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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Oct 14. 2021

가을 문턱에서 다시 찾은 설악산 '금강굴'

[비선대(와선대) - 금강굴 4.5KM]

설악산 소공원 매표소 - 와선대 - 비선대 - 금강굴 - 신흥사 '마음의 나무' 



설악산국립공원의 상징인 '곰'을 오랜만에 찍었다. 출발은 정말 '맑음'의 완벽한 날이다.





올봄, 설악산 '비룡폭포'를 다녀온 후 다음 코스는 '금강굴'이었다. 속초 지인분 말이 '아마, 못 올라가실 거예요. 저도 계단을 기어 올라갔거든요. 다리도 아픈데 무리하지 마세요.' 그래서 열심히 몇 달을 2~3시간씩 걷고 도전이다. 산행하는 사람들은 웃을지 모르겠지만 초보자로서는 대단한 결심이다. 평소 계단을 오르고 내려와도 현기증이 있는 나로서는 말 그대로 '모험의 길'이다. 지난주 설악산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는 오지 않고 비만 내려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오늘은 갈 수 있겠지. 오후 2시쯤 비예보가 오늘도 어김없이 또 있지만 맑게 갠 하늘을 보고 아침 일찍 나섰다. 늦여름부터 시작된 비는 가을이 돼도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하늘도 마음이 아직 오락가락 한가. 오늘 산행은 꼭 성공하고 싶다.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아 소공원에 도착해 설악산의 상징인 곰과 사진으로 눈인사를 하며 앞으로 쭉쭉 걸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맑은 하늘에 마음도 가볍다. 신흥사를 기점으로 왼쪽은 대청봉, 비선대로 오른쪽은 울산바위로 오르는 길이다. 올해가 가기 전 다음은 '울산바위' 도전인데 지금부터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울렁울렁거린다. 일단 다치지 않고 다녀와야지. 





가을이다, 단풍이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한다.   
비선대로 가기 위해, 천천히 걸어본다. 





비선대로 가는 길은 적당한 아스팔트와 시멘트 길이 끝나면 흙길이 나온다. 첫 시작은 '무장애 탐방로' 1.4KM로 유모차와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길이다. 벌써부터 깊은 숲 속에 온 듯 피톤치드 가득한 길은 가볍게 왕복으로 걸어도 좋다. '걷기 좋은 길'이라는 말은 여러 번 들었는데 이제야 여기를 와보다니, 진작 걸어볼걸, 내가 원했던 잔잔한 '숲길'이다. 걷는 길에는 나무에 대한 안내, 숲이 우리에게 주는 환경에 대한 설명,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있어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이 길을 좀 더 걷고 싶은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아마도 여기까지가 자연에서 허락하는 길일 것이다. 






이 날씨가 지속될지 알았다.
첫출발이 너무나 좋았다.
산은 한 길이 아닌, 여러 모습을 나에게 보여준다.





흙길 시작에 큰 돌들이 하나둘씩 나오며 조금씩 길은 험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내내 계속 들리던 계곡의 물소리는 드디어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비선대로 가는 길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아래가 아찔하게 보이는 계단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초록으로 빛나는 청아한 물을 만난다. 산은 오르다 보면 재미가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갈고닦아 놓은 정해진 길로 가지만 자연을 만나는 길은 여러 갈래의 길로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하며 궁금증을 갖게 된다. 아마도 이 맛에 사람들은 산을 찾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나름의 산행을 하며 '내 자아와의 끌고 당김'의 시작으로 여러 번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 처음엔 목표한 곳을 가자 했지만 가는 동안 마음은 '여기까지만 할까' 하는 포기가 있다.  그때마다 혼잣말로 나를 다독이고 숨을 크게 쉬며 다시 반복해 걷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한다. 오늘도 얼마나 내 마음의 변화가 있을까. 이제 시작이니 단단히 정신줄 잡고 걷자. 드디어 '비선대'가 보인다. 비선대는 해발 350M로 여기까지 올라오기는 힘들지 않다. 이미 신흥사가 해발 200M로 조금만 참으로 충분히 누구나 올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초록의 상큼함, 와선대를 지나고 있다.
비선대에 점점 다가온다. 
점점 나를 빠져들게 하는 이 길이 좋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운치가 더 짙어졌다.





이제는 '금강굴'로 가는 길이 문제다. 가파름을 나타내는 '빨간 선'으로 0.6K를 올라가야 한다. 여기가 처음에 언급한 '마의 구간'이다. 시작부터 큰 바위로 둘러싸인 오르막길은 잠시 나를 주춤하게 했다. '조금씩 비가 내리는데 올라가야 하나.' 예상보다 이른 비 소식에 잠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아직 10시인데 그치겠지', 정상에 오를 결심을 끝냈다. 


등산화를 신었지만 '미끄러지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에 몇 번을 발로 '딱딱' 돌계단을 치며 조심스럽게 내디뎠는지 모른다. 올라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떤 여자분이 양쪽 스틱을 '탕탕'치며 올라오고 있었다. 저분보다는 빨리 가야지 하는 생각에 앞만 보고 가다 보니 길이 끊겨 양 옆을 보니 오른쪽으로 정말 작게 올라가는 돌길이 보였다. '어떻게 저 길을 만들었을까' 산비탈에 보일락 말락 하는 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난다. '이어지는 길이 아니면 어떠랴, 옆길로 가면 되지, 아니 돌아가면 되지' 하며 걷다 보니 힘들지만 이런 넉넉한 마음도 생긴다. 





금강굴로 가는 길,  출발부터 가파른 돌계단에 당황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몸은 무겁지만 나를 반겨주는 멋짐들이 폭발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20분 정도 올라가니 빨간 계단이 보이며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파르지 않아 안심하고 올라갔더니 역시, 그 계단이 아니었다. 여기가 정상인지 알고 기쁜 마음에 한걸음도 쉬지 않고 올라왔는데 여긴 아니었다. 쉽지 않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높은 곳이 '금강굴'이었다. 바로 기어서 올라간다는 저 계단이 내 눈앞에 있는데 비는 올라오는 중간쯤 폭우로 변하더니 아직도 무섭게 내리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벌써 올라와 잠시 쉬고 있어 나도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비는 내리지만 너무 뿌듯했다. 대청봉도 아니지만 여기 서 있는 내가 대견했다. 비가 내리는 지금은 내려갈 길이 두렵다기보다는 신선한 공기와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절경이 한없이 반가웠다. 






빨리 가야지, 쉬지 말고 가야지.
저기까지 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난 내가 살면서 산에 다시 오르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멋모르고 20대 때 울산바위 정상에 오른 후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친구들한테 쏟아냈다. '도대체 여기를 왜 왔냐'며 따져 물었고 다시는 보지 말자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내려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내 속에 꽁꽁 묻었던 과거였는데 지금은 내가 그 산을 다시 오르고 있다. 아마 저기 보이는 높은 계단도 올라가지 않으면 후회하겠지. 굴까지 가는 계단은 올라가는 것도 문제지만 내려올 때 '나의 고소공포증이 과연 극복될까'하는 극도의 공포심에 벌써부터 심장이 널뛰기 시작했다. 비는 계속 내리지, 정말 갈팡질팡 하는 내 마음에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켜 장갑의 찍찍이를 바짝 당겨 지지대를 의지하며 계단에 오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무섭고 떠도 무섭다. 벌써부터 다리는 후들거리고 손은 떨리지만 천천히 올라갔다.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그 계단이 나왔다.
올라오면 볼 수 있다. 기대 이상의 절경이 말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비가 내리니, 먹구름에 푸르름은 더 선명하다.
이제 도착이다. 금강굴이 내 눈앞이다.





아까 아래서 올라오던 그분도 다시 내 뒤를 따랐다. 오르는 내내 점점 더 가까워지는 목탁소리를 의지하며 2시간 남짓 걸려 정상인 '금강굴'에 도착했다. 계단 아래서 보는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비로소 여기 올라와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쉬지 않고 수도 중인 스님의 '목탁'소리와 '불경'소리는 나에게 주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울림이었다. 불전함에 부끄럽지만 조금의 시주도 했다. 무탈하게 여기까지 올라온 고마움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계속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라 아쉽지만 잠시 머무르고 다시 그 무서운 계단을 내려왔다. 이제는 어느 길이든 미끄러워 2배 이상의 힘을 주어야 한다. 내려오는 길은 나와 함께 오르던 여자분이 다시 내 뒤를 따라 속도를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 숨을 쉬지 않았다.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원효대사가 수행기도를 했던 '금강굴'
이제, 다시 내려가야지. 정신줄을 단단히 잡자. 





낯선이 와 계속 함께 걷는 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에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먼저 내려가시겠어요? 저는 산행이 처음이라 늦거든요." 

여자분이 "저도 익숙지 않아서요. 천천히 따라 갈게요. 어디서 오셨어요?" 

나는 짧게 "속초요." 

"어머, 가깝네. 그래도 자주 안 오게 되죠? 전, 서울에서 왔는데 지난번 대청봉 갔다가 일주일을 누워있었어요. 그래도 다시 또 왔는데 좋네요." 하며 내려가 울산바위까지 다시 오른 후, 저녁 버스로 간다는 말에, "비도 오는데 쉬셨다가 가시죠? 다치시면 어떡해요?"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이 정도 비는 괜찮아요.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요." 언뜻 보기에도 60살은 훌쩍 넘으셨다. 그런데도 이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무리하시지 말라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지고 다시 비선대를 지나 평지를 바삐 걷기 시작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주룩주룩 내리더니, 신흥사로 다가갈수록 이슬비로 변했다. 높은 지대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아직 이곳은 전초전이니, 참 날씨가 이상하다. 이 정도 비는 맞을 수 있다. 힘들지만 나가기 전, '마음의 나무'와 인사를 하기 위해 다시 옆길을 올랐다. 가을에 다시 만난 나무에 오늘은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 네가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비가 많이 오면 혼자 더 쓸쓸히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시끌벅적하니 그래도 내 마음이 좋구나.  






비가 내리는 산을 걸어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올 겨울이 가기 전, 내 목표는 이제 '울산바위'다.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울렁증이 생길 만큼 두려움이 있지만 도전하고 싶다. 금강굴에 다녀오고 꼬박 하루를 앓아누웠다. 그래도 기분만은 최상이다. 


내가 느끼는 그 쾌감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마음만 있다고 해서 산을 바로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산은 산이다. 가까운 곳이라도 걷고 뛰고 오르고 해야 내가 가고 싶은 그 길을 갈 수 있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기 전 다시 , 이곳 설악산을 찾을 것이다. 매콤한 어묵탕에 오늘은 따뜻한 정종 한잔, 아니 조금은 취하고 싶다.  벌써부터 내 마음은 집에 도착해 냉동실을 열어 멸치를 꺼내 가스불을 켜고 있다. 






다시, 내려오니 맑은 하늘이 나를 보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걷는 TIP! 등산화와 우비, 생수 2통은 필수다. 물론 산행 초보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YOUR 미션!! 금강굴에서 보이는 벗들과 사진 한 장 남겨보자. 정상에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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