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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주'다

by 해보름

미국의 초월주의 작가이자 철학가인 랄프 월도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에서 말한다.


"인간이 시간 측면에서, 그리고 정신에 미치는 영향의 주요 측면에서 무엇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점은 자연이며, 학자는 자연의 가치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또한 자연과 영혼 가운데 하나가 도장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도장이 찍힌 무늬이며,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법칙들은 인간 정신의 법칙들과 같으며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은 "자연을 공부하라!"는 의미와 같다(주1)"


그는 말한다. "인간은 대자연 속 원리를 깨우치며, 그 안에서 또한 나의 정신이 있음을, 그것은 곧 하나임을 이 전체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주2)".


우리 대부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나 하나 건사하며 살아가는 것도 벅차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분으로서의 나'가 아닌 '전체 속에 연결된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 우주의 한 조각임을 깨닫는 순간, 삶의 관점이 달라질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젤 앞에 앉아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고 난 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전체적인 구도에서 어긋난 부분이 눈에 띈다. 전체와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까이에서 그리고, 멀리서 나의 그림과 대상을 반복해서 살피고 바라보아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도 그러하다. 나에게 닥친 것을 내 시선에서만 바라본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큰 그림 즉, 자연과 그 모든 것은 순환한다는 순환의 원리, 계속성, 영속성의 측면에서 나는 이 우주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내가 맡은 역할은 무엇인지, 그 '전체'의 시선에서 스스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자연은 돌고 도는 순환을 반복한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며, 밤이 오고 별이 뜨며, 바람은 불고, 풀은 끊임없이 자라난다.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순환의 힘만 존재할 뿐이다. 이 순환의 힘 안에서 신비로운 생명의 원리가 존재하고, 그 힘에서 창조가 나온다.


나무의 라이프 사이클을 보자.

씨앗이 토양에 심어져 햇살과 물, 바람을 받으며 자라난다. 묘목이 되고 묘목은 더 커져서 작은 나무에서 큰 나무로 자라며,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꽃을 피우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안에는 다음 세대로 이어질 씨앗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씨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나무의 창조물이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다르지 않다.

우주는 오랜 시간 창조와 고통의 과정을 거쳐 우리를 탄생시켰고, 우리는 이 삶을 오롯이 살아내어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열매안에 있는 씨앗을 통해 다음 세대가 계승해 나갈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계주'이며 우리는 그 계주를 뛰고 있는 존재들이다. 나 하나의 인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바통을 이어받았고, 우리또한 또 누군가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뛰는 것만 본다면 단거리 경주일 수도 있고 좁은 시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저 단거리 경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큰 시야에서 보면, 우리는 나 다음에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계주를 우리 모두가 뛰는 주자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전체를 위해서 나의 구간을 잘 뛰어야 한다. 만약 멈추면, 내 뒤에 기다리는 수많은 주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지 못하게 된다. 내 인생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도 멈추게 되는 것이다.


나와 연결된 수많은 존재들, 이세상 모든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내 인생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대로, 쉽게 그리고 대충 살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우주와 이어진 소중한 매개자로서, 내가 이 세상에 와 해야할 나의 임무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데 조금도 미룸이 없이 멈춤도 없이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개미가 잠을 자지 않고 집을 짓고 먹이를 실어나르는 일,

거미가 끊임없이 거미줄을 짜내는 일,

물이 고이지 않고 쉼 없이 흐르며,

농부가 동트기 전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비교나 경쟁 없이, 내가 맺어야 할 열매’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온 우주와 사람들을 위한 일이자, 내가 이 세상에 와서 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일일 것이다.


나도 지금 이 새벽 시간 사유하고, 글을 쓰며 나만의 일을 해나간다.


그렇게 오늘도 쉼 없이 나의 구간을 달린다.

나 이전에 바통을 쥐고 달려준 이들을 기억하며,

내 뒤를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가장 나답게 살아가려는 ‘나 자신’을 위해서.




주 1,2> 자기 신뢰 철학, 랄프 월도 에머슨, 동서문화사



* 이전에 발행된 글을 다시 수정하여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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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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