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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Nov 30. 2021

내가 몰랐던 걸 그때 알았다면

[누구나 처음은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다시 엎치락뒤치락하며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살다 보면, 꼭 하는 말이기도 하고 듣는 말이기도 하다. 죽는 날까지 인생은 끝난 게 아니라며,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내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때로는 나 자신한테 혼잣말로 위로를 보낼 때가 있다.





어릴 적 너무 어렵고 힘든 건 성인이 되면 쉬운 일들로 바뀌는 게 참 많다. 가스불 하나 켜는 게 어려워 라면 끓이는 것도 두려웠지만 지금은 냄비에 물 붓고 라면 끓이는 건 눈감고도 할 수 있다. 대학입시 실패 후 재수를 택하지 않은 나는 일찍 사회로 나갔고 일을 열심히 해도 학벌에 따라 하는 일이나 연봉에 차이가 크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위로 올라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내가 원한 건 아니지만 또 다른 선택의 길을 향해 나름 열심히 했다. 그때 언니들한테 얘기했다.


‘왜, 나한테 재수하라고 조언해주지 않았어? 그랬다면 분명 내 인생은 달라졌을 텐데.’ 했더니 언니들이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도 어렸다'라고. 대학 가고, 졸업하고, 직업을 찾으니 사회가 학벌을 필요로 하는지 너무 늦게 알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언니들이 미안해할 문제는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언니들과 함께 살며 모든 해결을 우리끼리 했다. 누구 하나 솔직히 이렇다 할 가르침이나 사회성을 알려준 어른들이 없다. 살면서 깨우치고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였다. 

심성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기에, 그냥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나이는 성인이지만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고 지식을 쌓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어야만 내 지식이 쌓이고 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 재수하고 대학에 바로 들어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련이 계속 남은 건 살면서 어쩔 수 없다. 

아마도 이 생각은 나의 꼬리를 물고 계속 따라다닐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 오래 묵은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언니들을 위해서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 






어렸을 때 전부인 언니들과 함께 살며 즐겁기도 했고 슬프기고 했다. 지금 기억을 소환해보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가끔씩 언니들과 옛이야기를 하다 보면 엉엉 울 때도 있고 그때 왜 그랬냐며 따져 물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잘 살았잖아.' 하며 그때를 회상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없듯 불행도 내 몫이고 견딤도 내 몫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부턴가 남들보다 단단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오늘도 살아갈 수 있듯, 부딪힐수록 단단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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