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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Dec 18. 2024

부모의 업도 결국 나의 업이다

 며칠 전, 엄마가 언니와 나 엄마와 셋의 단톡방에 반찬 사진을 올렸다. 미역줄기볶음, 엄마표 깻잎찜, 그리고 동태찌개까지.. 딱 봐도 엄마, 아빠 두 분이 드실 양이 아니다. 엄마가 단톡방에 음식 사진을 올리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시간 될 때 와서 가져가라는 말이다. 언니와 나는 엄마표 깻잎찜에 엄지 척을 날린다. 가장 맛있는 엄마표 반찬 중 하나다. 저녁쯤 가지러 간다고 톡을 남겼다. 막상 저녁이 되니 반찬만 가지러 가기도 그렇고 간 김에 엄마네서 저녁도 먹고 오면 좋겠다 싶어 우리는 엄마집에 가서 저녁 먹겠다고 하고 아이와 채비를 하여 출발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주말 저녁 차도 안 밀리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가깝긴 해도 아이 키우고 하다 보니 엄마가 가끔씩 우리 집으로 오시기는 해도 우리 식구가 다 같이 가서 식사를 한건 명절 이후 오랜만이었다. 도착하니 아빠가 우릴 맞아주셨고 엄마는 역시나 반찬을 다 해놓으셨다 하셨지만 우리가 온다 하니 무언가를 또 만들고 계신지 부엌에서 나와 우릴 맞아주셨다. 아이와 함께 가니 항상 즐겁게 반겨주시고 우리도 그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는 우리가 온다 하니 사진으로 올리신 반찬들 이외에 아이가 먹을 수 있게 엄마표 푸짐한 계란말이까지 뚝딱 만들어 놓으셨다. 아빠가 아이 옆에 앉자, 아이는 곧바로 "할아버지가 먹여줘." 한다. 세 살이지만 참 눈치도 빠르고 사랑받는 법을 아는 딸이다. 아빠는 그런 손녀의 말에 기분이 좋으신지 "그래, 할아버지가 먹여줄게." 하시며 작은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올려 조그마한 손녀딸의 입 속에 넣어주신다. 그러면 딸아이는 "할아버지가 줘서 맛있어."라고 답을 하며 엄지 척을 한다. 어디서 저렇게 사교성이 좋은 아이가 태어났는지 내 딸이지만 나와 닮은 모습이 아닌지라 나는 놀라곤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올려준 밥과 반찬을 맛있게 먹고 남은 밥은 국에 말아 국 한 그릇까지 뚝딱 끝낸다. 그리고 또 언제 준비하셨는지 호박죽을 끓이시는 할머니한테 가서 "○○, 호박죽 좋아해." 하여 할미가 갓 끓이신 따끈따끈한 호박죽을 호호불어 입에 넣어주게 만든다. 그렇게 맛있게 식사를 하고 디저트로 호박죽과 과일까지 먹고 나니 시간이 꽤 흘렀다. 집에 갈 시간인데 아이는 오랜만에 온 할머니집이 좋았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랑 더 놀겠다고 한다. 그렇게 떼를 쓰는 딸에게 나는 "그럼,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랑 코~ 할래?" 하고 넌지시 묻는다. 딸아이는 잠시 생각을 한다. 그러더니 답을 피한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다시 한번 물었을 때, 이번엔 엄마가 답했다. "할머니, 힘들어. 다음에 자자."라고.. 엄마는 종종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거나 할 때, 자주 할머니 힘들어~라는 말을 하신다. 정말 힘드신 적도 있고, 내가 볼 땐 귀찮아서(?) 힘들다고 하신 적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엄마가 정말 힘드셨는지 입술이 부르터 있고, 주방에 있을 때도 어지럽다고 하셨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큰 이후로는 외할머니집에서는 안 자려고 해서 나도 장난 반으로 물어본 거긴 했다. 늦어서 갈 준비를 하는 우리에게 엄마는 반찬 이외에 이런저런 음식들까지 다 싸주셨다. 보통 때는 음식을 해서 집에까지 싸다 주시는데 오늘 내가 엄마집으로 가니 이것저것 더 많이 챙겨주신다. 그리고 집에서 받아먹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집에 와서 엄마가 몸이 힘드신데도 음식 다하시고 챙겨주시는 걸 보니 감사하고 미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배도 부르고 양손무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신랑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신랑이 "나 사실, 오늘도 장모님에게 서운했어."라고 한다. 이야기 듣지 않아도 뭐 때문인지 아는 나는 오늘은 신랑 말을 끊고 말했다. "엄마, 오늘 진짜 힘들었어. 나랑 있으면서도 어지럽다고 하셨고, 입술도 여러 번 트셨다고 하셨어." 그러자 신랑은 "그래도 우리 엄마 같으면..." "알아, 어머니 같으면 힘들다고 안 하시는 거. 근데 우리 이제 그만 비교하기로 했잖아. 우리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거고 어머니는 어머님 방식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거야. 우리는 어쨌든 양쪽에서 우리가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있잖아. 그리고 어머님 같은 분 없어. 우리 엄마가 이상한 게 아니라 어머님이 대단하신 거야. 그러니 그만하자. 그리고 앞으로 한번 더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 너무 서운할 것 같아."라고 신랑말을 일축했다. 더 이상 신랑이 말을 하지 않는다.


 신랑에게 말한 대로다. 정말 우리 어머님 같은 분 없다. 주위에서 이야기를 들어봐도 우리 어머니처럼 아이를 잘 봐주시고, 우리를 배려해 주시고, 본인 힘든 거 전혀 내색 안 하시는 그런 분을 친정엄마든, 시어머니든 통틀어서 내 주위에서 난 보고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니 그걸 우리보다 그 사랑을 받는 아이는 가장 잘 안다. 그래서일까? 아가 두 돌이 지나 말을 하면서부터는 외할머니집에는 잘 가려하지 않는다. 항상 전민할머니(친할머니를 친할머니 사시는 동 이름을 따서 부른다.) 집에 간다고 하고, 울거나 자다 깨거나 우리가 본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전민할머니(친할머니)를 찾는다. 그리고 아이가 친할머니 댁에 가있으면 우리도 너무 편하다. 주말에 한 번씩 아이 맡기면 하루 재워주시고, 평일에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하거나 우리가 일이 있거나 할 때면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봐주시는데 우리보다 아이를 더 잘 봐주고 잘 놀아주시니 우리는 맡기고도 걱정 없이 정말 푹 쉴 수 있다. 명절이나 주말에 아이랑 같이 어머님댁에 가있을 때에도 어머니는 우리 밥 차려주시며 우리 밥 먹으라고 하시고 우리 밥 먹는 사이 아이도 다 먹여주시고, 놀아주신다. 아이가 온다고 하면 어머니방은 아이방으로 변신이다. 아이 이불, 베개, 기저귀, 옷들, 장난감, 책들까지 다 꺼내놓으셔서 아이는 할머니 집에 가면 그 방은 자기 방인 줄 안다. 서울 사는 3살 많은 사촌언니도 돌 지나고부터 한 달에 2주씩 봐주셨어서 장난감, 책, 옷, 그릇, 아이 컵 등 아이가 필요한 것들은 웬만한 건 다 있는 데다 기저귀나 우유 같은 것들은 항상 주문을 해놓으셔서 떨어질 일이 없다. 그래서 어머님집에 갈 때는 우리는 아이만 데리고 가면 된다. 종종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가 좋아하거나 잘 먹는 음식이나 간식들을 보시면 바로 물어보시고는 주문해 놓으신다.  만점에 만점 어머니시다. 


 이렇기에 우리가 어머님댁에 가면 특히나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잠도 잘 자지 못했을 때는 아이를 봐주시며 얼른 우리 눈 붙이라고 하시든지 아니면 아이 놓고 우리는 가서 쉬라고 하며 아이를 봐주시니 나는 친정보다도 시댁이 더 편했고, 엄마한테 부탁하는 것보다는 아이는 어머니께 부탁드렸다. 나도 내 엄마지만 우리 어머니랑 다르다는 걸 안다. 왜 나는 모르겠나.'친정엄마지만 우리 엄마보다 어머니가 아이를 더 잘 보신다는 것을... '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아니 우리가 그런 걸 비교하고 타박할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곁에 계셔주는 것 자체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인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는다고 너무 평균이상으로 잘하시는 어머님과 비교하며 엄마를 평가하고 불만을 품는 건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결혼을 해보니 내 부모의 모습, 부모의 좋은 모습이나 안 좋은 모습 모두 다 내가 안고 갈 나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와서 그들의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불평하고 바꿔달라고 요구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업인 것이다. 그러니 현명한 건 그들의 모습을 거부하고 바꾸려 하지 말고 빨리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 몫까지 다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후 뉴질랜드에서 지낼 때 시부모님께서 매 년 오셔서 같이 몇 달씩 지냈었다. 그때 아버님은 나의 모습들 하나하나에 잔소리하시며 주위 모든 것을 본인 스타일에 맞추길 원하셨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 그런 것들이 힘들어 여러 번 신랑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아버님은 왜 그러시냐고, 왜 본인한테 우리가 다 맞추길 원하시냐고.' 그러면 신랑은 " 아빠가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해?", "너무 서운해말고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참고 넘어가. 아니면 내가 돌려서 말해볼게."라고 말했다. 그때는 왜 신랑이 내 편이 되어서 아버님께 "아빠,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서운하고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보니 알겠다. 신랑도 왜 그러지 못했는지.... '그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아버님과 나의 사이만 안 좋아지고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서운하시지 않으셨을까? 거기서 가장 현명한 건 서로 위로해 주며 신랑이 아버님몫까지 나한테 더 잘해주는 것이다. 이제야 몇 년이 흘러서 신랑도 나에게 이야기한다.


" 나도 장모님이랑 우리 엄마 비교 안 할게. 그러니 자기도 우리 아빠에 대해 불평하는 거 하지 말아 줘." 지금은 그런 불평을 하지 않지만 신혼 초에 내가 아버님에 대한 불평을 한 것이 신랑도 많이 스트레스였고 서운했었나 보다. "알았어. 나도 안 그럴게." 나도 답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신랑이 우리 엄마에게 서운했던 만큼 내가 엄마몫까지 신랑에게 더 잘해야겠다.'라고...




 어렸을 적 불교신자인 아빠에게 들은 적이 있다. '부모는 이전의 나의 영이 이전생에 내가 행한 나의 업으로 인해 내가 나의 부모로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내가 좋은 업을 쌓았으면 나의 부모를 더 좋은 여건의 부모들의 선택지에서 고를 수 있고, 내가 좋지 않은 업을 많이 쌓았으면 가난하고 병들고 혹은 자식을 학대하고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안 좋은 선택지들의 부모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 거라고.' 어쨌거나 그 선택지도 다 나의 업에서 나온 것이고 그들 중 지금의 부모를 나의 부모로 선택한 것은 결국 나였다고 말이다.'


 나는 결혼 후에는 신랑을 따라 교회에 나가고 있다. 종교를 바꾼 셈이긴 하나, 나는 종교에 관해선 이 종교가 맞고 이 종교가 틀리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오히려 알고 배울수록 삶의 근본, 진리를 다루는 점에서 그 어떤 종교가 지향하는 목표점을 결국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후세계를 가보지 않았고 이전 생이 있었다 하더라고 그 기억은 없으니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살아 있는 한 알 수는 없겠지만, 아빠가 말씀하신 이 부분에서는 종교적인 것을 떠나 공감이 갔다. 아빠의 말씀대로라면 부모의 업도 결국 나의 업인 것이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의 부모의 모습에 불평하고 불만을 갖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종교를 통틀어 부모를 공경해야 함은 세상의 진리가 아닐까?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런 불평과 불만은 끊어내고, 지금 부모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남아 있는 이 생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덕을 쌓고 선을 행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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