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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4시간전

이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으리라.

오로지 나로서 살라!

 작년부터 독서모임을 함께 한, 하나의 글로 누워만 있던 나를 일어나게 하고 세상의 원리를 알게 하는 사상가와 철학가들의 책들로 나의 정신을 깨워치게 해주셨던 교수님께서 독서모임 이후 처음으로 책을 내셨다. 매일 새벽독서를 4년 이상하시고 브런치에도 새벽 5시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발행하시며 쓰셨던 글들 중 부모로서 자식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들을 담아 발행하셨다. 그 책이 어제 드디어 교수님의 정성 어린 메시지와 함께 나에게 도착했다. 브런치에서도 몇몇 글들은 읽었지만 나는 사실 종이책을 좋아하는지라 책으로 나오는 것이 완성된 유형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읽기에도 더 좋았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교수님께서 직접 창립하신 건율원을 통해 첫 출판을 하신 귀한 작품이 나에게 도착했다.



 책을 펼쳐 들고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목차부터 한번 쭉 훑은 후 바로 서론을 읽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책은 서론 부분이 아들에게 쓰는 편지로 실제 2022년에 아들에게 쓰신 편지를 각색하여 사진과 함께 담아내셨다. 15페이지 정도의 짧지 않은 편지글을 쉼 없이 쭈욱 읽어 내려갔다. 끝까지 다 읽어갈 때즈음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가슴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자극받아 터진 울음이었다. 내가 복 받힌 건 아들의 꿈을 그 어떤 주저함이나 일말의 반대도 없이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는 그리고 그 꿈을 이뤄나가는 데 있어서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지원해 주고 맞춰주려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 어떤 의도나 계획도 갖지 말고 그저 꿈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고, 그래서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어릴 적 꿈을 너무나도 이루고 싶었던 내 안의 작지만 큰 내가 같이 공명을 했다.


 '아.... 어릴 적 나는 이런 부모를 이런 어른을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던가.....!!!!'




 내 어릴 적 모습들이 떠올랐다. 참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 욕심이 많아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첫 꿈은 오염되는 지구에 가슴이 아파 환경부장관이 되어 우리나라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었다. 책 읽고, 글 쓰고 내가 쓴 글을 사람들 앞에서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좋아 초등학교 때 방송반 활동을 하며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고,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친구에게 감명받아 엄마를 졸라 다니게 된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 중. 고등학교 때 댄스부 활동을 하고 정식 댄스팀에 들어가 공연을 하면서는 사람들 앞에 서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영어를 좋아하고 가장 잘해 결국 전공은 영어영문학을 선택하면서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잠시(?) 영어선생님, 승무원이 꿈인 친구를 보며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스튜어디스, 그리고 대학교 때 전공수업으로 연극영화과에서 초빙되어 오신 교수님의 영화학개론 수업을 들으며 꾸게 된 영화감독과 영화배우의 꿈까지 어느 하나 나에게 허툰 꿈이 없었다. 그 꿈들이 내 안에서 씨앗으로 머문 시간과 크기는 달랐을지라도 모두 진실로 이루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중 가장 처음으로 학창시절 오랫동안 그려왔던 나의 꿈이 부모님의 미대진학 반대로 좌절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와 함께 부모님에 대한 심한 배신감이 찾아왔다. 이렇게 좌절시킬 거였으면 왜 진작 나를 그만두게 하지 않고 미술을 계속 하게 시키셨는지, 그림을 그려왔던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8년 동안 각종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들과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미대에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던 나에게 고3 진학을 앞둔 겨울, 엄마 입에서 나온 " 미대 보내려고 너 미술 시킨 게 아니다. 미술은 취미로 해도 된다."라는 말은 그 당시 나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을 살고자 할 때마다 ' 이 세상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니?' 라며 꿈을 좇는 나를 이상하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말에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왜 안되는데?'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의견을 더 강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 당시 나의 사고로는 그에 맞는 타당한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그저 난 내가 원하는 걸 하며 살고 싶은데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 답답했을 뿐이었고 그 답답한 만큼 세상에 대한 (남들이 모두 사는 대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 대한) 거부감만 커져왔다. 그렇게 미대진학의 첫 꿈이 무참히 좌절되고 '나의 꿈 따위는 다 버리고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절망감에 들 때 대학 원서조차 엄마가 원하는 대학(지방 국립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탈탈 털린 영혼으로 아무런 의욕과 열정 없이 대학 생활을 보내야 했다.


 대학졸업 후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는 열망에 가득 찼던 나는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직업 중 나의 꿈 중 하나였던 승무원에 지원을 했고 당당히 합격을 했다. 사실 승무원은 나의 꿈이기보다는 친한 친구의 꿈이었고 나는 자유로운 직업의 특성이 나와 맞을 것 같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진짜 꿈인 배우를 하고 싶은 꿈을 위해 발판으로 삼은 것이기도 했다. 우선 집을 떠나 서울에서 돈을 벌면서 연기공부를 하고자 했기에 그 기간동안 내가 서울에 갈 수 있는 그럴듯한 직업이 필요했다. 그렇게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즈음 나는 연기학원에 등록했고, 오디션을 보고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물아홉, 늦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내 선에서는 최대한 빨리 이룬 꿈이었다. 몰래, 그리고 겉으로는 그럴듯한 직장을 유지한 채 말이다. 물론 두 개를 병행할 수 없어 결국엔 승무원을 그만두고 극단에서 연기수업에 몰두하였는데 연기수업을 받았던 그 6개월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가슴 설레는 나날들이었다.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가슴이 설렜고, 극단에 가는 발걸음은 세상 가벼웠으며 내가 너무나 듣고 싶었던 연기 수업을 들을 때는 혼이 나더라도 기쁘고 행복했다. 그저 너무 배우고 싶은 연기를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어떠한 걱정이나 불안감 따위는 내 마음에 들어올 공간도 없이 나는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6개월의 연수기간을 마무리하는 공연을 위한 합숙을 앞둔 날 부모님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셨고, 이제 성인이 된 자식이 하고 싶다는 것 하겠다는 데 이렇게도 반대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거센 반대에 나는 또 한 번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는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의 반대에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나의 용기와 꿈에 대한 나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두 번의 꿈이 좌절된 후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남들 다 그렇게 사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영어 강사를 하며 지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 시간까지 오게 되었다. 나름 치열하게 지키고자 했지만 떠나보내야 했던 나의 꿈들.. 열매는커녕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하고 고이 묻어두기만 한 씨앗들을 내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욱 들여다볼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꿈을 이뤄주는 너무나 멋진 엄마의 아들에 대한 편지를 보며 나의 씨앗들이 반응했다. 그 씨앗들이 공명을 하며 나를 울렸고, 나 또한 나의 아이의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꿈을 지지해주는 그런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자신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 그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가장 괴로우면서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야. 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뱉어내지 않으면 더 괴롭기 때문에 뱉어내야만 하는 것이란다.


 오로지 자신이 되는 것.

 오로지 자신으로 사는 것.

 그것만을 위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디는 것이지.

 그렇게 꿈이란 세상에 드러낼 자신의 정체이며 현실은 꿈을 증명해 낸 결과란다.

 그러니 꿈이 네게 가는 것을 결코 막지 마. 나이와 상관없어. 죽기 직전에라도 꿈을 꿀 수 있거든.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양에 상관없이 꿀 수 있어. 머리로 재단하고 가슴에서 밀어내지 말고 아주 다양하고 많은 꿈을 꾸렴!!!"



 "그리고 또 하나, 모든 것을 무한으로 제공하는 자연이, 세상이 네게 원하는 게 있어. 딱 하나!

 더 큰 꿈으로 이어나가라는 것이다. 꿈꾸기를 멈추지 말고 네 속의 커다란 너를 계속 끄집어내어 세상을 더 이롭게, 조화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지속적으로 꿈을 꾸며 살라는 것이지. 이 단 하나가 무상으로 무한정받는 모든 보상에 대해 네가 치러야 할 대가야.

결국, 꿈을 이루는 것은 네가 세상에 빚진 채무를 갚아나가는 거야. 그러니,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것은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지, 네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란다."(주1)




 꿈을 좇으라는 책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원리로써, 이치로서 꿈을 이뤄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는 책은 없었다. 그저 내 인생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꿈을 좇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꿈을 이루는 것은 세상이 나에게 무한으로 준 보상에 대해 내가 갚아야 할 채무이며 대가이기에 내가 이 세상에서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온 나의 생을 걸고 이뤄내야만 하는 나의 의. 무. 인 것이었다.!!!!


아.... 이제 그 원리까지 제대로 알았으니 나는 다시 돌아간다.

어디로??

꿈이 있었던 그때로, 내 안에 나를 살게 하는 그 무언가가 나를 숨 쉬게 했던 그때로 말이다.

지금 내가 꾸는 꿈은 그때와 다른 꿈일 수 있고, 그때보다 크기또한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씨앗이 갖고 있는 힘 만은 그대로 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무언가가 되기를 기다리는 열망 또한 그대로 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나는 이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남들이 다 하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기에 나도 그래야 한다는 말도 안 되고 타당한 이유도 없는 억지의 말로 더 이상 나의 꿈을 피우지도 못한 채 두지 않을 것이다.

그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나온 세월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앞만 보고 달릴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제대로 된 부모로서, 제대로 된 어른으로서 내 아이의 꿈을 지켜주고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올바른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주1) 엄마의 유산, 김주원 지음, 건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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