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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Jul 18. 2021

유정, 김유정, 이곳은'김유정역'이라 부른다

[김유정문학촌 실레이야기길]


경춘선 김유정역 김유정 폐역 - 김유정문학촌 책 인쇄박물관 - 전상국 문학의 뜰

     



유정 이야기 숲
김유정역 폐철길





춘천을 지나다 보면 문득문득 예전의 추억이 떠오르는 건 비단 나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20대에 청량리에서 춘천행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길은 꽤 낭만적이었다. 대성리, 청평, 강촌, 춘천으로 이어지는 그 시절 청춘의 전부였던 경춘선은 서울과 멀지 않아 당일로, 때론 1박 2일로 자주 갔던 곳이다.  






김유정역관광안내소





한 번은 강촌에서 친구들과 방 하나를 잡아 밤새워 술을 마신적이 있다. 다음날, 아침밥을 했는데 솥을 까맣게 다 태웠다.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아 주인아주머니께 말도 못 하고 빈 소주병, 맥주병 한 상자씩을 두고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병을 팔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친구가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날 만큼 무모한 친구들의 술사랑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만약 그때 철수세미를 알았다면 빡빡 깨끗이 닦았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치기 어린 행동이 참 부끄럽긴 하다.





현재 김유정역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며 가는 내내 그때의 일이 조각조각 떠올라 나도 모르게 혼자 웃으며 그 강촌을 지나 다음 역인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흐린 날씨지만 그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충분히 뜨거웠다. 무거운 배낭을 벗 삼아 제일 먼저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사진도 찍고 앉아 책자도 보며 동선을 확인했다. 가져온 자료를 천천히 보니 안내 책자가 다양하다. 춘천 여행에 대한 책자도 꽤 여럿 있지만 매월 발행되는 책자에는 지역별 공연, 축제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다.  차곡차곡 모은 자료로 배낭은 용량 초과지만  빠지지 않게 챙겨 넣었다.





관광안내소 카페
김유정 폐역





여행은 계절에 따라 움직임이 많이 다르다.

오늘은 흐린 날에 바로 위가 태양이 아니라는 위안을 삼으며 열심히 걷기를 시작했다.

혼자이기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고 쉬면 되니 마음은 편하다.


‘김유정역’은 처음 방문으로 볼 것이 역 주변에 있어 이동하기도 쉽다.

‘신남역’에서 ‘김유정역’으로 바뀐 지는 10년이 넘었다.

소설가‘김유정’ 생가가 복원되며 전시관, 이야기집 등 ‘김유정문학촌’이 형성되었다.

처음 간 곳은 생가와 전시관으로 군더더기 없는 소소함이 느껴졌다. 입구에는 ‘노란 동백꽃’이라 불리는 생강나무가 상큼한 봄내음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생강차만 마셔봤지, '생강나무'는 여기서 처음 봤다. 김유정역, 거리를 걷다 보면 이렇게 곳곳에 소설 모티브가 숨어져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김유정폐역을둘러보며





학교 다닐 때 ‘봄봄’, ‘동백꽃’이라는 대표작과 중요한 대목만 배웠던 기억이 있는데 ‘44편’을 발표 한 '대작가'인지는 부끄럽지만 오늘 처음 알았다. 작품보다는 그 시대의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 찾았는데 근대문학을 이끈 작가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김유정문학촌





이곳을 찾기 전에는 ‘김유정역’이라는 명칭이 주는 궁금함이 있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많다는 사전 정보는 있지만 정작 ‘김유정’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는 부족했기에 자칫 지루해 지나칠 수 있는 곳일지는 몰라도 천천히 보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감정에 한 사람을 지독히 사랑하며 포기를 몰랐고, 적극적인 야학활동도 하며 글도 쓰고, 끝내 죽음 앞에서는 친구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난 한 사람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있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김유정이 안회남에게 쓴 편지 ‘필승前’ 마지막 구절]

     




김유정문학을찾아서





김유정이 떠나기 전, 현재의 절박한 심정을 친구에게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며 쓴 이 편지는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잠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있구나.

질척하고 요란하지 않은 조용히 나를 보듬어 주고 있구나.


요즘, 사는 게 그렇다.

소란하고 하나하나 따지려고 하는 세상이 시끄러워 외면하게 되고 멀리하고 싶은데

나보다 더 답답한 마음으로 저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시대는 다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다를 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그때의 유정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작가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름만 아는,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 작품을 보면 그 시절이 생각나고

또, 지금의 나를 생각하는 감정이입이 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문학촌을 둘러보면 ‘실레이야기길’이라는 작품의 무대가 된 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은 가까운 길을 걷고 있지만 다음에 다시 온 다면 이 길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김유정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





유정길을 걷다가





문학촌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 ‘책과 인쇄박물관’을 찾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볼거리가 부족했다. 1층의 활자 인쇄 과정은 멋지게 전시가 되어 개인 소장의 가치는 높으나 차라리 서울 송파에 있는 ‘책 박물관’에 가는 걸 추천한다. 책의 유래, 책을 만드는 과정, 인쇄술, 작가의 방등 다양하게 전시가 된 재미도 있고 설명도 있는 곳으로 무료다.





책과인쇄박물관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전상국 문학의 뜰’을 찾았다.

다시 길 건너 위로 올라가는 비탈길이라 포기할까 했지만 며칠 전 오픈 한 따끈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책 냄새를 맡고 싶었다. 작은 이정표로 찾아갔는데 아직 정리 중이었다. 1층 책 곳간은 작가가 평생 모은 2만 여권의 책이 빼곡하게 천장까지 전시가 되어 있다. 잠시 앉아 책을 읽기 위해 찾았지만 어수선해 지하 작가 전시실로 바로 내려갔다. 처음 만난 작가지만 역량 있는 작품을 쓴 교수님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셨다.  전시실을 돌아보며 유독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전상국 문학의 뜰 1층





‘물은 스스로 길을 낸다.’

문학이야기를 쓴 내용으로, 책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글을 쓰는 데 있어 편협하지 않는

때론 차갑게, 때론 따뜻하게 감싸는 감성이 녹아내리는 글을 쓰고 싶은데, 이 책에는 그 답이 있을까?

고인물이 넘쳐 스스로 길을 만들 듯,

새로운 나만의 길로 흐를 수 있을까.





전상국작가전시실





처음 온 ‘김유정역’은 도착해 5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걷고 찾아다녔다.

문학을 빼고는 말할 수도 봤다고도 할 수 없는 '문학의 거리'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해보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이다. 다음 방문에는 가볍게 와 미루어 둔 ‘실레이야기길’을 꼭 걸어 봐야겠다.





유정 이야기 숲을 거닐다

여행 Tip! 문학기행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넉넉한 시간은 필수다.

YOUR 미션! 실레이야기길을 걸으며 '김유정'을 느껴보기. 유정 만두, 유정 국밥, 유정 닭갈비, 김유정우체국, 유정 방앗간 등 '유정' 이름이 구석구석 있다. 동네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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