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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Feb 26. 2022

신촌에서 만난 아줌마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다]


태어나 서른 살 너머 서울에 살 때까지 신촌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 다시 돌아온 곳, 또 신촌이다. 

어느 길로 가도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리에 밝기도 하고 내가 제일 다니기 편한 곳이다. 

‘신촌’이라는 지명 하나로도 가지고 있는 추억이 많다. 

유년기, 사춘기, 어른이 됐을 때도 계속 이 거리에 있었기에 아무리 변해도 나한텐 말 그 모습 그대로인 마음의 안식처다.  





1990년 전후로 한참 사회적으로 인신매매가 극성을 부리던 때가 있었다. 

연일 매스컴에서 특종으로 보도가 될 만큼 문제는 심각했다. 중고등학교 앞에 봉고차가 정차해 있으면 부러 피해 갔을 정도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린 학생들을 싣고 간다는 뉴스로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신촌에서 언니와 다투고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데 농협을 지나 골목길에서 복대를 한 아줌마가 멀리서 나를 불렀다.

"학생, 잠깐만, 잠깐만" 해서, 

"저 부르셨어요? 무슨 일이신데요?" 다급한 목소리에 가는 길을 멈췄다.

"저기 보이지? 저분이 학생을 안다며 데리고 오래." 그래서 멀리 보이는 곳을 봤더니,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의 봉고차가 옆에 있었다. "저는 모르는 분인데요." 

아줌마가 한층 격양된 목소리로 "학생, 좀 같이 가보자. 나는 심부름인데 왜 나한테 그래." 

내 손을 잡고 끌 길래, "왜 이러세요, 전 모르는 분이라니까요, 소리 지를 거예요. 이 손 놓으세요." 하며 단호하게 말했더니, 참 별나다며 손을 놓으셨다. 


아줌마가 봉고차 옆으로 다시 걸어가니 그 차는 출발했다. 

그 봉고차가 정말 인신매매를 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그 순간이 길고 무서웠던지,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하는데 내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어서 가자"를 외쳤지만 현실의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일가? 광명의 빛이 내 앞에 나타났다. 바로, 큰언니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밤길을 무서워하는 나를 두고 집에 갈 수가 없어 다시 되돌아왔다고. 

엉엉 울면서 언니한테 그 문제의 봉고차에 대한 얘기를 했다. 주절주절 하는 내 얼굴은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 옆에 든든한 언니가 있다는 믿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밤길은 혼자 다닐 때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아무리 불이 밝아도 좀처럼 어깨가 펴지지 않는다. 

어렸을 땐 크게 노래를 부르거나 빠른 뜀박질을 하지만 어른이 돼서는 몸이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럴 땐 핸드폰을 들고 지금쯤 통화가 가능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깜깜한 밤에도 내 전화를 받아 줄 사람이 있다는 건 나름 행복하다.

어두울 때마다 경찰한테 내 안전 귀가로 전화를 할 수는 없으니 그 대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때론, '한마디 말'로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위로가 될 수 있으니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는 말은 아직은 안에 넣어두고 오늘은 환하게 웃으며 '좋은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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