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요즘 엄마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나중에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걱정도 앞선다. 혹여라도 내가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는 건 아닐까, 나 자신을 늘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또한 친정 엄마 입장도 조금은 헤아려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그동안 먹고 사느라 잘 몰랐던 엄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데...
하지만, '우리 엄마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답을 모르겠다.
엄마는 좋은 것을 좋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속으론 좋으면서 쑥스러워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 좋은 게 하나도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후자 쪽일 거라는 생각은 든다. 왜냐하면 지난번에 얘기했던 엄마가 덕질에 빠지는 시기에는 좋다는 표현을 너무 적극적으로 해서, 이렇게 엄마가 자기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요즘 선거철이라 엄마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티비로 보느라, 밖에도 잘 안나가시는 듯하다.)
맛있는 걸 사드려도 좋은 데를 데려가도 엄마의 표정은 늘 떨떠름하다. "엄마, 맛있어?" 하고 물어도 엄마는 결연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진실이 아닌 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작년에 부산에 가서도 일본에 가서도, 힘들기만 하고 먹을 것도 없다고 투덜대셨다. 일본 여행 마지막날, 내가 참다 참다 엄마는 빈말이라도 맛있다, 좋다, 그게 안되면 먹을만 하다 그런 소리 좀 해주면 안되냐 한소리 했다. 다 그렇게 싫다 하면 엄마랑 무슨 대화를 하겠냐며... 엄마랑 얘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할말이 없다고...
엄마는 까칠하다.
한번은 엄마 다니는 병원에 정기검진 받으러 가야 해서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가 가는 길을 아느냐고 우리에게 되물었다. 원하는 길이 있으면 그리로 가주겠다는 소리다. 근데 엄마는 대뜸 그걸 아저씨가 알아서 가야지, 왜 우리한테 묻느냐며 발끈했다. 내가 옆에서 "빨리 가는 길 아느냐고 물어보신 거잖아!" 하고 엄마를 진정시켰다. 혹시라도 나 없을때 택시 탔다가 그런 식으로 시비라도 걸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진심으로 걱정되는 대목이다.
예전에 아이 둘 독박으로 혼자 키우면서 정말 힘들 때도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명절에 한번은 우리집에 애들을 보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딸아이가 낯가림이 심할 시기였다. 엄마는 자신을 보고 울먹울먹 하는 아이를 보고는 "알았어! 안볼께! 안보면 될 거 아니야!" 하며 토라져서는 돌아앉아 있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밥만 딱 먹고는 근 한시간이나 있었을까, 피곤하다고 그 먼 길을 와놓고 다시 야멸차게 가버렸다. 엄마의 까칠함은 손자 손녀도 예외 없었다.
또 한번은 친정 가는 길에 동생에게서 "엄마한테 언니 총각김치좀 담가주라 그럴까?" 하고 전화가 왔길래 반가워 그러라 했더니, 득달같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총각김치 해달랬다매?!" 그 소리가 너무 쌀쌀맞아 그 뾰족함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어? 아니... 엄마 힘들면 하지마~" 했더니, 그렇다고 뭘 또 그렇게 쌜쭉해서 하지말래냐며 사람을 들었다 놨다...
좋은 표현은 안하면서, 싫은 표현은 늘 그렇게 강하고 쎄게 한다.
엄마는 통제적이다.
어릴 때 엄마랑 옷 사러 시장에 가면 옷을 보는 게 아니라, 항상 엄마 표정을 봐야 했다. 엄마 표정이 일그러져 있으면 사지 않았고, 괜찮네! 하면 샀다.
지금도 흰옷을 입고 가면 이쁘다 하고, 모노톤의 무채색 옷을 입고 가면 밝은 옷을 좀 입지... 한다.
동생은 서른 너머까지 엄마가 머리를 못자르게 해서 계속 긴 머리를 고수해야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엄마가 참 못된 사람인 것만 같다. 차라리 못된 사람이었으면 내가 엄마에게 이토록 양가의 감정을 느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엄마는 늘 얘기하지만, 우리 자매를 위해 희생하고 또 희생했다. 참고 참느라 표현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우울감 때문에 예민해져서 말이 곱게 안나오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불안함 때문에 통제적인 성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내 머리로 하는 내 판단일 뿐이고, 막상 엄마의 그 변하지 않는 못마땅해하고 일그러진 표정을 보면 울화가 난다.
이제 엄마 덕에 우리 자매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용돈도 넉넉히 드려 엄마도 흔한 말로 폐지 줍는 처지도 아닌데, 왜 엄마는 과거에서 단 한보도 유해지질 않는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얼마 전에도 엄마랑 통화하다가 아들 녀석이 나 닮아 배탈도 자주 하고 감기도 자주 걸린다 푸념을 했더랬는데, 하면서도 '이거 내가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싶던 순간,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걔는 왜 그렇게 맨날 빌빌대고 아프냐'며 타박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냥 애가 자꾸 아파서 어떡하냐, 보약이라도 한재 먹여야 되는 거 아니냐... 그저 할머니다운 걱정을 해주길 바랬는데, 내 욕심이었다.
돌아온 건 상처뿐이었다.
엄마는 늘 그런다. 당신 말투가 원래 그렇다고. 제발 듣기 싫으니, 고쳐 달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결국 그 소리를 들은 나 역시 발끈해서, 엄마는 왜 자기 손주 얘기를 그렇게 남얘기하듯 하느냐고, 걔가 나닮아 그렇지 누굴 닮았겠느냐!고 한소리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끊고나서 생각하니, 난 왜 이토록 엄마랑 대화하기가 힘이 드는가, 가장 가까워야 할 모녀사이에 미주알고주알 걱정거리도 한번 편하고 소소하게 나누질 못하는가... 참 서글펐다. (그러면서 티비속 정치인 칭찬은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한다는게 더 기가 막혔다.)
따뜻하고 푸근한 외할머니의 모습, 엄마는 죽어도 그렇게는 안되는 사람인가 보다.
늘 빚 갚는 마음으로 찾아가고 전화하고 엄마를 돌보고 있지만, 나는 늘 처연하게 꿈꾼다.
따뜻하고 푸근한 엄마의 웃는 모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