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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Oct 22. 2021

호수공원 이야기

호수공원은 고양시민, 특히 일산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호수공원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펼친 사람들로 가득하고 산책길에는 걷고 뛰는 사람들로 늘 부산하다. 조성된 지 25년을 넘긴 지금 호수공원은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하고 호수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노닐고 있다.  

   

1. 호수공원이 만들어지기까지     

시장에 취임하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무부와 건설부 장관을 지내고 토지공사 사장 시절 일산과 분당 신도시 등 5대 신도시를 설계하고 지은 이상희 전 장관이셨다.

오찬을 겸한 자리였는데 장관께서는 식사는 뒷전이고 말씀에만 열중하셨다. 당신께서는 5대 신도시 중에도 일산신도시에 가장 애착을 가지고 열정을 쏟았다면서 일산신도시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시가지를 시원스럽게 조성하고 공원 등 녹지공간을 많이 만들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여러 사정으로 생각대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며 그 부족한 것을 보완해 줬으면 하는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았다고 하셨다.

장관께서 말씀하셨다. 호수공원은 당초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로 계획을 했다. 호수공원 서쪽 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산을 섬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이 산을 섬으로 만들었다면 호수는 물론 호수공원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데 토지공사 직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호수 밑에 용궁을 만들고 이 용궁과 시가지를 오작교 같은 다리로 연결하려고도 했지만 이 또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돈은 많이 들었겠지만 구상대로 만들었다면 호수공원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호수공원은 나무가 너무 적다. 아직 채 자라지 않아 나무가 더욱 적게 느껴진다. 시장께서 나무를, 그것도 큰 나무를 호수공원에 많이 심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호수공원이 시민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시민들이 찾는 명소가 된다. 시가지에도 나무를 많이 심어주면 좋겠다. 일산신도시는 도로마다 가로수 수종을 달리했다. 이 나무들이 다 자라면 나무가 울창한 시가지로 변모하겠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자유로를 만든 일화도 들려주셨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위원들이 모두 자유로 건설을 반대했지만 당신께서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설득하여 자유로를 만들게 되었노라는 말씀이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자유로를 그렇게 넓게 조성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때 자유로를 만들지 않았다면 고양과 파주의 교통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자유로는 매년 전국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도로 1위를 기록 중이다.

     

2. 옮겨 심은 소나무가 삽니까?     

호수공원에 나무를 많이 심자고 하자 직원들의 반대가 컸다. 나무가 자라면 지금 심어져 있는 나무도 캐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을 설득하고 달래 가며 금강송을 심고 느티나무를 심었다. 키 큰 아름드리 금강송을 심기 위해 땅파기를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나무 심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 비싼 소나무가 죽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심은 소나무는 다행히 죽지 않고 잘 살아 주었다.

2008년 말쯤이었을 것이다. 세계 꽃박람회를 앞두고 백두산, 금강산 등 야생화 전시를 섭외하기 위해 중국에서 북한 관리들을 만났다. 협의 과정에 호수공원에 소나무 심은 이야기를 하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소나무가 옮겨 심어도 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북에서는 온실 등 시설이 낙후되어 일반 식물들도 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호수공원은 바닥이 온통 뻘이어서 흙을 많이 다져 넣고 소나무를 심어야 했다.

호수공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충돌 사고를 막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기 위해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느티나무를 심기로 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담당 과장이 민원을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예산을 편성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꼭 나무를 심으려면 자신을 인사 조치하고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해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심은 느티나무가 활착을 하지 못하고 하나 둘 시들어가서 마음을 많이 졸였다. 그러나 이듬해 봄이 되자 느티나무는 모두 싱싱한 새잎을 피우며 잘 자라 주었다.  

    

3. 호수공원 비단잉어     

호수공원은 물고기 방류를 막았다. 호숫물 오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한때는 베스, 블루길 등 외래종 물고기가 맹렬히 번식을 하기 시작해 전문 낚시인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소탕을 벌여야 했다. 외래종 물고기가 사라지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붕어, 잉어 등 토종 물고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수공원이 생명력을 가진 호수가 된 것이다.

2009년인가 비단잉어를 전문으로 키우는 분이 호수공원에 비단잉어를 방류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왔다. 공원 관리직원들이 물이 더러워진다며 비단잉어 방류를 막고 있다고 했다. 밤에 몰래 방류를 하면 누가 알겠느냐고 웃으며 말하자 그래도 되겠느냐고 정색을 하는 것이었다. 방류를 하다가 들키면 시장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라고 했더니 얼마간이 지나 비단잉어 치어 5천 마리를 방류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때가 좋지 않았다. 늦가을에 방류한 물고기들이 겨울을 나면서 태반이 감기에 걸려 죽은 것이다. 그때 용케 살아남은 비단잉어들이 지금 호수 몇 군데에서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애수교와 월파정 다리 밑, 분수대 앞쪽 연꽃 서식지 등이다. 따뜻한 봄날 갓 깬 새끼 오리들이 어미 오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에 더해 팔뚝만 한 비단잉어가 일반 잉어와 더불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은 아이들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광경이 되었다.

     

4. 노래하는 분수     

호수공원 서쪽 끝에는 고양시의 또 다른 명소 ‘노래하는 분수’가 자리하고 있다. 이 분수 건립 계획에 반대가 극심했다.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그 많은 돈을 분수대 만드는데 쓰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분수대는 당시 경기지사가 경기도 관내 시군을 대상으로 공모한 사업에 고양시가 선정된 것이었다. 내가 시장에 취임하기 한참 전 일이었다.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에게 말했다.

“시장으로서 분수대는 만들 수밖에 없다. 전임 시장이 약속하고 계약까지 마쳤는데 시장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다면 어느 누가 고양시를 믿고 사업을 하려고 하겠는가? 고양시의 신용 확보를 위해 이 사업은 할 수밖에 없다. 분수대 광장 한 모퉁이에 동판을 세워 역사의 심판을 받자. 시장 강모는 반대를 무릅쓰고 분수대를 세웠고 어디 어디 시민단체는 반대를 했다고”

분수대는 도비 125억 원과 시비 93억 원을 들여 1만 5천여 평 부지에 분수 직경 50m, 물의 높이 최대 35m로 500가지의 물줄기가 음악에 맞추어 갖가지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분수대가 완공되기 전 중앙의 한 시민단체가 고양시 시민단체와 함께 시장실을 찾았다. 시민단체의 극심한 반대에도 분수대 건립을 강행한 시장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었다. 이름 하여 '밑 빠진 독상'. 매년 예산을 크게 낭비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하는 아주 치욕스러운 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분수대는 수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말이면 하늘 높이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상으로 받은 밑 빠진 독은 분수대 한쪽 켠 건물에서 분수대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동판은 시민단체가 관심을 보이지 않아 만들지 않았다.

   

5. 색소폰 할아버지     

어떤 분이 호수공원에서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호수공원 관리직원들이 시끄럽다는 민원이 많다며 연주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색소폰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데 이렇게 음악을 홀대해도 되느냐는 항의를 겸한 메일이었다. 그분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나이가 꽤 드신 할아버지셨다. 매일 점심시간에 연주를 하는데 자신의 연주를 듣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꽤 된다고 하셨다. 암센터에서 치료받는 분들 가운데도 색소폰 연주를 듣기 위해 일부러 찾는 분들이 있다고 하셨다. 호수공원 관리소장은 색소폰 소리가 시끄럽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연주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은 맞다고 했다. 그런 민원은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될 듯하니 연주를 할 수 있게 편의를 봐 드리면 안 되겠느냐고 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호수공원 연주장을 찾자 할아버지는 아주 반색을 하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할아버지는 연주하러 나오기 전에 그날 연주할 곡을 몇 곡 선정해 몇 번씩 연습을 한다고 하셨다. 듣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하시면서. 연주장을 찾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연주를 그만둘 수는 없다고 하셨다. 암 치료가 너무 힘들어 잠시라도 그 고통을 잊기 위해 호수공원을 찾았다가 색소폰 연주에 힘을 얻었다며 찾아오는 환자분이 있는가 하면 색소폰 연주를 잊지 못해 멀리 외국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도 있는데 그런 분들을 두고  어찌 연주를 그만둘 수 있느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일까,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비싼 색소폰을 구입하여 부속품을 손수 다 갈아 끼운, 세계에서 하나뿐인 색소폰이라며 자랑하시던 그 색소폰으로 혼신을 다해 연주하시던 그 할아버지의 색소폰 선율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것인가?


6. 정지용시비  


    호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호수공원 장미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정지용시인의 시비가 있다.  위 '호수'라는 시가 새겨진 시비다. 이 시비는 1961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3개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유명한 이근배시인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시인께서 유족은 어떻게라도 설득해 허락을 받을 테니 호수공원에 이 시비를 세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장지용 시인의 시 '호수'가 가장 어울리는 장소는 바로 일산 호수공원이라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예산도 책정해야 하고 유족들 허락도 받아야 했다. 시민들 반대가 있을지도 몰랐다. 장소 선정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비를 어떻게든 세우자고 결정을 하고 나서는 시비는 별 어려움 없이 세워졌다. 이근배시인의 시비 건립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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