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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Dec 07. 2021

영정사진

[첫 번째로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



‘큰언니와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을까’할 정도로 함께 다녀본 적이 없다. 가까운 곳도 서울의 서촌이나 남산, 미술관 정도가 전부다.


올 봄날, 이번 여행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해 처음으로 큰언니, 새언니와 함께 3명이 제주도로 떠났다. 

전국적인 비예보로 서울은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제주도는 3일 내내 날씨가 화창하고 너무 좋았다. 





여행은 날씨가 반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언니들과는  첫 제주도 여행인 만큼 날씨에 유독 신경이 쓰였다. 

첫나들이를 하늘도 아는 걸까. 날씨가 좋아 참 다행이다. 


혼자 다니면 핫 플레이나 맛집보다는 여유로운 곳을 찾게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버스 타고 바다 보러 강릉이나 속초로 가려면 기본적으로 4시간 이상 걸리는데 신촌에 살았던 나는 김포공항 40분이면 비행기 타고 2시간도 안 돼 도착하는 제주도가 언제부턴가 편했다. 한 달에 두 번 내리 갔을 때도 있으니, 익숙한 곳은 동네처럼 길을 잘 찾는다. 물론 뚜벅이 여행이다. 지금의 제주도는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한 번 이동하려면 버스 배차로 시간이 꽤 소요가 됐는데 현재는 지역마다 환승센터가 있고 버스도착 알림 정보까지 있으니 유럽여행 부럽지 않다. 





이번 가이드의 중점은 언니들이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장소 위주로 일정을 계획했다. 2일은 관광객 모드로 부산하게 다니고, 마지막 날은 언니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물 위에 떠있는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방주교회를 찾아갔다. 차가 없으면 불편해 그동안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택시로 서귀포에서 거금을 지불하고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도착해 그럴 수도 있지만 책에서 본 사진보다 교회는 더 웅장하고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언니들은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곳이라며 아름다운 풍경은 덤으로 교회가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있어 감성은 배가 되었다. 





교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데, 십자가가 보이는 곳에서 갑자기 큰언니가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어달라고 했다. 별로 예쁘지 않다고 하니, 여기서 꼭 찍고 싶다며 마지막 날, 영정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생각지도 않은 영정사진이라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에 속으로 많이 놀랐다. 그렇구나, 언니도 이제 영정사진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구나. 언제 우리들의 나이는 이렇게 먹었는지,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듯 이제는 서로 안부를 걱정할 나이가 됐다. 





하지만 생각하고는 다르게 뭘, 벌써 그런 생각을 하냐며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영정사진으로 찍을 만큼 배경이 별로라고, 다음에 더 좋은 곳에서 찍으라며 크게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 속마음은 언니와 첫 여행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많이 서글플 것 같았다. 

좋은 곳은 함께 보면 배가 된다고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끝나면 이 여행밖에 생각나지 않으니까. 





여행은 다녀본 사람이 계속 다닌다고 꼭 돈 있고, 시간 있어야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라 부지런해야 다닐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몰랐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 움직임도 느리고 만사가 귀찮아 스스로를 더 움직이지 않으면 미루게 되고 어는 순간엔 멈추게 된다. 

이제는 언니도 더 시간이 가기 전에 이래서 어렵다, 저래서 힘들다 하지 말고 같이 함께 다니며 여행에서 주는 여유를 느끼면 좋겠다. 






여행은 누구와 동행하냐에 따라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행복하자고 떠난 여행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치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직도 어딘가를 떠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홀로 여행에도 그동안 묵혀두었던 마음을 주고받으며 많은 얘기를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데 남과 떠난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여럿일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도 여행이기에 혼자 떠나도 좋고, 함께 누군가와 동행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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