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낙선의 아픔으로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선거에 실패했을 때가 새삼 떠오른다. 시장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연속 쓰디쓴 맛을 보았다. 시장선거에서 두 번 당선되고 난 다음의 연이은 실패였다.
2012년, 국회의원선거가 끝나자 내 주변은 적막강산이었다. 먼저 전화가 끊어지고 찾아오는 발걸음이 끊어졌다. 그 많던 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두 연락을 끊었다. 처절하리만치 낙선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위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는 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미안해하면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일 텐데 오히려 그분들이 더 미안해했다. 당선이 그렇게 자랑할 일이 아니듯 낙선했다는 것 또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데 사람들을 만나면 움츠러들었고 부끄러워졌다.
2년 전 시장선거에서 낙선했을 때는 오히려 홀가분했었다. 무엇보다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지낼 수 있었다. 더 이상 민원인들의 악다구니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한결 편하게 가질 수도 있었다. 낙선한 다음 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장실로 출근할 수 있었고 평상심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상실감이 너무 컸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래도 도와주신 분들께, 고마운 분들께 전화라도 드려야지 찾아뵙고 인사라도 드려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며 지인들이, 지지자들이 성화였지만 달리 내 몸을 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되었다. 여행도 다닐 수 있었고 만나자는 분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겉으로는 여유롭게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책은 읽히지 않았다. 화사하게 핀 봄꽃들조차 제대로 보아지지가 않았다. 봄꽃이 필 무렵이면 남녘으로 마음이 먼저 달려가고는 했었는데... 새벽 안갯 속 화엄사 홍매는 내 영혼을 뒤흔들었었고 쌍계사 벚꽃은 보는 눈을 얼마나 깨끗이 씻어주었던가. 그런데도 남녘으로 가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아름다움도 마음이 편해야 찾는 것인가?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충동도 마음이 안정되어야 이는 것인가.
매일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선거 치르는 꿈을 꾸는 것이었다.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데 선거 꿈인 것은 분명했다. 마음을 추슬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 내게 낙선의 아픔이 이렇게까지 컸단 말인가? 내상을 이렇게까지 철저히 입었단 말인가?
무작정 차를 끌고 돌아다녔다. 인근 파주로 강화로. 서해안을 찾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동해안을 찾아 부서지는 파도를 한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때론 아내와 함께 때론 혼자서. 마음 내키는 데까지 무작정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세월이 지나자 어느 정도 평상심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도 드리고 행사장도 찾고... 만나는 분들은 거의 같은 말씀을 주셨다. 위로 말씀이었다. 많은 분들이 반겨 주시고 안타까워해 주셨다.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말씀에 콧등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미안하다고,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었다.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결코 패배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날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많았구나, 가슴이 아려왔다.
"시장님은 이번에 왜 낙선한 줄 알아요?" 오랜만에 찾은 절의 스님이 물으셨다.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자 "시장님은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진 겁니다. 선거에서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선거에서 후보자는 때로는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유권자는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만 합니다. 들어주지 않으면 지지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도 합니다. 그런데 시장님은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지 하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질 못하잖아요. 결과가 뭡니까. 낙선했잖아요. 거짓말로라도 해주겠다고 약속해야 당선할 수 있는데 낙선하고 나니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어떻게든 당선이 되어야 시민을 위한 일이든 공약이든 일을 할 수가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그건 시민들에게 죄를 지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스님의 말씀이 맞는 말일까?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구차스럽게 당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무가 점점 푸르름을 더해 간다. 오월이 되면서 잎새는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색깔은 연초록빛을 더해 간다. 연초록 나뭇잎은 정말 곱다. 잎새들의 색깔이 짙어지면서 숲은 풍성함을 더해 간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에서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초록 잎새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연초록 잎새들에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온 산하가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초록 일색이다. 정발산이, 호수공원이, 문화광장이 온통 초록이다. 그 초록빛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과 눈이 더없이 시원해진다. 가슴이 뻥 뚫리고 마음이 더없이 넓어지고 커지는 것 같다.
아람누리와 문화광장을 잇는 육교를 건너면 초록색 옷을 잔뜩 껴 입은 키 큰 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듯 도열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묵묵히 반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꼼짝 않고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사이사이 느티나무와 소나무까지 늠름한 자태로 초록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오월의 광장 한가운데에 서면 연초록 나뭇잎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는지 연초록 나뭇잎의 신선함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지 새삼 느끼고 새삼 알게 된다.
싱그러운 오월의 나무를, 숲을 보노라면 모든 시름,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패배의 아픔마저 실패의 쓰라림까지도 쉬이 잊게 해 준다. 이 숲이 이 나무가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