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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Aug 07. 2021

고성 금강산 화암사 숲길 4.1Km

[수바위- 신선대]

속초 시외버스 T (델피노– 화암사 – 성인대(신선대– 시루떡바위 – 수바위(쌀바위)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설악산, 울산바위가 보인다





속초에서 바다가 아닌, 설악산도 아닌, 가끔 모임 있을 때 좋은 공기와 더불어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해 생수 1통, 귤 4개를 가방에 넣고 오전에 출발했다. 뚜벅이 여행자로서 집부터 택시를 타기엔 부담이 있어 3-1번 종점인 대명리조트까지 버스로 이동 후 화암사까지 택시로 갔다. 

내릴 때 기사님이 한 말씀하셨다. “행정구역상 고성이라, 200원 더 내셔야 돼요” 음. 속초에서 고성까지 거리 차이가 얼마나 있다고. 30분 정도 달려왔을까. 여기가 '종점'이 아니라면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전 정류장에서 내린 사람은 이 궤변을 모르겠지. 물론, 이해는 하지만 ‘한 정거장’ 차이인데, 200원에 맘 상해서 내렸다. 





대명 델피노 버스정류장 앞





택시를 타고 제법 안으로 들어오니 ‘금강산 화암사’가 소나무 숲 안에 있다. 택시가 끝까지 들어와도 제지를 하지 않아 편하게 도착했다. 신라의 천년사찰답게 그 품위가 계단 입구 아래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신라 혜공왕에 설립됐고 화재와 전쟁으로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경내 수바위의 전설이 함께 알려지며 지금까지 확장됐다고 한다.





금강산 화암사 초입 '윤장대'





대웅전으로 올라오면 꽤 깊은 산중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산수가 부족함이 없다.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위로는 수바위와 성인대가 있으니 절경 이 뛰어나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대웅전 앞에 쇠기둥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눈에 거슬렸다. 특별한 날 연등불이 걸리나, 아니면 다른 풍수지리라도 있을까, 궁금했지만 어디 물어볼 때가 없어 지나쳤다. 크지 않게 템플스테이도 있어 가을에 한 번쯤은 이곳에 머무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란하지 않고 다닐 때마다 한편에서 불경을 외는 스님들의 목소리가 클래식처럼 은은하게 들리는데 내 마음이 편안했다. 오래전, 순천 여행에서 '선암사'를 갔는데 그때가 생각 날만큼 소박한 따스함이 닮았다.





산사 전경 
화암사 대웅전





어렸을 때는 종교에 대한 집착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집착을 버린 지 오래다. 그렇다고 내가 믿고 있는 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듯 모든 종교는 내 마음의 평안이 있다면 그걸로 좋다는 생각을 한다. 복잡한 세상에 이것저것 따지기를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 





보리수 아래의 명상 '수하항마상'




화암사에는 ‘108 마니차’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불교는 잘 모르나, ‘108’이라는 숫자는 익숙해 아마도 많은 번뇌들을 걸어 마음을 수행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계단에 올랐다. 그 위는 마치 내가 어디 정상에 올라간 듯, 속초와 고성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내 집도 보이니 신기하기도 하다. 내려오는 길에 스님을 만났다. 혼자 먼 곳을 보며 불경을 하고 또 보고 천천히 내려가는 그 모습에 사진 한 장 남겼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가사장삼을 휘날리며 걷는 뒷모습이 내 눈엔 쓸쓸해 보이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108 마니차 가는길
바람이 분다





사찰을 다니다 보면, 점점 화려함으로 단장하며 경내 확장을 하고 템플스테이를 목적으로 하는 곳들이 더러 있다. 불경 소리도 들리지 않는 녹음을 크게 틀어 놓는 곳도 적잖은데 이곳은 스님의 수도생활이 불자가 아니라도 곳곳에서 느껴질 만큼 소담함을 품고 있다. 





푸르름만 있는 곳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숲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성인대 2Km' 방향지시만 있을 뿐 별다른 안내문이 없어 길의 난이도가 궁금했지만 출발했다.


처음 시작부터 '비탈길'이다.

‘그래도, 걸어가면 평지가 나오겠지.’ 하며 올라갔는데 계속되는 오르막에 슬슬 포기의 생각이 차고 나온다. 산에 오르는 건 아직 익숙지 않아 조금만 올라도 사람이 있건 없건 낯설고 혼자 걷다 보면 무서움이 먼저 다가온다. 나무로 빽빽한 좁은 길을 오르다 보니 가슴도 콩닥콩닥하고 숨소리도 커진다. 





성인대올라가는길
산을 오르다 보면 나도 모르는 도전의식에 깜짝 놀란다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꼭 끝을 가야 할까. 

여기까지도 잘 왔잖아.

가면, 내가 원하는 그곳일까.

여기서 돌아선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텐데. 

도대체 내가 왜 무릎도 붓고 발목도 아픈데 또 걷고 있는 걸까. 

강원도를 여행하며 걸어보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나만의 프로젝트’는 계속 의미를 던지며 나한테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며 걷게 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





바람도 많이 불고, 햇볕도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로 평소 흘리지 않았던 구슬땀을 친구 삼아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평지를 걷고 있다. 그리고 저 앞에는 그토록 찾았던 ‘숲길 안내도’가 보인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은 ‘산림치유 길’이다. 치유는커녕 오롯이 오르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역시, 산은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치유’였다. 그다음은 조금 걸어가면 만나는 빨간색인 ‘등산하는 길’로 잠시 고민을 했다. 지나온 길도 힘들었는데 보이지 않는 앞길이 더 어렵다니, 다시 찾아온 두려움에 나의 '콩닥콩닥'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암사 숲길 안내도





옆에서 지도를 함께 보고 있었던 부부한테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반대편에서 올라오셨는데 힘드셨어요? 다시 내려가려고 하니 엄두가 나질 않아서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한 바퀴 돌아야 재미있지 않겠어요? 충분히 내려갈 수 있어요.”  

역시, 명쾌한 말이다. 첫 출발점이 있듯 걷다 보면 끝이 나온다니 얼마나 좋은가.

그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성인대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뒤를 돌아 한 말씀 더 하셨다. "바람이 많이 부니, 성인대 바위는 올라가지 마세요." 


'성인대'는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신선대'로도 불린다. 

그만큼 신성한 기운이 모여 있는 수려한 경관을 뽐내는 곳이다.





신선대




막상 정상에 도착하니, 보이는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오래전 신선이 있었던 곳, 느끼기 충분한 곳이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바위들을 뛰어다녔을 모습이 그려진다. 

바람만 강하게 불지 않았다면 위로 올라가 더 멋지게 전경을 보고 싶었는데 제일 높은 큰 바위는 올라가지 못했다. 대신 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가득 내 큰 눈에 저장했다.





성인대는 생각보다 너무 멋졌다. 산을 오르는 기분은 이런 걸까. 
신선들이 거닐었을까
바위 사이로 보이는 하늘, 바다, 구름




앉아서 시원하게 부는 강한 바람을 벗 삼아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내 집을 보며 ‘저기 내가 살고 있구나.’를 새삼 느끼며 마음껏 이 공간을 느끼고 싶었다. 서울에서는 이 멋들어진 경치를 보지 못하니까. 남산에서 빌딩 숲은 볼 수 있지만 여기는 인위적이지 않은 보이는 그대로의 산, 바다, 하늘, 구름,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떠나와 보니, 그만큼의 여유가 여기 이곳에 있었다. 





이 곳은 내 마음속에 저장되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 훨씬 험해 왜 등산화를 신어야 하는지 알았다. 자꾸 미끄러져 힘을 주어 발을 내딛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아, 오 마이 갓’을 얼마나 외쳤는지. 요즘 영어공부를 해서 그런가. 영어가 착착 입에 감기며 절로 소리가 튀어나왔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생명력의 위대함은 어디든 있다. 나무의 뿌리도 나에게 길을 내준다.




경직된 몸을 쉬기 위해 요즘 'SNS에서 HOT하다'는 카페 ‘란야원’에 잠시 앉아 호박식혜 한잔 시원하게 마셨다. 카페가 절 안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했는데  규모가 작아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직접 만든 추천한 식혜는 달지도 않고 참 맛있게 마시고 나왔다. 





바람,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여행하다 보면 바람소리가 너무 좋아 한동안 듣고 있을 때가 있다. 

길을 걸을 때, 아니면 운동을 할 때, 버스를 탈 때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듣고 했는데 요즘은 여러 소리를 듣기 위해 부러 이어폰을 꽂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새소리가 좋고 바람소리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 파도소리를 들으면  잡생각이 나질 않고  오롯이 '여기’에 집중하게 된다.





오롯한 바람소리에




지금은, 이 바람소리에, 나무 소리에, 물소리에 집중한다. 

이 시간이 지나는 게 아쉽다. 

하지만, 아쉽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시간은 계속 지나가듯 아낌없이 이 순간을 느껴보자. 

때론 거칠게 다가오는 바람을 맞으며 버텨보기도 하고, 

부드럽게 멈추는 이 바람에 눈인사도 건네며 

이곳을 나서기 전, 올곧이 나를 찾아보자.





수바위

걷기 Tip!  낯선 길에 당황하지 말고 쭈~욱 올라가 보자. 내가 상상한 이상의 길을 만날 수 있다.

YOUR 미션!! 신선대에서 근사하게 손을 뻗어 사진을 찍어보자. 어느 산봉우리 최고봉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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