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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Feb 21. 2022

내 술값은, 도대체 얼마일까?

[혼술 이야기]

불현듯, 오후 '혼술'에 생각이 스쳤다. 

지금껏 마신 '내 술값'을 계산해 볼까? 

엉뚱하지만 철없는 청춘을 지나 인생의 중반으로 오기까지 기억 소환으로도 재밌다. 

누구 말처럼 빌딩 한 채를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아파트 하나, 좀 부족하면 작은 집 한 칸은 마련했을까? 그래도, 세계일주는 아니라도 유럽 일주는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보너스로 제주도 뷰티 나는 넉 달 살이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술값으로 얼마나 지불됐을까. 

친구들, 때론 회사 동료들과, 가족, 그리고 나 홀로, 마신 술값을 계산하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 시기는 20대 중반으로, 그 전에는 소위 안주빨로 주위에서 술을 마시면 장단을 맞추며 맛있는 안주를 먹었다. 처음엔 술자리 동참으로 여기저기서 반겼지만 많이 먹으면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젓가락질은 씩씩하게 빠르게 계속 움직였다. 그때는 누구와 함께 있는 자리가 즐거웠고 신났는데,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술을 혼자 마시고 있다. 누가 마시자고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이 자리를 만들고 있다.





혼자 마시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든다. 

적어도 서울에서는 혼술이 익숙지 않았는데 속초에서는 그냥 '홀로'가 일상이다 보니 '술친구'가 곧 '나'다. 속초 하나로마트는 3만원 이상 상품을 구매하면 무료 배송이다. 동네 마트보다는 술이 싸다 보니 야채와 생필품을 카트에 넣고 마지막 코스인 주류 코너로 향한다. 요즘은 술 종류도 다양하고 지역 술도 있어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맥주를 마시다, 한참을 사케와 와인으로 갈아탔는데 지금은 다시 소주 '동해'를 마신다. 동해는 속초에서 생산하는 지역 술로 17.5도의 알코올에 혀 끝의 깔끔함이 좋은 감성을 자극하는 맛이다. 

사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끝 맛이 부드러운 소주를 즐겨마시게 됐다. 

가끔씩은 안동소주도 마셔도 본다. 좀 약한 브랜디 맛이랄까, 적어도 내 혀에서 느껴지는 맛이 그랬다. 

언제부턴가 처음처럼은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 됐고 맥주는 부드럽게 한잔 하고 싶을 때 한잔씩 마시는 음료수로 변했다. 





내가 언제부터 '술꾼'이 되었을까?

나는 처음부터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인생의 쓴맛을 알며 언제부턴가 술맛에 눈을 뜨게 됐다.

1년, 2년, 10년, 점점 나의 강단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옛 친구들이 나의 변한 모습을 안다면 지금 당장 속초까지 달려오고도 남을 텐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지난날, 친구와 헤어진 남자 친구를 소환하며 소주 3병을 깠고, 백세주 10병을 밤새도록 마셨고, 퇴사할 때 양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까지 20년도 넘게 숱한 세월이 변하며 나도 변했고 주량도 세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유로우면 술을 끊을지 알았는데 점점 더 센 술에 손이 가는 내가 가끔은 무서울 때도 있지만 아직도 남은 기운이라 생각한다. 


술은 나쁘지 않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내 우울한 마음을 업 시켜주기고 하고 때론 불면증인 나에게 잠을 재워주기도 하니 아직까지는 함께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알코올의 힘은 반짝이는 영감을 주기도 하며 잊혔던 기억들도 마음속에서 끌어올려주니 술은 참, 요물이다. 





마시는 술에 따라, 

기분에 따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기도 하다. 


그 대상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옛 생각에 떠오르는 누군가, 몇 명이 스치지만 전화는 하지 못 한다. 

대체적으로 좋은 감정보다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라, 

전화번호가 지워진 사람들도 있지만, 

내 고운 심성이 나쁜 술기운으로 욕을 할지 모르니,

지금껏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았는데, 

굳이 그 사람들에게 내 속 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것도 그들에겐 사치라 생각한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었다니, 

지우개는 이럴 때 필요한데, 어디 있지? 술기운을 빌어 쑥 밀고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술을 마실 땐, 안주를 먹는 기쁨, 만드는 기쁨이 동시에 공존한다.  

물론, 소주에는 회가 최고 궁합이다. 

간단하게 과자를 안주로 삼기도 하지만 가끔은 삼겹살을 굽고 피자를 오븐에 굽기도 한다. 

초콜릿은 의외로 모든 술의 안주로 좋다. 달콤해 소주와 먹으면 정말이지, 술술 넘어간다. 그래서 소주 마실 때는 피하는 게 좋다. 또, 생라면은 맥주, 소주에 다 어울리는 안주다. 집에 라면 한, 두 개쯤은 쟁여 놓으니 빈속보다는 소울 주전부리와 마시면 술맛은 배가 된다. 





가끔씩 술은 사회악이 되기도 하지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그리고 잠이 필요할 때, 한잔, 두 잔 정도는 좋다. 누군가와 얘기하며 들뜬 마음으로 마시는 술도 유쾌하지만 혼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날, 속초 바다를 배경으로 보지도 않는 영화 볼륨을 높이고 집에서 나와 한잔하는 것도 괜찮다. 






꽉 막힌 도시보다는 이상하게 바닷가나 숲 속에서 술을 마시면 덜 취한다. 기분 탓인가. 

양양 미천골 자연 휴양림의 통나무집에서 작은언니, 형부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밤새워 술을 마셨다. 

웬일이지, 잘 마시지도 못하는데 물처럼 술술 내 뱃속으로 들어간다. 새벽 일산에서 출발해 주문진에서 물회로 소주 한잔하고 회 한 접시를 들고 와 좋은 공기에 마신 소주는 너무 달았다. 다음날도 취기가 없는  맑은 아침을 맞았다. 아직도 그때가 기억나는 건, 아마도 좋은 술기운이 남아있기에 그럴 것이다. 

'좋은 술기운'은 나에게 다가와 지금도 은은한 냄새를 풍긴다.

갑자기 그 냄새를 맡고 싶다. 오늘 이 대낮, 소주 한잔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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