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농촌에서는 겨울이 지나고 봄 햇살이 따스해지면 어둠침침한 방안 한 구석에 작은 울타리를 만들고 흙을 퍼와 반 평이 될까 말까 한 밭을 일구었다. 고구마를 심어 고구마 싹을 키우려는 것이었다. 방 안 밭에 고구마를 묻고 얼마간이 지나면 고구마는 샛노란 싹을 틔웠다. 노란 새싹은 금세 연푸른색 줄기를 뻗으며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방안 고구마 순이 연한 초록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어둠침침한 방안은 고구마 새 순 향기로 가득 찼다. 고구마 새 순이 내뿜는 냄새는 참으로 향기롭고 싱그러웠다. 고구마를 심은 방안은 문을 열기만 해도 콧속으로 형용하기 힘든 향기가 스며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개구쟁이들은 고구마 순 향이 가득한 방안에 모여 놀기를 즐겨했다. 고구마 싹이 자라는 어두컴컴한 방은 곡식 가마니 등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방안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향이 방안의 어두움과 지저분함을 모조리 지우고도 남았다. 내 기억 속의 수많은 냄새 중 어두컴컴한 방 한 구석에서 자라던 고구마순 냄새를 뛰어넘을 향은 없다.
그러나 이 좋은 냄새를 내뿜던 고구마 순은 이제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랄 것이다. 고구마 순을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예전 그 고구마 순 향을 그대로 내뿜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지금은 겨울철 점심 대용으로 고구마를 키우는 시절이 아니라 시장에 고구마를 내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고구마를 재배하는 시절이니 고구마 순 또한 대량으로 생산할 것이다. 비닐하우스에서 대량으로 자라는 고구마 순 향이 초가집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자라던 고구마 순의 싱그러운 향 내음을 이길 수 있을까?
사과 창고에 잔뜩 쌓은 사과 궤짝이 내뿜는 사과 향기 또한 봄날 고구마 순 못지않은 향이었다. 가을날 사과 궤짝이 가득한 창고에서 내뿜는 은은하지만 강렬했던 그 사과 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여름 마당가에 널어놓은 풀이 마르는 냄새나 바짝 마른 마당에 갑작스러운 소낙비가 일으키는 흙먼지 내음 또한 잊지 못한다. 학교 정원에 핀 장미가 내뿜던 강렬한 향 또한 잊혀지지 않는 향이다. 중학교 시절 화단가에 버려진 장미 가지를 집 마당 한 구석에 심었던 것은 오롯이 장미가 내뿜는 그윽한 향 때문이었다.
가마솥에 밥을 지으면서 뜸을 들일 때 나는 밥 냄새 또한 잊지 못할 향이다. 밥솥에서 밥과 함께 익어가는 콩 냄새 또한 좋았다. 가끔 아버지께서 장에 데려가 사주시던 숯불 돼지고기는 맛보다 그 냄새가 훨씬 더 좋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간이 지나서 나눠준 교과서에서 내뿜던 책 냄새 또한 잊혀지지 않는 향이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갈 때 간간이 만나던 버스 꽁무니를 기를 쓰고 쫓아다녔던 것은 오로지 버스가 내뿜는 휘발유 냄새 때문이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모두 맛있기만 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나이 탓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 때였다.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게 된 것은 냄새를 맡지 못해서라는 사실을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코 수술이 원인이었다. 코 속에 난 작은 혹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할 때에 축농증 수술을 함께 하면서 후각신경을 건드렸는지 그 이후 냄새를 잘 맡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수술 이후 냄새를 잘 맡지 못하게 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각신경이 되살아나 냄새는 당연히 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코는 냄새 맡는 기능을 되찾지 못했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면서도 냄새 맡는 기능이 음식 맛을 좌우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음식 고유의 맛 상당 부분이 그 냄새에 기인하는 것이었음을 냄새를 맡지 못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생선 비린내가, 고기의 누린내가 그것 때문에 생선이나 고기가 그 특유의 맛을 내는 것임을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꽃향기도, 솔 향도, 따스한 햇살이 만드는 새 순이 내뿜는 냄새도, 청량한 숲 냄새도 맡지 못한다는 것은 참 안된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때도 있으니 참 인생이란 오묘한 것 같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면서 악취 나는 곳에서 코를 틀어막지 않아도 되었다. 향이 강한 음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값비싼 코냑이나 위스키, 와인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쁜 꽃을 코밑으로 들이밀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할 때면 참 곤혹스럽다.
그윽한 커피 향이, 숲 속 소나무 향이, 파릇파릇 돋는 연초록 풀내음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슬을 머금은 보리밭의 싱그러움이, 그 냄새가 새삼 그리워지는 봄날 아침이다. 이 싱그러운 계절에 새싹의 싱싱함과 아름다운 꽃의 자태를 그 향기가 더욱 빛나게 할 것이지만 그 냄새를 맡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