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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Aug 28. 2021

구비구비 걷다 보니 화진포 숲길, 정상이다

[거진 해맞이 숲길 5.8Km]


거진항 거진 해맞이 숲길(응봉) - 화진포(소나무숲길) - 김일성 별장 화진포 해변 초도항 대진등대

  



버스종점에서 내려 '해맞이 숲길' 이정표에 따라 걷다 보면





어제 미리 출발 전, 속초/고성 운수회사 ‘동해상사’에 전화를 걸어 버스 시간을 문의했다. 여행 전, 버스 배차 간격이나 복잡한 곳인 경우 제주도는 만덕 120 콜센터, 각 지역에는 관광 안내센터가 있듯, 속초는 현재 살고 있는 곳이라 정확한 출차 정보 확인을 위해 회사로 직접 전화한다. 고성까지 가는 1번, 1-1번의 정류장 시간을 알아보고 간단히 나만의 일정을 계획했다.


오전 8시 25분 대포항에서 출발한다는 기사님과 통화 후, 집에서 35분에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10분 후 도착 한 버스 1-1을 타고 1시간 넘게 달려 거진항에 내렸다. 영랑동에서 고성 거진까지 1시간이라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백섬해상전망대





거진항에서 등대로 걸어가 '산림욕장 안내표지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직 오전 10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햇빛이 너무 강해 선글라스를 꺼냈지만 다시 넣었다. 마스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자꾸 시야가 흐려져 이번 여름 선글라스는 무용지물이 된다. 걷다 보니 바다 가운데 ‘백섬 해상 전망대’가 있어 잠시 위로 올라가 망망대해를 보며 '역시, 이게 바다지.' 바닷물이 새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볼 수 있는 바다는 매번 다른 얼굴을 내게 보인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 바다는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름이 주는 이 더위가 나를 붙잡고 놀자 한다.


지난번 ‘동해’ 갔을 때도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전망대가 멋졌는데 여기도 137m의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바다에 더 가까이, 멀리 가보고 싶을 때가 있어 유람선을 타거나 전망대 혹은 해안 길을 종종 걷는 편이다. 걷다 보면 우연히 멋진 길도 만나고, 바다도 만나니 내가 걷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산림욕장입구





바닷길은 해안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재미가 있을지,

어디에 있어야 제일 예쁜 바다를 볼 수 있을지,

나만의 명당을 찾을 때가 있다.

여기가 초입이 아니라면 계속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빨간색으로 치장한 '산림욕장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와 이내 발길을 옮겼다. 입구는 계단으로 성산일출봉 높이만큼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다 오르니, 옆에 길이 또 있었다. 공원에서 올라오는 입구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전망대를 덤으로 보고 왔으니 ‘계단쯤이야.’ 힘든 길은 참을 수 있다.


걷다 보면 아래 보이는 곳이 ‘바다정원’이라는 문구가 있다. 바다정원이라는 말이 이렇게 우아하게 들릴 수가 없다. 저 앞이 바로 정원이라면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지. 아니, 한 달을 있어도 좋지.






거진 바다 '바다정원'
산위에서 보니, 빼곡한 도시가 보인다





‘강원도 명풍길’이라는 안내도를 보며 도착지 '화진포 소나무 숲길'까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숲길은 제법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숲 길하면 대표적으로 ‘사려니 숲길’이 생각난다. 그 길은 평지로 계속 쭉쭉 걸어 나가면 된다. 하지만 다른 숲길들은 좀처럼 쉽게 나가질 못 한다. 특히, '강원도 숲길'이라고 해서 가면 막상 등산에 가까운 길이 나온다. 오늘도 잠시 잊고 러닝화를 신었는데 등산화를 신고 와야 했다. 날씨는 덥지만 아직은 몸도 가볍고 가끔 부는 바람을 타고 내 코끝을 건드리는 나무 내음이 너무 좋다. 한쪽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올레 길을 걷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데칼코마니다.






피톤치드 뿜뿜나는 숲길




중간쯤 지났을까, 길을 걷다 산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 아저씨들을 만났다.

내가 멈칫하자, 한 분이 “괜찮아요. 내려와요.” 지나는 나를 보고 한 마디 더 보탰다.

“숲길 걷는 겁니까? 여기 동네 사세요?”

“아니요. 속초에서 왔어요.”

다른 아저씨 말씀이 “속초? 혼자서? 거기도 좋은데 뭘 여기까지 왔어.”

“속초 사니까 고성도 오죠. 숲길 찾아왔어요.”

“혼자서 대단하네. 조금만 더 가면 응봉이니까 조심히 걷고, 파이팅!” 하며 외쳐 주셨다.

국토대장정도 아닌데 응원을 받다니 이게 뭐라고, 절로 기운이 난다.  






중간을 이어주기도 하고 군데군데 군사시설도 있다





슬슬 지쳐가던 나의 자아가 다른 길로 가자고 속삭일 때 그분들을 만나 다시 길을 걷게 됐다.

‘응봉’으로 가는 길은 다시 계단을 올라야 했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녹녹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기에 또 올라가야 하지.

가끔씩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없었다면 아마도 계속 걷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자꾸, 얼마가 남았다는 말을 해주니 안 갈 수도 없어 나 혼자만의 씨름을 하며 걷다 보니 잡생각은 나지 않고  다시 머리가 맑아진다.






이 오르막길이 마지막이겠지





내리막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며 해발 122M ‘응봉’에 올랐을 때  비로소 내 가슴이 ‘뻥’하고 뚫렸다. 여행을 하다 보면, 혼자 보기 아까운 장소가 더러 있다. 그중 이곳도 이제는 한 곳이리라. 내 눈에 꼭 저장했다.

고요한 호수 ‘화진포’, 아름다운 ‘화진포 해변’이,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와 곳곳에 푸름이 가득한 나무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이 산수가 여기 다 있다니, 참 아름답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곳
정말, 시원하다
여기서는  무언가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다.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정말, 아름답다.

그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말도 필요 없다.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이 있구나.

갑자기, 눈물도 난다.

'왜, 눈물이 나지.' 아마도 내가 나를 위로해주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슬픔보다는 위로와 기쁨을 함께 하는 다독이는 눈물.


숲길을, 산을 오르다 보면 사람을 끄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바다는 옆의 시선보다 앞을 보며 저 끝의 수평선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은데 숲길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걷다 보니 그 스치는 시간에 옆, 뒤, 아래, 위를 보며 각양각색으로 빛나고 있는 색깔에 나도 모르게 어느덧 나이가 차곡차곡 쌓이는 걸 느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나이로 제한받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아직 젊다 애써 말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음에

자꾸 주저하게 되는 내가 보인다.


나는 오늘 출발을 최대한 가볍게 했다. 여행보다는 ‘옆 마을로 마실 다녀와야지’하며.

마실 나온 이곳에서 이제는 좀 더 느리게 가고 싶은 ‘내 나이’가 생각날지 몰랐다.  





여기저기 내가 얹은 돌들은, 소원이 이루어 질까
화진포





화진포 숲길까지 내려오니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 주요 관광지 묶음으로 입장료를 받는 불편함은 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가보기로 했다. 경치 외에는 솔직히 볼 건 없다. 말은 김일성 별장이지만 화진포 안내소 같다. 별장 위에서 보는 바다는 ‘속초등대전망대’ 위에서 보는 바다와 똑같다. 혹, 속초에 온다면 꼭 한 번씩은 가면 좋겠다. 무료에 멋진 풍광은 해외 관광지만큼 멋지다.






김일성별장위에서 바라다 본 화진포해변





별장 옆이 바로 화진포 해변 끝자락이라 입구까지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며 열심히 걸었다.

화진포해변은 4번째 방문이다. 승용차로 와 바다 보고 회 먹고 가는 코스였는데 오늘은 혼자 걸어서 둘러보니 내가 왔던 곳이 맞나 싶다.






화진포해변도 멀리서 보니 참 아름답다
'광개토대왕능'은 초도항으로 걸어가면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오늘은 뚜벅이니, 내친김에 초도항까지 걸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이 참 맘에 든다. 뾰족한 직선이 아닌 둥글둥글한 이 길처럼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초도항은 지금 해변 앞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다음에 다시 온다면 깨끗한 길로 또 변해 있겠지. 대진등대가 오늘의 종착지로 거의 7Km를 걸었다. 날씨에 체감은 그 이상이었지만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좋다.






이 철조망은 언제 끊어질 수 있을까
길을 보면 나는 걷고 싶다. 걷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금 내 옆은 함께 가는 바다가, 숲이 있어 서울을 떠나 온 나의 외로움을, 외롭지 않게 채워주고 있다.  

이번 가을, 다시 화진포로 돌아와 둘레길 16Km를 걸어 보려 한다.

벌써부터 설렌다.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빨리 불어오면 좋겠다.

나의 걷기는 멈추지 않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걸을수록 계속 걷고 싶다.








걷는 Tip! 등산화가 필수다. 오르막, 내리막길에 미끄러질 수 있다. 그리고 담력도 가득 챙기기.

여행 Tip!! 응봉 정상에 오르면 '여행이란?' 물음에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을 만끽하고 걱정은 그곳에 내려두고 오기. '소원탑'에 묻어놓기.

YOUR 미션!!! 숲길 사진도 좋지만, 응봉에서 '야~호'한 번 크게 외치고 두 팔 올린 사진 찍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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