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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Aug 05. 2020

제2 킨텍스를 짓기까지 어떤 일이?

 킨텍스를 유치한 것은 고양시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킨텍스를 계획하고 고양시에 유치를 한 것은 전임 고양시장과 경기지사였다. 고양시는 전시장 부지 10만 평과 건축비의 1/3을 부담하고 킨텍스 운영권을 코트라에 양보하는 등 파격적인 제안을 하여 인천광역시를 제치고 킨텍스를 유치할 수 있었다. 킨텍스를 유치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양시는 킨텍스를 짓기 위해 30만 평의 땅을 사서 그중 10만 평을 전시장 부지로 제공하고 나머지 땅 20만 평은 전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단지로 조성했다.

 2002년 시장에 취임했을 때는 이미 킨텍스를 고양시에 짓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고 지을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어 킨텍스를 짓는 데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별로 없었다. 킨텍스와 관련된 예산을 차질 없이 확보하여 지원하고 킨텍스가 사고 없이 잘 지어질 수 있도록 독려하거나 공사 현장을 가끔 찾아 점검하는 정도였다. 2003년 5월 킨텍스는 계획대로 착공되었고 2005년 4월 29일 개장되었다. 킨텍스를 지으면서 고양시는 단번에 한국에서 가장 큰 전시장을 가진 전시 도시가 되었다. 킨텍스의 전시면적은 약 1만 6,200평으로 그때까지 가장 규모가 컸던 코엑스의 1.5배 규모의 전시장을 고양시는 가지게 되었다.  

 킨텍스를 짓고 얼마 지나지 않자 전시장은 곧 포화상태에 이르러 제2전시장을 지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원래의 협약대로 중앙정부에서 제2전시장을 추진해야 하는데도 주무부처인 산자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제2전시장을 지어야 하지 않느냐고 산자부에 호소를 해도 예산 주무부서인 기획예산처 핑계만 대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킨텍스는 고양시에 지어졌으니 고양시 재산이고 추가로 전시장을 짓더라도 고양시 재산이 될 테니 고양시가 추가 전시장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까지 들먹이며 제2전시장을 짓지 않을 궁리만 하는 것이었다. 포항제철은 포항시가 지었고 광양시가 지었느냐고 따졌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고 우리 시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2전시장 건립을 위해 전시장 부지 10만 평을 고양시가 제공할 테니 산자부는 건축비의 3분의 1만 대라고 했다. 나머지 건축비는 경기도와 고양시가 각각 3분의 1씩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제2전시장을 짓기로 했지만 고양시는 전시장 부지를 살 돈이 없어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 기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킨텍스를 지으면서 조성한 20만 평의 땅 가운데 그때까지 팔리지 않고 남은 땅과 2단계 사업을 하면서 조성하게 될 지원단지 부지를 합하면 당시 공시지가 만으로도 7,500억 원이 훌쩍 넘는 자산을 고양시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 땅은 전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용도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제2전시장을 건립하기 위한 땅을 사기 위해 중앙정부의 승인을 거쳐 2,170억 원에 이르는 지방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7,500억 원이 넘는 땅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채 발행은 쉽게 승인이 났고 제2전시장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제2전시장 건립은 곧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전체 건축비의 3분의 1을 분담하기로 한 산자부가 익년도 예산에 제2 킨텍스 설계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익년도 예산은 긴축예산을 편성해야 하기 때문에 신규예산은 편성하지 않기로 했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었다고 했다. 킨텍스 설계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2 킨텍스 건립공사는 추진될 수 없는 것이었다. 킨텍스 사장의 큰 소리를 믿고 킨텍스에 예산 확보를 맡겨놓은 것이 불찰이었다. 킨텍스 사장이 시장실로 찾아와 국무총리는 물론 당시 실세로 통하던 장관과 친분이 두텁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예산확보를 믿고 맡겨달라는 말을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당시 총리와 그 장관은 관내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도움을 주리라고 믿었던 나의 잘못도 컸다.

 킨텍스 설계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익년도 예산이 2,3일 후에 국무회의에 상정될 거라는 담당과장의 보고를 받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킨텍스에서는 제2킨텍스 설계예산이 익년도 예산에 편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야당이기는 하지만 당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 대표에게 전화를 해 다음날 아침 일찍 면담시간을 좀 잡아달라고 요청을 했다. 당 대표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모레 국무회의에 상정된다면 이틀밖에 남지않았는데 부탁한다고 들어줄까요? 안될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대표님을 찾은 것 아닙니까. 사정이 급박하지 않다면 대표님께 부탁드리지도 않지요. 저희 고양시가 기댈 데라고는 대표님밖에 없습니다. 킨텍스 설계예산이 내년도 예산에 반영되지 않으면 킨텍스 2단계 사업은 물 건너갑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표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대표비서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과 막역한 사이로 알고 있다면서 대표비서실장에게 부탁해 보자고 했다. 예산이 부족해 쩔쩔매는 기획예산처가 부처에서 편성도 하지 않은 예산을 새로 편성할 가능성은 0%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이미 국무회의에 상정이 확정되었을 뿐 아니라 집권당 대표도 아닌 야당 대표의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킨텍스 실시 예산 일부가 새로 편성되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다는 낭보를 당 대표가 전화로 전해주는 것이었다. 신청한 150억 원 전액은 반영되지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50억 원을 반영했다고 하면서 ‘나도 킨텍스 짓는데 한몫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농담까지 곁들이는 당대표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킨텍스 지원예산이 국회로 이송되고 나자 또 다른 산이 가로막고 나섰다. 생각지도 않은 당 소속 국회 예결위 간사가 킨텍스 지원예산에 대해 시비를 건다는 것이었다. 대표의 지시로 대표 비서실장이 두 번이나 예결위 간사를 국회로 찾아갔지만 킨텍스 건립 예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시장님이 찾아가서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장님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어깃장을 놓는 것 같습니다.”

대표 비서실장의 전화였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예산에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쇄가 되지 않아 수기로 써가면서까지 국무회의에 상정하고 통과까지 해주었다고 하는데 같은 당 의원이 이렇게까지 협조를 하지 않는다니 어이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국회 당 예결위 간사 방을 찾았다. 그는 친하지는 않지만 진작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중앙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일개 지방도시가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당에서 방해를 합니까? 이건 방해할 사항이 아니라 상을 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힘 있을 때 도와주소.”

 “그럼 예산에 반영할까?”

 “예산에 반영할까가 아니라 당연히 반영해야지요. 여당이 반영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싸워서라도 반영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야당 예결위 간사가 할 일 아닙니까? 제발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좀 봐주소.”

 “그럼 봐주기로 할까?”

 “그러지 말고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힘을 써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그럼 반영하도록 하지 뭐.”

 국가예산을 장난치듯이, 제 주머닛돈 꺼내 주듯이 하는 그 행태가 역겨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가 바뀌고 대선이 있었고 우리 당이 여당이 되었다. 중국 출장 중일 때 새벽같이 킨텍스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달청에서 그때까지 킨텍스 설계 입찰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유는 짐작은 가지만 말씀드리기는 난처한 사항이라며 당시 실세로 통하던 유력 국회의원이 방해를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확실히 경위를 파악해 보고 그것이 사실이면 그러한 내용을 언론에 흘리라고 했다.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어떻게든 조달청이 입찰에 부치도록 하겠다는 킨텍스를 믿고 기다렸지만 조달청은 계속 입찰을 미루고 있었다. 연말까지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면 예산을 반납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2 전시장 건립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12월, 막판에 몰린 킨텍스가 ‘국회의원의 압력으로 조달청이 입찰을 늦추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 언론이 눈치채고 보도를 준비하는 것 같다’고 그 의원에게 반 협박을 하면서 일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킨텍스 제2전시장은 마침내 착공이 되었다.

 제2전시장 건립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던 중 시장선거에서 그만 낙선을 하고 말았다. 킨텍스 공사 진행상황이 무엇보다 궁금했지만 낙선을 하고 시장에서 물러난 입장에서 물어보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역 신문에 킨텍스 2 전시장이 완공이 되어 개관을 했다는 기사가 났다. 그 기사를 보고서야 제2전시장이 개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리를 호되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슴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사가 이런 것이구나. 시장에 떨어지고 시장이 아니라고 개관식에 초청조차 않는구나. 초대장 하나 보내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일이었을까. 얼마나 킨텍스에 애정을 쏟았는지, 킨텍스 2 전시장을 짓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잘 아는 시 직원들이나 킨텍스나 다 똑같구나. 시장이 아니라고 이렇게 대접을 하는구나.’

호수공원 분수대 옆에 문화원사가 지어졌을 때도 그랬다. 그 자리에 문화원사를 짓도록 위치를 잡고 부지까지 지원해주는 결정을 해주었는데 문화원사를 준공하고 개원을 하면서 개원식 통보조차 없었던 것이다. 세상인심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선거에 패배를 하면 악착같이 다시 당선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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