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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Nov 26. 2021

엄마의 마지막 선물 '동전 370원'

[엄마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용돈]

7살 때 기억으로 울 엄마 얘기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불행히도 많지 않다.

가끔씩 그 생각에 한참을 멍해 있기도 하고, 혼자 울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을 때는 옛날 사진을 꺼내보기도 한다.


320원인지, 370원인지 분명한 기억은 없지만 그 당시 300원 이상의 돈을 엄마가 맛있는 과자 사 먹으라고 가지고 있는 돈 전부라며 내 작은 고사리 손에 쥐어주셨다. 그때 그 돈이면 시장 가서 100원으로 떡볶이 한 접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엄마가 신장염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 중이셨고 사촌언니가 병간호를 도와주고 있었다. 사촌언니한테도 시장 가서 밀린 외상값 갚고 맛있는 거 사 먹고 오라던 엄마의 말이 마지막이었다. 집을 나설 때는 몰랐지만 엄마가 떠나기 전,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사촌언니와 손잡고 신촌시장 가서 핫도그와 떡볶이 사 먹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누웠던 이불은 새빨간 물이 들었다. 아빠가 와 있고, 조용히 주변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내 눈과 딱 마주쳤다. 빨리 내보내라는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에 사촌언니는 안방 문을 닫았다.

도대체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는데 엄마는 저기 누워있는데 갈 수 없다니, 엉엉 울었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이미 떠나버려 인사도 할 수 없고 오빠와 언니는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울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장례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나는 너무 어려 입관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나가라고 해 또다시 마지막 가는 길도 배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금만 내가 더 컸어도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했을 텐데 두고두고 그때 어렸던 내가 아직도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한동안 엄마 생각에 매일 울어, 사촌언니도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고 나와 함께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나는 그때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 옆에 그 오후 시간에 아빠가 왜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누구한테 물어보기가 참 어려웠다. 그때는 사촌언니와 나만 있었고, 어렸기에 생각은 했지만 잊혔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언니한테 물어보니, 엄마가 많이 아파 아빠한테 전화해달라고 해서 사촌언니가 전화를 했다고. 그래도 아직까지 내 마음속은 여전히 복잡한 마음이 남아있다.





얼마 전 친한 언니와 엄마 얘기를 하는 중 그 당시 상황은 아마도 이랬을 거야.

답을 해주었다.

엄마는 아팠고, 죽기 전에는 '이제 마지막이구나'하는 직감으로 아셨을 거라고.

그래서 어린 너한테만은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을 남편인 아빠한테 부탁했을 거라고.

네가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 모습을 본 거라고.

엄마는 어린 너를 두고 절대로 스스로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엄마라는 사람은 다 그렇다고.

줄줄이 자식이 4명이나 있는데 눈에 밟혀 절대로 그렇게 죽지는 않는다고.

더구나 막내인 네가 겨우 7살인데 어떻게 떠나시냐고.





마지막 말은,

힘들었겠구나.

이제는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때를 떠나보내라고 했다.


그래도 난, 아직까지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가 없다.

엄마가 내 손에 쥐어 준 그 동전을 이제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엄마 손을 꼭 잡은 어린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추운 날이 시작되면 엄마가 더 그립고 그립다.  내가 아기 때 울어도 아파 제대로 나를 안아주지도 못 했던 엄마가 지금은 아프지 않고 잘 있을까. 엄마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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