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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Dec 09. 2021

내가 '고아'라는 생각이 들 때

[이제 나는 혼자인가]

아빠 장례식을 마치고 며칠 지나 온몸이 맞은 듯 아파왔다. 길을 걷는 것도 힘들고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당분간 회사를 그만두고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헬스클럽도 등록했다. 헬스장은 지하로 넓지 않은 공간에 거울이 양측면에 있어 시야는 넓게 보이지만 들어갈 때부터 답답했다. 러닝머신으로 몸을 풀고 지압 벨트를 하는 순간 갑자기 몸속의 오장육부가 뒤틀리더니 눈에서 검은 커튼이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다다닥' 소리를 내며 닫히는 느낌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그 순간 나는 ‘아, 이대로 나는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깨어날 때쯤, 주위 사람들이 내 온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119를 부를까, 괜찮냐, 정신이 드냐'며 5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이후로 응급실을 2번이나 더 갈 만큼 심한 몸살과 감기로 8개월을 고생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떠나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아무래도 안팎으로 내 맘과 몸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좀 관심을 가질 걸' 나에게 한없이  미안해졌다.


앞으로 살아갈 충전의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너무 어려 슬프기는 했지만 살아졌다. 성인이 돼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분명 힘들고 복잡한 마음은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친척들은 '우리 막내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막내는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걸까. '제일 불쌍한 게 막내'라고. 그런 말을 들으니 자꾸 들을니 내 마음은 더 울컥해졌다. '그 어린 널 두고 엄마가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며  오래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그 장례식장의 일이 생생할 만큼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부모가 살아계시지 않으니 '나는 고아가 되었구나.' 형제는 형제고 부모는 부모인데, 그 부모가 내게는 이 세상엔 없다. 어른이 되어도 부모가 필요한 시점은 분명 있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내가 갈 곳이 없을 땐 어딘가에서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는 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데,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내 인생이 참 서글퍼졌다.  


차라리, 어렸을 때 고아였다면 누군가에게 보살핌도 받을 수 있고 도움도 요청할 수 있었겠지만 성인이 된 나는 오직 혼자 책임지고 버티며 모든 걸 짊어져야 했다.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여유가 어디에도 이제는 없다. 각자 독립생활을 하는 형제들한테 짐을 지우고 싶지도 않고 어려운 일을 부탁하고 싶지도 않다. 서로 살기 바쁜데 나까지 거들 필요가 없으니까.


살면서 끝까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게 혼자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더 이상 내 삶을 미루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스스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

더는 상처 받지 않게

더는 미움받지 않게

더는 짐이 되지 않게

더는 늦지 않게 내 삶을 찾자.






태어날 때는 누군가가 나를 돌봤지만 아마도, 더 시간이 지난다면 언젠가는 정말 나 혼자일 것이다.

부모 중 한 분이라도 옆에 있을 때는 몰랐던 나, 막상 두 분이 떠나니 성인 된 나도 그 허탈감은 주체할 수가 없이 힘들었다. 가끔 생각을 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사는 것'에 대해 곱씹게 된다. 과연 내 삶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어떤 길로 가든 마지막엔 그 길은 '하나'일 것이다. 갓난아이에서 노인이 되거나 노인에서 갓난아이로 돌아가는 필요 없는 '내 의미 없는 가죽'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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