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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Dec 20. 2021

전주 눈 여행

[눈 내리는 겨울에 떠난 여행자들]

4년 전쯤 겨울에 조카 두 명, 큰언니와 함께 오사카 멤버 4명이 오랜만에 다시 뭉쳐 전주여행을 떠났다. 전주 한옥마을 방문은 3번째로 갈 때마다 변한 듯 안 변한 듯, 관광지라 그런지 어딜 가도 호불호는 존재한다. 눈 내리는 1월로 기억되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낭만 있게 영등포역에서 만나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기차 타고 전주로 가는 동안 내리던 눈은 갑자기 폭설로 변해, 평생 동안 몇 번 보지 못할 눈 구경과 인생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전주 기차역에 도착 후, 내리는 눈을 보니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눈을 뭉쳐 막간의 눈싸움이 시작됐다. 눈을 보면 왜 너도 나도 어린아이들이 될까. 짧은 시간을 신나게 즐기고 역에서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의 숙소로 가 짐을 풀었다. 내리는 폭설로 멀리 가지 못해 간단하게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이제는 대학생이 된 조카와 막걸리 골목에서 잔을 부딪히며 인생 얘기도 잠시 나눴다. 다음날은 아무도 없는 아침, 눈 내린 한옥마을에서 발자국을 남기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자만 벽화마을도 가고, 멋진 꼭대기에서 차 한 잔도 마시며, 전동성당도 둘러봤다. 전동성당은 사람이 항상 많기에 갈 때마다 불친절함을 느낀다. 성당이 꼭 미사 드릴 때만 오는 게 아닌데 그럼 막아놓던가, 왜 이렇게 들어오는 입구부터 인상들을 쓰는지, 다음에 또 방문한다면 성당은 오지 말아야겠다. 성당 내부는 항상 꽁꽁 잠겨있어 한 번도 출입한 적이 없었는데 많이 불편하다.





그때 온 눈은 전주 30년 만의 폭설로 기억되는데, 이렇게 많은 눈을 본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옥마을 끝으로 올라가면 '오목대'라는 전망대가 있어 여기서 바라보는 한옥마을의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하나둘씩 불이 켜질 때 보고 있으면 한옥의 기와와 함께 어우러지는 고즈넉한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특히 어제 내린 눈이 검정기와 위로 10cm 이상 쌓여 바라보고 있으니 참 여행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에 붉은 불빛을 뿜어내는 그 풍경도 좋고, 낮에 올라와 마을 전경을 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마음에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시간 내 오기는 힘들지만 우리 오사카 멤버는 막상 다니면 어느 누구보다도 꿍짝이 잘 맞는 여행 지기들로 편하고 좋다.





'몇 해 지나면 다시 함께 떠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작은 조카까지 성인으로 되는 어른들의 여행은 어떤 색다름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가는 세월에 나이가 자꾸 들어가는 건 싫지만 조카들이 커 또 지금의 세상을 같은 눈높이로 맞춰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싶다. 시간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재각 재각' 자신의 갈 길을 가듯 나도 아쉬움보다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가면 된다. 


여행이란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즐거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누군가와 함께 떠날 준비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오면, 따뜻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혼자보다는, 둘이, 셋이 여행을 떠나고 싶다. 






올 한 해는 너무 힘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체감은 그 이상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내년에는 몰아치는 헐떡임이 아닌, 편안히 숨 쉬는 날이 오면 한다. 그날이 오면 다시 한번 조카들과 여행을 떠나 진한 인생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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