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여 전 어느 날 저녁 모임을 가지다가 당혹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시장 재직 시절에 사무관 승진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이없어 하자 저녁 TV 뉴스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시 인사가 있을 때마다 사무관 승진자 한 사람 당 4천만 원씩 받았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계속 전화가 이어졌다.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닌 거 같았다.
다음날 아침 시청 긴급 기자회견장에는 시청과 구청 사무관급 이상 간부 공무원 1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자신들의 명예가 크게 손상됐다며 분노하는 공무원들이었다. 백만 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왜 그런 보도가 나왔는지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대충 알아본 바로는 한 여성 시의원이 중앙 일간지 기자와 함께 새로 시청을 출입하게 된 공영 방송사 기자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전임 시장이 시청 인사가 있을 때마다 사무관 승진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했고 이에 솔깃한 방송 기자가 ‘그것을 기사화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시의원이 괜찮다고 하여 그 기자는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전임 시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동석한 일간지 기자가 기사화를 적극 만류했지만 그 말은 무시되었다.
해가 바뀔 무렵, 사무실로 남루한 차림의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누군가 쳐다보는 나에게 그는 다짜고짜 털썩 무릎부터 꿇으며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그 기자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당혹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남자는 그렇게 쉽게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을 가져라’고 하며 일어나라고 했다. 소파에 마주 앉은 그는 시의원의 말이라 당연히 믿었다고 했다. 기사를 작성해 시의원에게 보내 그대로 보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확인까지 했다고 했다.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물음에 방송국 선배들이 하나같이 그 사람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면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일로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다면서 자신과 회사를 상대로 한 검찰 고소를 취하해 줄 수 없겠느냐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너덜너덜하게 닳은 양복 소매까지 보여주면서 생활고를 말하고 소를 취하해 주면 곧 있을 국회의원선거에서 꼭 당선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 돕겠다는 그가 측은하게도 비열하게도 느껴졌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마라. 젊은이 장래를 봐서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의원의 사과와 방송국의 정정 보도를 받아내고 나서 용서하고 소를 취하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많이 누그러진 모습을 본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 준다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전까지 소를 취하 해달라고 읍소를 계속했다. ‘용서해준다고 했다. 난 한번 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다. 기다려라, 검찰에 기소될 일은 없을 것이다’고 했지만 그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도록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꼭 소 취하를 해달라고 거듭 매달렸다.
젊은이의 인생이 불쌍하고 그의 장래가 걱정되어 해가 바뀌고 2월경에 소 취하를 했다. 그 기자는 고맙다는 전화를 한 번 하고는 그만이었다. 생각한 대로였다. 그 무렵 방송사와 밀고 당기는 공방 끝에 내가 요구한 대로 방송국은 저녁 뉴스에서 ‘강현석 전 고양시장이 고양시 사무관 인사에서 거액을 받았다고 보도한 방송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로부터 7년쯤 지나 그 기자는 몇 달 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서로 간 고소에 이은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그를 보면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시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의 질책과 공격을 무수히 받았다. 언론은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온갖 것들을 시시콜콜 따지고 시비했다. 사실에 기초한 것들도 있었지만 기자 개인의 억측이나 소문을 기사화하는 것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청탁성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사이비 기자까지 있었다.
한 공중파 방송은 저녁 메인뉴스에 주요 뉴스로 하천변에 버려진 노변 청소 폐기물이 빗물에 씻겨 하천으로 흘러들어 가 하천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도로 청소 부산물인 노변 청소차 폐기물은 중금속 등이 함유될 수도 있어 노천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노변 청소 폐기물을 업체가 노천에 적치하도록 방치한 시의 잘못은 컸다. 그러나 하천에 적치된 폐기물은 그 양이 아주 소량이었고 비가 와서 하천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하천을 오염시킬 염려는 거의 없었다.
공보담당관을 불러 그 기사에 대해서는 알은 체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이틀이 지난 후 또다시 메인뉴스에 팔뚝만 한 잉어가 죽은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도 고양시가 정신을 못 차렸다’는 보도를 이어갔다. 그 하천은 물이 깊지 않아 작은 물고기만 간간이 보일 뿐 큰 물고기는 거의 살지 않는 하천이었다. 그러니 잉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계속 무시로 일관하라고 했다. 고양시 이미지에 큰 피해를 입힐 보도에 항의는 고사하고 변명조차 하지 않는 것이 기이했던지 그 기자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특정폐기물을 하천에 방치하도록 한 잘못이 있는데 뭐라고 항의할 거냐, 잉어가 살고 있지 않는 것은 기자가 잘 알지 않느냐’고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기자와 가까워지게 되었고 시와 관련된 좋지 않은 기사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 기사와 관련하여 항의를 하거나 윗선을 연결해 압력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렇게 평온하게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향력 큰 중앙 일간지가 지자체의 호화 청사 신축 관련 보도를 하면서 고양꽃박람회 역시 큰 적자를 내는 예산낭비성 행사라는 기사를 곁들여 내보냈다. ‘고양꽃박람회는 적자가 아니라 매번 흑자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화훼농가의 소득 증대나 고양시의 이미지 고양 등 꽃박람회의 부수적인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논지로 그 신문에 기고를 했다.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지나 선거를 앞둔 겨울 어느 날 눈이 유달리 많이 내려 시내 교통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 다음날 그 신문은 눈으로 뒤덮인 고양시 도로와 제설작업이 말끔히 된 인근 파주시 도로를 대비시킨 사진과 함께 고양시 제설행정을 비판하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고양시장의 꽃박람회 관련 기고로 자존심이 크게 상한 기자가 고양시장을 혼내주려고 작심한 기사였다. 눈 쌓인 고양시 도로는 눈을 치울 필요가 없는 공사현장 사진이었다는 담당자의 보고가 있었고 그해 겨울 고양시는 경기도 제설작업 평가에서 파주시보다 한참 앞선 2위를 했다.
추위가 가시고 봄이 되어 시장선거가 시작되자 그 신문의 고양시 제설작업 관련기사는 선거기간 내내 발목을 잡았다.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나는 유권자들이 제설작업이나 똑바로 하라며 힘을 빼는 것이었다. 상대 후보 지지자들이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맥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한 지방신문 기자가 부임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인사를 끝낸 그 기자는 내일 자사 신문의 톱기사라면서 원고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일산호수공원 산책로 우레탄 포장공사 부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우레탄 포장을 규격보다 두께를 훨씬 얇게 포장했다는 것이었다. 왜 이걸 보여주느냐고 하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문사 사업 관련 자료를 건네주면서 그 사업을 적극 도와주면 그 기사를 싣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는 후안무치에, 그 배짱에 할 말을 잃었다. 그 기사를 그대로 내보내라고 했다. 기사 게재 여부는 신문사 재량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그리고는 호수공원 산책로 포장공사 담당자를 불러 호수공원 산책로 곳곳의 포장 두께를 그 기자와 함께 확인하라고 했다. 산책로 곳곳은 규격보다 훨씬 두껍게 포장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 신문사는 사과도 정정보도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엉터리 지방지를 누가 보겠느냐 싶어 문제삼지도 않고 그냥 넘어갔다.
대다수 기자는 사실 보도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의심받을 행위는 애써 피하고 잘한 행정이나 권장할 만한 행정의 소개에는 인색하지도 않다. 그러나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기자 또한 의외로 많다. 근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고도 실제 방송에는 10초도 내보내지 않는 기자도 있다. 인터뷰 내용과는 완전히 상반된, 자신의 의도대로 교묘하게 편집하여 내보내는 기자도 있다. 환경 친화적인 내용의 인터뷰를 했는데도 환경파괴적인 주장을 하는 내용으로 방송에 내보내는 횡포 같은 거 말이다.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할 때는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주지만 그 질문지만 믿고 인터뷰를 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전혀 엉뚱한 질문을 하여 당황하게 만드는 사례가 다반사인 것이다. 유명 스타 방송인 한 사람은 그 방면에서는 아주 호가 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