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고희 Mar 27. 2024

자기중심적 사고의 대물림

1인치의 자각

내가 엄마에게 가장 화가 나는 점은 바로 '자기중심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엄마는 이기적이지 않다. 그저 모든 일을 자기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는 이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위험한 이유는 첫째는 남을 무턱대고 적대시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쓸데없이 자기 연민에 빠다는 것이다.

모든 사건에서 자신은 무조건 피해자가 되고, 남들은 무조건 괴롭히는 사람이 된다. 상대방 사정을 건너 건너 짐작해 보는 마음이 전혀 없다. 내보기엔 마음이 없다기보다 그런 훈련이 안되어서 그런  같다. 평생을 자신을 옹호하고 보호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다 보니, 그걸 익힐 시간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나는 그만 진절머리를 쳤다.

엄마네 집 앞에 가끔씩 주문하지 않은 택배나 배달이 올 때가 있다. 주소가 잘못된 건지, 택배 기사가 혼동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누구에게 온 건지, 거기 써있는 주소를 좀 불러보라고 하면 매번 딴소리를 하거나, 안보인다고 하거나, 없다고 해서 확인할 길이 없다.

한번은 크리스마스쯤에 피자가 하나 배달된 적이 있었다. 바로 발견한 것도 아니고, 며칠 지나 외출하다가 발견을 했다는데, 누가 보낸 건지, 왜 보낸 건지, 잘못 온 거면 왜 수거가 안되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 엄마가 깝다고 그걸 갖다 드셨다 다.

순간 당황한 내가 그게 뭔 줄 알고 아무거나 먹느냐 더니, 엄마는 다행히 겨울이라 피자가 상하진 않았던 아무렇지 않다면서, 뭐 어떠냐... 그렇게 딴소리만 다.

그전에도 정체 모를 택배가 한동안 집 앞에 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수거해 가질 않아 뜯어봤더니, 자그마한 머리끈이 하나 들어 있었다 했다. 그 외에도 몇 번 더 그런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근데 대체, 왜 엄마네에서 유독 배달사고가 많은 걸까??!!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던 와중, 얼마 전 저녁에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저건 무슨 떡인데 그렇게 맛이 없냐는 거다. 무슨 떡? 나 떡 보낸 적 없는데? 했더니, 난 네가 보낸 줄 알고 갖고 들어와 먹었다는 것다...

아니, 왜 또 뭐가 어디서 온 줄도 모르고 확인도 안하고 무턱대고 뜯어서 먹느냐고, 그날은 박을 좀 했다. 딸들이 보내면 보냈다고 전화를 하지 않느냐, 근데 왜 매번 묻지도 않고 먹느냐 이거 저거 더니, 기 싫다는듯 머리 아프다 전화를 툭 끊다.  

그러게, 내가 또 확인을 안하고 먹었네? 어쩌지? 이런 식의 반응을 기대했데, 역시나 엄마는 수긍은 없고, 그저 자기에만 급급할 뿐. 그왜 남의 집 앞에 물건을 갖다 놓느냐, 갖다 놓은 사람이 잘못한 거 아니냐... 그런 식이다.

그게 다른 사람 꺼면 그 사람도 만약에 딸이 보내준 거 얼마나 속상, 오배송이면 택배기사가 다 변상을 해줘야 할 텐데 얼마나 난처할까, 그런 생각은 못한다. 그저 당신은 택배가 와서 뜯었을 뿐,  끝이다. 

혹여라도 누가 와서 내놓으라고 해코지 하거나, 절도로 신고라도 할까 싶어 걱정되어 한소리 한 것을 엄마는 그저 자신을 공격하고 몰아붙인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의 그런 왜곡되고, 온당하지 못한 사고방식은 고스란히 어린 절의 나에게 대물림되었다. 

그래서 인생의 대부분을 억울한 마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만성적인 우울을 안고 살다. 지금의 엄마모습과 완벽히 같다. 

젊은 날에,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가에 대해서 정말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그런 것을 알려주는 책이 있는지 찾아 헤매 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남들은 왜 나만큼 힘들어하지 않는가에 대해 궁금해기 시작했고, 고, 고, 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느끼고, 고, 반복했다. 생각의 관성을 깨기 위해 무던히 노력, 내가 어떤 상태의 사람인지 비로소 메타인지를 통해 간신히 감옥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드디어 쓸데없는 피해의식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토록 신경 쓰던 타인과의 관계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끔 엄마를 보면 안쓰럽다.

친구도 없이 늘 람들을 못마땅해하고,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해 고립되엄마를 간절히 돕고 싶어, 엄마는 이런이런 상태인 거 같애, 남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봐, 옆집 아줌마가 인사를 안해도 그건 아저씨랑 싸워서 기분이 안좋아 그런 거지 엄마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아랫집 개가 짖는 건 엄마라서 짓는 게 아니고 그냥 모든 발소리에 반응하는 것뿐이야... 해줘도, 엄마는 그런 내 또한 조언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못마땅히 여겨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 본능적으로 화를 거나 토라다. 

이제 엄마는 나이가 너무 많아, 사고의 방식을 바꾸는 게  어버린 걸까...


엄마에게 '공감'오히려 엄마의 생각을 더 강화시키고 고착시킬 뿐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기에, 나 역시 급한 마음에 그만 엄마가 싫어하는 식으로 엄마를 설득하려고 했던 것 다.

하지만 진정한 바램은, 엄마가 얼마를 살 남은 인생만큼이라도 신의  생 안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뿐인데, 이젠 도무지 안되는 걸까?

자그마한 틀만 깨고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보이고, 표정이 보이고, 이유가 보이고, 마음이 보이는데, 엄마는 대체 언제쯤 그런 것들을 보며 유롭게 살아갈까...

엄마, 세상은 엄마를 공격하지 않아... 같이 이해하고 더불어 살면 되는 거야... 

마음을 1인치만 늘려보자...


그런 엄마를 보듬어 주는 고마운 제부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덕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