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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Dec 13. 2021

오사카는 역시, 먹방 여행이다

[조카들과 첫 해외여행은 '음식의 천국'으로 출발한다]

   

지금은 여러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첫 조카지만 청소년 시기까지 여유로운 여행을 다닌 적이 별로 없었다. 여행을 꼭 갈 필요는 없지만 '여행'은 본인도 모르게 낯선 곳을 보고 느끼고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감수성이 풍부할 때는 특히, 다른 세상을 만나면 시야도 넓어지고 언젠가는 혼자 떠나는 것이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배가 되기에 그 연습을 첫 조카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물어봤다. 함께 여행 한번 가보자고.


고2가 되는 첫 조카와 중1이 되는 작은 조카, 큰언니와 함께 떠나는 여행친구들이 모였다. 첫 여행지는 오사카로 음식도 호불호가 없는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제격이었다. 그런데 겨울방학 때 오사카가 가족여행지라니, 도쿄보다 오사카가 항공과 숙박요금이 비쌌다.





오사카 3박 4일로 출발하기 전 유니버설 스튜디오 티켓을 예약하고 2일 교통카드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유니버설 스튜디오 방문 때는 강풍으로 대부분 외부 놀이기구가 운행되지 않아 아이들 입이 나왔다. 날씨는 여행할 때 복불복이라 항상 좋길 바라지만 지정한 날짜 방문으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해리포터 존을 방문해서 놀이기구도 타고, 내부에서 하는 쇼를 관람하며 2개 정도 더 기구를 탄 게 전부일 정도로 놀 거리가 없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밖에 있기도 힘들어 예상보다 일찍 나와 숙소로 들어갔다.





다음날은 일본의 옛 수도인 나라를 방문했다. 나라는 사슴이 정말 많다. 도착하자마자 사슴들이 곳곳에 있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 재미도 쏠쏠하다. 동물원도 아니고 어디서 이 많은 사슴을 볼 수 있겠는가. 중1을 앞둔 조카는 워낙 동물을 좋아해 여기저기서 사슴이 보이자 뛰어다니며 즐기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옆으로 가서 만지기도 하고 큰 이모 옆으로 오면 사슴한테 호통도 치며 저리 가라고 밀기도 했다. 나와 언니는 공원 도착 후 계속 소리를 지르며 사슴을 피하기 바빴다. 점심때가 한참 지나 시장에서 인생 카레를 먹고 다 같이 즐겁게 기차를 타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밤에는 야경을 보기 위해 공중정원으로 갔는데 오사카에 올 때마다 꼭 찾는 장소중 한 곳이다. 이번 오사카는 3번째 방문으로 모두 다른 사람과 왔지만, 이곳은 빠지지 않는다. 밤에 빛나는 불빛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몽롱한 분위기가 참 좋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그 어둠이 주는 차분함과 넉넉함에 감성까지 묻어 있으니 여유로운 마음은 덤이다. 처음 오는 조카들도 언니도 너무 예쁘다며 이런 곳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불빛을 보고 각자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역시 통했다.





마지막 날은 시내를 돌며 도톤보리로 들어와 본격적인 쇼핑과 먹방 투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문도 못했는데 가는 곳마다 직접 조카들이 주문도 하며 만두도 먹고 아이스크림, 꼬치, 당고, 도넛 등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지 계속 걸으면서 먹었다. 그래도 저녁은 초밥이라며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접시 탑을 세우며 먹었다. 한번 물어봤다. 이모, 이렇게 먹어도 돈이 있냐고,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어" 했더니 정말 많이 먹었다. 그 모습에 놀랐지만 대견하고 기뻤다. 이래서 얘들을 키우나. 내 자식들은 아니지만 먹는 모습만 봐도 너무 이쁘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때가 그랬다.





어떤 여행이든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은 있다. 함께 출발하는 첫 여행이지만 모나지 않게 잘 지냈다. 처음부터 활기가 찼고 엉뚱함도 있고 나이 차이도 많고, 부모를 떠난 여행이기도 해 걱정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씩씩하게 잘 보냈다. 부모 없이 떠난 이 여행에서 아마 조카들은 더 성장했을 것이다.

돌아올 때는 공항으로 아빠들이 마중 나왔는데 환한 달 덩어리들이 걸어와서 깜짝 놀랐다고 하니, 그때 조카들은 족히 2kg은 거뜬히 올려 돌아왔다. 나는 여행을 즐기는 조카들을 본 것만으로도 어떤 여행지를 돌아다닌 것보다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조카들도 크면 이때가 생각나겠지. 그것만으로도 좋다.

    





내년이면, 작은 조카까지 20대가 된다. 세월이 빠르다. 이제는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날들이 많기에 조카들이 부럽기도 하다. '젊음'은 아픈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것도 젊기에 가능하다. 앞이 안 보여 문을 닫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걷다 보면 보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곧게 뻗은 길은 어디에도 없다. 본인들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카들도 그 첫 단추를 잘 끼워 '행복한 인생'을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항해하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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