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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Dec 15. 2024

가깝고도 먼 나의 가족

원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갈 짐 정리를 마치고 나와 신랑 아이는 친정과 시댁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 어린이집이 시댁과 가까워 신랑과 아이는 시댁에서 나는 친정에서 지내며 주말에는 아이와 신랑이 친정에 와 같이 지낸다. 그러다 보니 평일에 내가 아이를 보러 시댁에 가지 않을 때는 온전히 나와 아빠 엄마 나의 원가족이 함께한다. 뉴질랜드로 시집가기 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내려와서 몇 년 간 같이 살았던 이후로 거의 8년 만이다. 그러나 우리는 딱히 변한 게 없다. 아무렴 사람이 바뀔 리 있을까? 바뀐 게 있다면, 나름 강하고 소신 있으셨던 아빠가 종교영향(불교의 영향으로 스스로 수행하시며 많이 내려놓고 유해지셨다.) 외에 엄마와 대적할(?) 내가 없이 엄마와 단 둘이 지내시면서 더더욱 아빠자체가 없어지셨다는 것과 내가 결혼 후 신랑과 시댁의 영향으로 우리 가족의 안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랄까? 결론적으로는 전보다 더 서로 세.졌.다.

서로 각자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강해진 반면, 그에 맞게 먼저 행동하는 사람은 없고, 서로 너 먼저 네가~를 이야기하니 집 분위기는 냉랭, 적막, 무관심 이 되어버렸다.


 한 번씩 시댁에 있다가 집에 오는 날이면 그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무언가 반발심이 일기도 한다. ' 우리 집은 왜 이런 걸까?', ' 왜 누구 하나 먼저 배려하지 않고 상대에게만 요구하는 걸까?' ' 왜 먼저 웃는 얼굴, 나긋한 말투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걸까?' 등의 생각들이 몰려온다.


 어제 오전에 할 일을 하고 점심음 신랑과 점심도 먹고 아이하원 후 아이도 보고 놀다 올 겸 시댁에 갔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르니 아이와 신랑이 좋아하는 호빵이 있어 호빵 2팩을 사들고서 말이다. 집에 도착하니 항상 그렇듯 어머님이 웃는 얼굴로 반기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어머니는 이리 와 보라며 맛있는 떡이 있어 샀다며 먹어보라고 하신다. 며칠 전 친구분 들고 골프 가셔서 맛있는 떡을 드셨다는 데 그 떡을 사신 모양이다. "어머니 맛있네요~~." 호박 들어있는 호박인절미 떡이다. " 응 그렇지? 낱개포장되어 있어서 큰 걸로 4팩 샀으니 1팩 친정 가져가서 먹어. 아빠 떡 좋아하시지?" "네, 아빠 좋아하시겠어요. 감사해요." 항상 밥보다도 떡, 아침에 일 나가실 때 떡 있으면 꼭 싸갖고 나가서 드시는 아빠가 좋아하실 생각에 작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친정에 호빵과 떡을 들고 집에 왔다.


 그러나 나의 기분과는 달리 집에 오자마자 내가 들고 온 걸 보시고는 아빠 왈,

  " 뭘 그렇게 많이 어? 사 오면 먹지도 않는데, 너 먹을거나 사와. " 참고 넘어가자 싶은데, 기분 좋게 싸주신 어머니 생각도 나면서 또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 아니 사 온 거 아냐. 어머니가 주신 거야. 아빠 드시라고~ 그리고 많으면 두고 먹으면 되지. 멀 가져온 거 보지도 않고 그래?" 그러자 아빠도 질세라, " 이쁘게 말하지 왜 또 그래?" , 이쯤 되면 가슴에 떡 먹다 체한듯한 체기가 헉, 하고 온다.. ' 아니 누가 먼저 이쁘게 이야기 안 해놓고,,,,' 그래도 이쯤에서 멈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쯤 하면 그냥 내버려 뒀음 싶은데 아빤 또 문을 열고 극구 한마디하신다. "뭐 기분 나쁜 거 있어?"  말하기가 싫다. 입을 닫는다. 나이 40이 되어서까지 이렇게 투닥거려야 하는 이 현실이 그저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아빠 역시 한숨을 쉬며 문을 닫는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엄마도 중간에 한 말씀하신다. "아빠 그 말은 그냥 사 와서 좋다는 거지, 너도 참고 넘어가면 될 걸 꼭 그렇게 짚고 넘어가니?" 점점 두 분만 계시면서 정말 더 닮아지신다. '아니 그게 사 와서 좋다는 표현인가? 누가 봐도 왜 많이 사 왔냐고 하는 핀잔인데? 그리고 설사 좋다는 표현이면 왜 그걸 좋다고 표현을 하시고 그래도 조금만 사 오지. 하시면 될 것을 좋다는 표현은 쏙 뺐는데 어느 누가 좋다는 표현으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또 입을 닫는다. 엄마에게는 말대꾸하면 곧 싸움이라는 걸 40년 넘게 살며 터득한 것이니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낫다. 엄마 아빠는 참 표현을 안 하신다. 감정표현, 특히 사랑표현, 칭잔에 인색하시다. 그렇게 본인들이 커오셨을 수 있겠지만, 정겹게 표현하면 안 된다는 어떤 나름의 관념(?)이 있으신 것 같다. 그런 점이 표현하기 좋아하고, 반응하기 좋아하고 그런 만큼 표현받기 또한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 달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다


 방으로 들어와 앉아 있는 데 오늘 추위인지 이 상황때문인지 급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온다. 속까지 메슥거린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살던 때, 엄마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이도 봐주실 겸 오시면 반찬이며 국이며 찌개며 해서 오셨는데, 그때 내가 엄마한테 "엄마 왜 그렇게 많이 갖고 와. 먹을 사람도 없어."라고 하니 그 당시 아빠는 " 너는 엄마가 힘들게 해다 줬는 데 그저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지 뭘 그리 토를 다느냐.'라고 했던 아빠의 반응이 말이다. 그렇다 시작은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그때 아빠에게 이야기를 듣고, 친정언니의 얘기를 듣고 내가 해다준 사람생각을 못했구나 싶어 그 후로는 엄마가 음식을 우리 먹는 분량 항상 넘게 싸다주셔도 다른 토를 달지 않는다. 힘들게 왜 많이 했대~ 잘 먹을게.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때 분명 나한테 그렇게 해준 사람 생각해서 감사히 받지 했던 분이 나한테 왜 사 왔냐고 말을 하신다. 참 아이러니다. 엄마도 그렇다. 나한테 짜증 내지 마라고 하시면서 짜증을 참 자주 내신다. 그러다 나도 한번 엄마에게 '엄마 짜증 내지 마라며 왜 이렇게 짜증 내.'하면 ' 아픈데 그럼 짜증이 안나냐?'라고 가시 돋친 말투로 답하신다. 그런 모순은 뭘까? 나는 하면서 너는 하지 말라는. 항상 자라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가슴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어른이니, 부모이니 되는데 너는 안 돼, 어디서 부모한테 말대꾸야, 그냥 하라면 해~ 하는 강압적 태도 말이다. 여전히 바뀐 것은 없었다. '나는 짜증 내도 너는 어디 부모 앞에서 짜증이야.'라는 말에 공감을 해야 하고 네라고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게 고분고분한 자식의 도리인 것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자식이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바뀐 것은 예전엔 따박따박 왜 나는 안되고 엄마는 하냐면서 따졌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는 정도? 그리고 그건 엄마를 이해해서가 아닌 그래서 바뀌는 건 없고 오히려 더 상황이 안 좋게만 된다는 걸 무수한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 쌓이는 것은 매한가지 똑같다. '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




 부모님은 한 번씩 나와 말이 안 통하시거나 하실 때면 '너도 아이를 키우니 알 거 아니냐.' 하시지만, 나는 오히려 자식을 키워보니 의문 나고 모르겠는 게 더 많다. 세 살 난 나의 아이도 내가 화를 내면서 'OO 야, 짜증 내지 말고 예쁘게 말해야지.' 하면 아이는 '엄마도 화내지 마, 엄마가 화내니까 나도 짜증 나는 거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부모가 예쁘게 말하지 않는데 예쁘게 말할 아이가 어디 있을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절대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는다. 참 교육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실천으로서 본보기로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통해 정신이 번쩍 들고, 아이를 통해 배운다. '그렇지, 내가 본보기를 되야지. 내가 짜증 내지 않고 화나지 않고 예쁘게 먼저 이야기해 줘야지.'하고 말이다.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은 내 아이에게는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부모에게 먼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노력한다면 할 수야 있겠지만, 그 노력은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나의 원가족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또 계산서이다. 부모탓이야 싶으면서도 또 내가 이해한 삶의 원리대로라면 그 모습들이 나 역시 부모한테 했던 모습들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부모가 먼저 본보기가 보여야 함이 맞지만 이 우주에 사는 한 개체로서의 인간으로 본다면 누가 먼저랄 것 없는 서로 각자의 몫인 것이다. 나는 나의 계산서만 치르면 된다. 그들은 그들의 계산서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나의 계산서를 치르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받아치지 않고 지나가고 넘어가려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먼저 웃고 나 먼저 배려하고 나 먼저 온기를 베풀어야 그 에너지가 다시 부모를 통해 나에게도 올 것이라는 걸 깨우쳤으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거기까지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뉴질랜드로 돌아가기 전 나의 부모와 풀어야 할 숙제, 내가 해결해야 할 나의 계산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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