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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May 14. 2020

나무로 뒤덮인 도시를 꿈꾸다

  예전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는 사방사업이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 산골에 살았던 사람들은 나무를 심는 부역에 나간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밥을 짓거나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내려면 나무를 베어 와서 불을 때야 했다. 가을이면 낙엽을 긁어야 했고 썩은 나무 등걸을 뿌리째 캐기도 해야 했다. 푸르러야 할 산은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 산에 나무가 가득하다. 예전이면 나무 하나 없을 동네 뒷산까지도 나무가 울창하다. 

 이른 아침 집 뒤 정발산은 아침 햇살을 받은 나무들로 더없이 싱그럽다. 이즈음 일산 호수공원은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와는 아랑곳없이 활력이 넘치고 생명력이 넘친다. 호수공원에 가면 호수공원이 있어 참 행복하다는 시민들을 많이 만난다.   

   

 일산 신도시를, 호수 공원을 설계하고 만든 분은 내무부장관과 건설부 장관을 지낸 이상희 전 토지공사 사장이었다. 신도시를 계획하고 시가지를 조성한 토지공사에 그분이 없었으면 아마 오늘의 일산이 이처럼 아름답지도 쾌적하지도 않을 것이다. 

 2002년 고양시장에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전 사장 측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분이 일산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낮은 키에 작은 체구의 노인은 자리에 앉자 일산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랬다 말씀을 토해내셨다. 일산과 분당 신도시를 같은 시기에 계획하고 착공했지만 일산에 훨씬 더 애정을 쏟고 더 열정을 바쳤다며 형형한 눈빛이 더욱 빛을 뿜었다.

 “일산과 호수공원을 처음 계획했던 대로 만들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시장께 일산과 호수공원을 제대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만나자고 했다. 일산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시가지의 가로수는 거리마다 수종을 달리했다. 역사성을 살리고 테마가 있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정 수목을 시가지 시작 지점부터 끝 지점까지 심은 것도 그런 사유였다. 가로를 너무 넓다 싶을 정도로 조성했고 공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만들었다. 무엇보다 정성을 들인 것은 호수공원이었다. 여기에 내 꿈을 모두 쏟아부으려고 했다. 애초에는 호수를 굉장히 크게 계획했었다. 지금 호수 서북쪽 끝에 있는 동산을 섬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수 바닥에는 용궁을 만들고 이 용궁과 공원을 오작교로 연결하는 계획도 세웠다. 토지공사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 반발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지금 호수공원은 나무가 너무 적다. 젊을 때부터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조경 공부도 좀 해서 나무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 호수공원에 나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심어 달라. 시가지 또한 마찬가지다. 일산이 한층 아름다워질 것이다.”     

 

 처음 일산에 이사 왔을 때 시가지는 황량했다. 시가지에는 아파트뿐 나무는 아예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가 도시를 이렇게 황량하게 만들었을까 주제넘은 생각도 했다. 

 시정 역점사업으로 나무 심기를 선정했다.

 시가지 곳곳에 나무를 많이 심어 나무가 울창한 도시로 만들고, 새로 조성되는 도로에는 큰 가로수를 심어 나무 심은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런데도 새로 건설되는 도로에는 여전히 작고 볼품없는 나무만 심어졌다. 큰 나무를 심으라고 해도 업체는 관행대로 작은 나무만 심었다. 작은 나무를 큰 나무로 다 교체하라고 해도 조금 큰 나무로만 바꿀 뿐 업체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몇 차례나 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큰 나무가 심어질 수 있었다. 

 학교 빈 땅에 나무를 심고 시가지의 자투리땅과 건물 옥상에도 나무를 심었다. 

 처음 호수공원에 나무를 더 많이 심자고 하자 담당자들은 시간이 지나 나무가 크게 자라면 지금 있는 나무도 캐내야 할 것이라며 은근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호수공원은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토질인 것 같다. 나중에 나무를 캐낼 때 캐내더라도 좀 많다 싶을 정도로 나무를 심자’고 달래야 했다. 그때 심은 나무가 지금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금강송과 자전거 도로와 보도 사이에 심어진 느티나무다. 호수공원에 소나무를 심기 시작하자 비싼 소나무가 죽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하는 분이 많았다. 새로 심은 소나무가 죽으면 시장이 책임지겠느냐며 소나무 심기를 방해하는 분까지 있었다. 

 호수공원 산책로에 나무 심을 예산을 편성하라고 지시를 했지만 나무 심는 예산은 편성되지 않았다. 산책로에 나무를 심으려면 산책로를 오랫동안 통제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시민들의 민원이 극심할 텐데 나무를 심을 수 있겠느냐며 담당과장은 자신을 인사 조치하고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산책로 나무 심기는 1년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 공사로 산책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만만치 않았지만 산책로에는 무사히 느티나무가 심어졌다. 어렵게 심은 나무가 한동안 잎을 피우지 않아 마음을 많이 졸여야 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일제히 연초록 새순을 틔우는 모습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일산 중앙로는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시가지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드넓은 중앙로에 중앙분리대를 만들고 거기에 나무를 심자 좋아하는 시민도 많았지만 비난 여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단횡단 사고가 많이 날 것이라는 데서부터 주목이나 단풍나무, 소나무 등 수종 선택이 잘못됐다는 비난까지. 몇 년 후 중앙차선제를 시행하면서 새로 설치한 일부 중앙분리대를 철거하게 되자 몇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탁상행정이었다며 비난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충장로 가운데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나무를 심으려고 하자 일부 시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멀쩡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나무를 심겠다는 전시행정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시도해 보고 나중에 시민의 평가를 받자’며 의원들을 달래야만 했다. 드넓은 도로에 푸르름이 가득한 모습을 시민들은 아주 반겼다. 여기에 힘을 얻어 충장로 도로변 둑을 따라 철쭉을 심어 가로를 더욱 아름답게 연출했다. 


 통일로 변 필리핀 참전비에서 고양동으로 넘어가는 도로에 가로수를 식재하려고 할 때도 주민들 반발이 극심했다. 가로수가 자전거 교행을 방해하게 될 거라는 이유였다. 담당과장이 일주일여를 현장을 지키며 설문조사를 하고는 압도적인 찬성 의견에 신이 나서 단풍나무를 심었다.  

    

 한국 최고 전시장인 킨텍스를 리기다소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킨텍스의 경관을 크게 해치고 있었다. 언젠가는 멋진 소나무로 바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내에 대단지 아파트를 시공 중인 건설사 회장이 아파트에 심을 멋진 소나무를 많이 비축하고 있다는 자랑을 했다. 이때다 싶어 염치 불고하고 부탁을 했다.

 “킨텍스에 심어진 리기다소나무가 킨텍스 경관을 크게 해친다. 리기다소나무를 캐내고 우리 고유 수종 소나무를 심으면 킨텍스가 참 빛날 것이다. 가지고 계시다는 그 명품 소나무를 킨텍스에 심으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킨텍스는 회장님을 길이 기억할 것이다”

 그 명품 소나무들 가운데 일부가 킨텍스 주차장 옆 호수로 옆에 심어져 킨텍스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 소나무 심기를 계기로 나머지 리기다소나무 또한 오래지 않아 모두 금강송으로 바꿀 수 있었다.   

   

 제2자유로를 건설하면서 도로공사는 도로 가운데에 철제 분리대를 세울 계획을 세웠지만 도로공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도로 한가운데에 중앙분리대를 만들고 나무를 심을 수 있었다. 


 북한산에서 발원해 고양시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흐르는 창릉천 둑에 벚나무를 심자는 시민의 제안을 받고 참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제방에 벚나무를 심고 하천을 준설해 체육시설과 산책로, 자전거 길을 만들고, 하천을 따라 유채나 코스모스, 해바라기 꽃밭을 만들면 수도권의 명소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하천 둑에는 나무를 심을 수 없다고 했다. 법이 그렇다고 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하천 제방에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것으로 안다. 창릉천 제방을 따라 북한산에서 한강까지의 둑에 벚나무가 심어지고 광활한 꽃밭이 만들어지는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서울 수색에서 우리 고양시로 들어오면 나무가 아주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울 택시 기사들은 도로에 나무가 우거진 것을 보고 고양시에 들어왔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서울에서 화전으로 들어오는 길 양쪽에 벚나무가 심어진데 더해 벚나무를 한 줄 더 심고 도로 한가운데에 넓은 분리대를 만들어 나무를 심고 꽃을 심었다. 고양시는 나무가 많은 도시라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었다.

     

 퇴임을 하면서 녹지 관련 직원들에게 부탁을 했다. 

 “자유로 변에 심은 벚나무가 봄이 되면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한쪽만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아쉬움이 크다. 한강변 철책이 걷어지게 되면 강 쪽에도 벚나무 길을 조성하고, 자유로 고양시 전 구간에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가로수를 심어주면 고맙겠다.” 

 담당자들은 50억 원 정도의 예산이 들 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강변 철책이 완전히 걷어지지 않고 있다. 퇴임하기 전 철책선 철거 예산을 편성까지 했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우리 고양시, 특히 일산 신도시는 나무가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토질이다. 시가지 대부분이 예전에 한강 바닥이었기 때문에 땅 밑이 물로 차있는 것이다. 특히 소나무는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소나무를 심을 때는 바닥에 많은 흙을 넣고 심어야 했다. 그렇게 심은 소나무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시 전체가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공원과 시가지는 물론 아파트 단지, 단독주택단지까지 녹음으로 뒤덮여 있다. 우리 고양시가 이처럼 나무로 뒤덮일 수 있게 된 것은 푸른 도시를 열망한 시민들과 녹지 관련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다. 이들의 헌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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