어 갖가지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게 지었습니다. 

    

분수대가 완공되기 전 중앙의 한 시민단체가 고양시 시민단체 사람들과 함께 시장실을 찾아왔습니다. 시장에게 상을 주려고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불명예스러운 상, '밑 빠진 독상'이었습니다. 매년 예산을 크게 낭비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하는 아주 치욕스러운 상이었지요. 밖에서 일을 보고 있던 저는 그분들을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들어갈 수가 없다. 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려라, 일 마치는 대로 가겠다. 상은 영광스럽게 받겠다. 그 상은 분수대가 완공되면 분수대에 영원히 보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 깨어진 독만 두고 갔습니다.

마침내 분수대가 완공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성대하게 개장식을 가졌습니다. 큰 나무는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가 약속대로 그 자리에 다시 옮겨 심었습니다. 볼품없는 일부 잡목들은 제거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그러나 키 큰 금강송을 여러 그루 심고 느티나무 등 다른 나무들도 많이 심었습니다.

시민단체가 주고 간 밑 빠진 독은 분수대 건물 내 한쪽 켠에 두고 분수대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분수대는 '노래하는 분수'라는 이름으로 고양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고양시의 아주 멋진 명소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젊은이들이 물줄기가 아름다운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모습을 보기 위해 분수대를 찾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밤하늘에 내뿜는 물줄기의 아름다움에 빠져 듭니다. 많은 관광객들도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습니다. 이들은 연신 셔터를 누르며 멋진 추억을 쌓아 갑니다.      

 "야 이걸 보고 있으면 도둑놈도 그 순간에는 도둑질할 생각은 안 하겠다"

 뉴질랜드에서 잠시 다니러 왔던 선배가 감탄하며 한 말입니다. 

   

 노래하는 분수, 스페인 시공사 회장이 앞으로 이러한 분수를 똑같은 모습으로는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리라 믿어 봅니다.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보조 분수대를 만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배짱이 부족했던 거지요. 시장으로서의 경륜을 조금만 더 쌓았더라면 분명 굴하지 않고 보조 분수대까지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따뜻한 봄이 되었으니 주말이 되면 분수가 물줄기를 하늘 높이 내뿜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시원스럽게 내뿜는 물줄기를 보며 함께 환호하고 함께 즐거워할 것입니다. 분수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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