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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Sep 11. 2021

강릉, 바다보다  가끔 더 생각나는 그곳이 있다

[청초한  그 허초희가]



묵호역 - 강릉역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강문해변 경포해변


강릉 바우길 :14코스 (초희길, 11KM)   




묵호에서 강릉행 기차를 기다리며

     




묵호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30분 남짓 남은 강릉행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출발과 동시에 말을 건네셨다. “어디서 오셨어요?” “속초에서 왔어요.”

“버스가 더 빠른데, 왜 기차를 타세요?” “강릉에 잠깐 들렀다 가려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향이 양양이에요”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푸시는데 속초까지 나보다 훤하게 알고 있었다. 끝말은 동해보다 더 고향이 좋다는 결론이다. 역시 태어난 고향에 대한 마음은 누구나 어느 한 곳에 두고 있는 것일까. 떠나와도 '고향'이 가끔 그리워지는 건 아마도 그 시절에 대한 '나의 성장'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니 택시 타고 7분은 금방이다. 나도 내 고향 ‘서울’이 더 좋긴 하다. 지금  속초는 서울과 너무 다르기에 비교는 어려우나, '바다'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나의 머무름'이 이해되는 곳이다.





기차타고 정동진 바다를 지나고 있다





‘바다열차’로 가고 싶었지만 아직 코로나로 운행을 하지 않아 강릉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오랜만에 열차를 탔다. ‘이 열차도 바다가 보이겠지.’ 강릉행 오후 3시 5분 누리로 열차 출발이다. 망상해변과 정동진을 지나며 아쉽지만 잠깐이라도 바다가 보이니 지루하지 않았다. 4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마지막인 '강릉역'에 도착했다.


‘강릉’이라는 지명은 빛바랜 사진을 꺼내 주는 20,30대에 정말 많이 왔던 추억의 장소다. 속초에 살며 오히려 다른 곳을 여행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몇 년 동안 자주 오질 못 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4번 이상은 다 갔을 정도로 구석구석 잘 알고 있지만 오늘은 이곳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함에 다시 찾았다.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바뀐 화려함에 ‘옛 모습을 잃었을까’하는 내 마음의 걱정이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때 그 모습이 그리워 찾을 때가 있는데 막상 달라진 낯섦에 당황해질 때가 왕왕 있기에 가는 내내 마음은 콩닥콩닥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앞
기념공원 입구





경포대 지나 난설헌로를 달려온 곳은 다름 아닌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이다.

첫 방문은 20년쯤 지났을까, 어느 봄날, ‘초당마을’에 ‘뚱 할머니 순두부’를 먹으러 왔다 길이 너무 예뻐 들어선 곳이 ‘허난설헌 생가’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고 꽃잎이 눈꽃처럼 내리는 바람 부는 날, 그 깊이 있는 꼿꼿한 울림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숙연해지는 뭔가가 올라왔다. 소박한 모습에 반해 차분히 둘레를 걸어보고 꽃향기도 맡으며 친구와 계절마다 꼭 오고 싶다며 한 동안 강릉 방문에는 순두부와 허난설헌 생가는 꼭 점심메뉴의 사이드처럼 세트였다. 


그때 초당마을에는 아버지 ‘초당 허엽’, ‘아들 허균’, ‘딸 허난설헌’에 대한 간략한 안내문이 전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기념공원으로 들어섰다. 숨을 크게 쉬고 입구를 지나니 소나무들이 나를 반겼다. 첫인상은 합격이다. 예전에도 조금만 나가면 소나무숲길이 있었는데 그 상징이 앞에 있으니 낯섦보다는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다.





허씨 5문장과 강릉의 옛모습을 소개
당대의 생활과 문학이야기의 설명이 빼곡하다.
허균에 대한 이야기 전시도 많다




난 허균 보다는 허난설헌에 대한 이야기와 시가 더 좋다.

허균은 이미 뛰어난 문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허난설헌은 뛰어난 글재주를 가지고 있음에도 조선시대 여자로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그녀의 살아온 삶이 궁금했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기품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이달에게 자유로운 이상과 현실을 배운 초희는 ‘시·서·화’ 삼절을 두루 걸쳐 자아를 실현한 예술가이자 문인으로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황진이, 신사임당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문인을 여기와 알았으니 참 부끄럽다. 그렇기에 강릉 올 때마다 그녀의 아련한 마음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





초희는 15살에 결혼, 고부갈등을 겪고 아이를 잃고 삶의 의욕 없이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했다. 내 나이는 지금 그녀를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그녀의 뜻에 다가가려면 멀고도 멀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머릿속에 있는 글이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펜을 들었는데 언젠가 내가 쓴 글들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기억이 남을 수 있을까.

나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움직이는 그 ‘허초희’가 되고 싶다.



    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로     
문 앞의 강문에 비단옷을 빨았어요.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
짝지어 나는 원앙새만 부럽게 보았어요.

죽지사. 3   ‘난설헌 허초희 시비’에 쓰인 글

이곳은 사계절 보는 재미가 있지만 그중 소복이 눈 덮인 겨울과 특히 꽃피는 봄날이 제일 좋다. 살아 숨 쉬는 생기가 아장아장 올라오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 벚꽃 필 때 늦지 않게 또다시 찾아야겠다. 오래전 친구와 두 손 잡고 왔던 그 길을 천천히 걷고 싶다.





기념공원과 허난설헌 생가를 이어주는 길
초당동 고택
허난설헌 생가 앞
허난설헌 생가에서 이어지는 소나무숲을 걸어보자. 허난설헌 뒷모습


 


초이를 뒤로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오랜만에 순두부집을 찾았지만 휴무일이다. 배고픔에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은 허영만 ‘식객’에 소개됐다는 문구가 보여 주저 없이 들어가 초계국수 한 그릇 시원하게 먹었다.


버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빠르게 바다를 보기 위해 강문해변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둑어둑 지는 해를 보며 ‘여기도 참 많이 변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내음이 벌써부터 내 코를 찌르지만 훨씬 복잡해진 강문과 경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마도 나는 화려함보다는 내심 어둠이 있는 조용한 바다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문에서 경포해변까지 산책로가 있어 걷기 좋다
강문솟대다리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이 언제부턴가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지는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장소도,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하물며 내 가족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변하고 사라진다.

과거에 집착하며 머무르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 변화의 시간을 나에게 살짝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다음날,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해 질 녘, 바다는 아직도 파란빛을 뿜고 있다




바다를 보면, 새로움보다는 옛 생각이 많이 난다.

강문을 지나 경포해변 가장자리, 가던 길을 멈추고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은 '단짝 친구'와 바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왔던 곳이고 힘든 일이 있으면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맥주 한잔에 밤새 얘기하며 함께 울기도 하고 음악도 들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와 그 바다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 친구’가 떠오른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언제나 내편'이라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떤 이유로 연락이 끊겼다.

그 친구도 가끔은 여기를 찾아와 나를 '한 번쯤은 생각해줄까.' 


나와 그 친구, 그리고 허초희 우리는 무엇을 향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 물음에 누가 나에게 정답을 던져 줄 것인가.

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이미 나에게 정답을 알려준 것인가.





솔향기 가득한 경포해변



여행 Tip! 강릉 바우길 14코스로, 시간이 된다면 경포대에서 허난설헌 소나무 숲까지 걸어보자.(1.6KM)

YOUR 미션!! 경포해변에서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전화 or 문자를 보내볼까. 우연한 답장에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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