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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Jul 10. 2021

백담사,
그리운 ‘님의 침묵’을 만나다

[소원을 빌어볼까]

     

     

   속초 시외버스 T – 백담사 시외버스 T – 백담사 셔틀버스 주차장 입구 – 백담사

     



백담사터미널은 일반 정류장이라, 버스가 지나가지않기 위해 '호출버튼'을 누른다.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린 흐린 날씨로 몸도 축축 늘어졌지만 오후에 날씨가 갠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지난주 미뤘던 백담사를 가기 위한 채비를 했다. 백담사는 속초에서 가까운 거리지만 항상 지나치는 중간 경유지로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한번 와야지 했다. 지난해 인제 ‘만해마을’을 다녀오고 생전 집필도 한, 공간의 은은한 향기를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느껴보고 싶었다. 





버스에 내려 골목 입구로 들어서는 이정표




속초에서 20~30분 버스로 달려오면 ‘백담사 입구’ 간이 터미널에 정차한다. 건너편 작은 편의점에서 돌아오는 시간대를 확인하고 백담사 입구로 걸어갔다. 꽤 걷는 길에 당황했지만 오랜만에 맑은 날씨를 만끽하며 씩씩하게 걸었다. 강풍주의보로 바람이 전하는 강한 나무의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셔틀버스 매표소가 나왔다. 이따가 걸어 내려오기 위해 출발은 부러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해 좁은 길은 사람과 버스가 맞닿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길을 내려올 수 있을까.





주차장에서 내려 걷는 백담사로 가는 길





셔틀버스는 20분 남짓 달려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다. 일주문을 보고 입구로 들어가는 다리 아래는 소원돌탑들이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게 쌓여있다. 내려가 나도 빨리 돌을 올리고 싶다. 이렇게 많은 돌탑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던 기이한 모습이었다. 





소원탑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원이 이루어질듯하다.






돌탑은 어떤 마음으로 처음에 시작됐을까. 

누가 이 넓은 곳을 차곡차곡 쌓이게 했을까. 

손으로, 마음속으로 빈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지금도 열망하고 있을까. 

나도 수줍지만 어느 한 돌탑에 돌 하나를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이제는, 나답게 살게 해 주세요.”





나의 소원빌기





나다움, 보이는 그대로의 삶을 살고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마음에 있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바다보다는, 산을 찾으면 어떤 하나의 의식이 있는 것처럼 철학자로 될 때가 있다. 끝없는 오르막에 ‘왜 내가 멈추지 않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내 내 발길은 더 높은 곳을 향해 걷고 있을 때가 있다. 아마도 지금이 그때일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를 의지하며 가르침을 받고 싶을 때 보이지 않지만 마치 내게 무언가를 말해줄 거 같아 이곳을 찾아왔는데 처음 반기는 것이 돌탑이었다. 


오세암, 봉정암, 대청봉까지 오를 수 있는 탐방로 입구인 내설악에 위치한 백담사는 생각보다 큰 절은 아니다. 한 귀퉁이에서는 템플스테이 단장으로 공사가 한창 이어졌고 중앙은 ‘석가탄신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화려한 연등들이 인사를 건넸다. 사찰이라기보다는 숲 속 한적한 곳에 있는 쉼의 공간이었다. 좀 더 걷다 보니 ‘만해기념관’이 있어 주저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만해마을보다는 턱없이 작은 규모지만 직접 가까이하고 싶어 찾아온 곳이라 아쉬운 마음은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글들로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함이 있다. 





백담사 초입길
석가탄신일
만해 한용운
만해 기념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일 더러운 것을 똥이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송장 썩는 것이 똥보다 더 더럽더군요. 
왜 그러냐 하면 똥 옆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도 
송장 썩는 옆에서는 역하여 차마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송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삼십일 본산 주지 바로 네놈들이다.


한용운의 한 연설문에서 



                 



쓰인 많은 글귀 중, 이 글을 읽는 순간 ‘딱’하고 내 머리를 때렸다. 

책에서 ‘똥’이라는 말은 잘 읽질 못 했는데 오래전 쓰였다니 정말 통쾌했다. 

더러운 걸 더러운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다니, 이 글을 읽고 참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현실을 미워하며, 탓하며, 애써 나만 힘들다 여겼는데 그 보다 더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을 알지 못하고 비관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졌다. 생각하는 관점들은 다를 수 있지만 지금 내가 감정이입으로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때론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며 다시 시작하기도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자존감이다. 그 자존감이 없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세월은 지났지만 아마도 이걸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백담사 안에서 본 풍경
백담사 마당





밖으로 다시 나와 걸어 내려가기보다는 지금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돌탑 앞 의자에 앉았다. 유난히 부는 이 바람은 아마도 쉬었다 가라는 손짓이었으리라. 

배낭에 있던 책을 꺼내 2시간 넘게 읽었다. 좁디좁은 길을 내려가기보다는 지금 얻은 넉넉함을 길게 느끼고 싶었다. 





바람부는날 백담사에서





언제부턴가 새로운 곳을 찾으면 바삐 가기보다는 쉬엄쉬엄 가는 길에는 나의 마음도 덤으로 느리게 하고 있다. 느려도 내가 가는 곳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나는 이 길을,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백담마을 습지생태관찰로




마지막 떠나기 전,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글을 마음속에 담아 내려왔다. 


어딘가를 가기 전에는 여러 마음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그 길을 다시 떠날 때는 다시 새로운 마음 하나가 새겨진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이 내 속에 자리 잡기에 나는 아직도 머무르지 않고 떠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백담마을 입구



여행 Tip! 백담사에서 2km 떨어진 곳에 ‘만해마을’이 있어 함께하면 좋다.

YOUR 미션!! 소원돌탑에서 정성껏 돌 하나 올리고 ‘나만의 소원’ 빌기. 

  이때 돌탑 올리는 내 손도 사진으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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