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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Jun 13. 2023

모든 것을 초연하는 자세

세상을 통해 나 바라보기

 우리는 한국에 들어와서 어머니 소유의 투룸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몇 년 지낼 것이니 가족들 집에서 같이 지내는 건 아니었고, 전세나 월세로 지내야 하는데 전세나 매매나 큰 차이가 없는 요즈음 전세로 집을 구해 있는 것도 우리에겐 맞지 않았다. 월세로 방을 구해서 있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어머님이 갖고 계신 투룸 오피스텔에 사람들이 나가는 시기가 되어 우리를 위해 그곳을 쓰게 해 주셨다. 월세임에도 한국은 보증금을 내야 하지만 우리는 보증금은 내지 않고 월세만 드리는 걸로 해서 지내게 되었다. 투룸이라 평수는 작았지만, 두 살난 아이와 지내기엔 그리 작지만도 않았다. 그리고 신축에 근처에 백화점, 컨벤션 센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역의 관광명소인 시민광장이 있어 아이 키우기에도 거주하기에 너무나 편리하고 위치가 좋았다. 저녁에는 바로 앞에 음악분수에 걸어서 5분이면 음악분수 광장이 있고 축제도 자주 해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오는 곳을 우리는 5분 거리로 걸어가서 보고 즐길 수 있어서 모든 것이 만족이었다. 


 문제는 몇 개월 전쯤 발생했다. 투룸과 거실에 각각 방 천장에 시스템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데 언젠가부터 깜빡깜빡 불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몇 날 며칠 불이 밤낮으로 들어오니 신경이 쓰여 우리 오피스텔의 육아단톡방에 물어보았다. 이런 경우 있으셨는지.. 

 바로 답이 왔다. 다른 곳에서 차단기를 내려서 그럴 것이라고..


  '다른 집이 차단기를 내렸는데 우리 집 에어컨이 작동이 안 된다고?'


 이유인즉슨, 건설회사가 건설할 때에 오피스텔이고 평수가 작다 보니 큰 평수는 3집을 묶고, 작은 평수세대는 6집을 묶어 에어컨 실외기를 하나로 작동하게 한 것이 원인이었다. 비용절감과 에어컨 실외기가 차지하는 외부 면적을 줄이기 위함이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사실을 알지도 못했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 옆옆집에서 일주일에 3~4일씩 집을 비울 때마다 에어컨 차단기를 내려놓는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는..


 깜빡거려서 관리실에 문의를 해보니 답은 그러했다. 우리 옆옆집에 사람들이 일주일이 3~4일씩 집을 비우는데 비울 때마다 전기세를 절감하기 위해 에어컨 차단기를 내려놓고 간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에어컨 사용을 할 시기가 아니어서 그저 밤낮으로 깜빡거리는 게 신경 쓰일 뿐 다른 것은 불편한 것이 없어 몇 달간을 그냥 지내왔다. 그러다 여름이 다가오는 저번주부터는 슬슬 신경 쓰이는 걸 넘어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본인들 전기세를 얼마나 줄이겠다고 이렇게 다른 세대들에게 피해를 줘도 되는 거란 말인가?'


 어쨌거나 우리는 본격적으로 관리실을 상대로 컴플레인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온도에 민감한 두 살 아이는 비가 올 때는 습해서 잠을 뒤척이고,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니 창문을 열어놓으면 모기에 뜯기고, 엊그제 아침에는 너무 더워 아침부터 땀이 범벅이 돼서는 어린이집에 갔고, 그날 와서도 땀을 흘리며 잠을 자다 결국 감기에 들었다. 아직은 6월이라 에어컨을 틀지 않는 곳도 많지만, 우리는 오피스텔이다 보니 구조상 그리고 방향상 아파트 같지 않아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가 아니라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많이 더웠다. 더욱이 아이는 열이 민감해 돌 무렵 열경련도 심하게 와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터라 신랑과 나는 아이가 자는 밤에 온도를 적정으로 맞춰놓는 것에 큰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아직 더위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땀이 나서 감기에 걸리니 나는 마음이 더 급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해결이 됐는지, 관리소 측 대답은 그 세대분이 아무리 말을 하고 다른 세대에 피해를 주니 에어컨 차단기를 내려놓지 말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왜 본인들이 다른 세대들 때문에 전기세를 더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본인들은 쓰지도 않는 전기를 에어컨 차단기를 내리면 월 4000원이 절감되는데 그걸 왜 관리실에서 내줄 것도 아닌데 다른 세대들을 위해 올려놔야 하느냐고 한단다. (관리실측은 한 달에 그 차이가 800원 정도라고 하나 그 세대는 4000원이라고 한단다.) 듣는 나도, 말하는 관리실 소장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듣고 보니 너무 이기적이다 싶긴 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말도 어찌 보면 맞긴 했다. 본인들이 쓰지 않아 차단기를 내리는 것인데 그것을 다른 세대에게 피해가 간다고 올리면 자기들도 쓰지 않는 전기세를 내야 하는 것이니...

 문제는 이 에어컨을 여러 세대를 묶어 놓은 건설적인 부분에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제 와서 건설사에 소송을 걸 사안은 아니었다. 답답한 대로 나는 관리소장님에게 해결을 하시라고 이야기했다. 어찌 됐든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관리소 측에서 해결책을 내 달라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관리 안건에는 올려서 이미 공지를 해놓았지만 규약사항이 아니라 제재를 할 수 없기에 관리규약에 포함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걸리니 올해는 관리실 예산으로 그 아주머니에게 올여름까지의 차단기를 올렸을 때 나가는 비용만큼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였고, 이제는 마무리되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몇 시간 후 다시 소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 알았다. 이 일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관리소장 왈, 현금을 들고 그 세대를 방문했는데, 그 아주머니는 이제와서는 말을 바꾸더란다. 내가 그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아냐고?? ' 헉.. 뭐지? 분명 나도 돈 내는 것 때문에 차단기를 올리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돈 때문이 아니라니, 그럼 어쩌라는 건지..'

 어찌 됐든 소장님은 그분과는 이야기가 안 통한다며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이제 곧 주말이었다. 아이는 이미 감기에 걸려 이 더운 곳에 데리고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머님께 전화로 말씀드렸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우선 들어와 있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간단한 짐을 챙겨 시댁으로 갔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어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는 이것저것 챙길 게 있어 집에 들렀다. 집에서 나는 할 일 다 제쳐두고 변호사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아침부터, 아니 지난주부터 이 문제로 머리가 너무 아프다 보니 오늘을 머리가 지끈지끈 깨질 듯 아파왔다. 변호사의 대답도 관리실에서 규약사항에 만들어 넣을 때까지는 다른 제재를 할 방도가 없는 것 같다했다. 그렇게 또 허탈하고 혹시나 무슨 진전이 있나하여  걸었던 관리소장과의 통화는 역시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돌아왔다. 아침나절 해야 할 일도 못하고 매달렸건만 답은 없었다. 허탈하고 지쳤다. 그때 고개를 들어 에어컨을 보니 '어라? 깜빡이는 게 사라졌네?'


 나는 에어컨을 틀어보았다. 작동을 한다. 

 ' 뭐지?' 

 불과 오늘 아침에도 관리소장이 전화를 해서 옆집에 아이가 피해를 보고 병원에 가고 힘들어하니 차단기를 올려달라고 부탁하자 협박하지 말라며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며 끊었다는데 이건 뭔가 싶었다. 그렇게 말하고 틀어놓은 건가? 알 수는 없었다. '한 치 앞 나의 속도 모르는 데 남의 속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저 며칠을 이 문제로 해야 할 일도 못해가며 골머리를 썩고 난 결말이 이거였나? 싶어 허탈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건들지 말고 반응하지도 말고 있었어야 했나? 모든 일은 자기 길로 알아서 가고 해결이 될 터이니 그 과정에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무슨 소용이었나 싶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왈가왈부하는 것이 그 일이 가는 과정, 해결의 과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싶다. 그 아주머니는 어쩌면 여름철에는 알아서 에어컨차단기를 올리려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괜히 나서서 이야기하는 통에 서로 스트레스만 쌓인 게 아닌 것인지?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그 일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을 진대 그 과정에서 세상과 씨름하는 게 과연 필요가 있는 일인 것일까?' 나는 그저 나의 일을 하면 그 일도 그 일의 방향으로 모든 일은 각기 그 일이 가야 하는 곳으로 알아서 흘러갈진대 사람들은 그 옆에서 그 길로 가면 안 된다, 이쪽으로 가야 한다, 저쪽으로 가야 한다 이야기한다 해서 그 일이 자기가 가는 방향을 틀 것인가라는 생각이 말이다. 물론 트는 경우도 있다. 큰 권력으로,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일이 가는 방향이 바꾸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올바른 방향인 것일까? 그들이 그들의 이익과 목적에 맞게 일을 바꾼 것일 뿐, 그 일이 원래 그 방향으로 향할 거라는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에 초연해야 함을 이번 일로 인해서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세상에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지나갈 일은 지나간다. 이렇게 엮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맞지 않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영향이 있다는 원리를 알아보려 하는 나에게는 이 일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일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일이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널뛰기를 할 때 내가 그 널 위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방해받지 않고 그 널 한가운데에서 양쪽 널이 위, 아래로 뛰는 것을 초연한 상태로 바라보는 힘, 그 중용의 힘과 모든 일은 그 일이 가는 방향으로 알아서 흘러가니 그것을 어떻게 하고자 하지 말고 그저 가는 그 길을 초연한 자세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문제는 그것을 문제로 삼는 자에게만 문제가 된다. 그저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일들 중 하나이니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지나가게 하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그것은 나에게 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동네에 으르릉거리는 개에게 같이 맞서서 으르릉대는 것은 더 그 개의 공격성만 가중시킬 뿐이다. 미친개일수록 더하다. 사실 그 개는 소동부릴 만한 대상을 찾아다닌다. 그러니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적할 이유가 없다. 그저 무시하고 지나가면 개는 짖다가 스스로 멈출것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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