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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Jun 09. 2023

못난 나를 드러내자.

오늘도 한걸음 나에게 다가가기

신혼 초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한 달간 오셨었다. 내가 신랑과 결혼하기 전부터 시부모님은 매년 뉴질랜드에 오셔서 한 달 정도 아들집에서 머무시며 지내다 가셨다고 한다. 그러니 결혼하고 나서도 오시는 건 그분들에게 당연(?) 하신 것이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는 나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신랑부모님이 오신다는데 어떡하겠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내가 결혼하고 처음 오시는 거니 무언가 신랑이 혼자 살 때와는 다른 것을 보여드리리라 생각했었다. 나름 며느리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부모님이 뉴질랜드에 오셨고 우리는 한 달여를 한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다행히 이사를 간 터여서 방도 두 개 화장실도 두 개인지라 그 점에서는 불편한 점은 없었다. 부딪히는 공간은 주방과 거실이었다. 내가 그 당시에 일을 하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평일 낮에는 혼자 거실에서 차도 마시면서 티브이 뉴스나 드라마를 보며 영어공부를 하기도, 가끔은 한국드라마를 보기도 가끔은 동네 친구들을 불러 커피 한잔을 하기도 하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던 곳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두, 세 번 골프를 가실 때를 제외하고는 아버님은 거실에 나와 영화시청을 하셨다. 퇴직 전 방송 쪽에서 근무하셨던 아버님은 유독 영화와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뉴스도 빼놓지 않고 시청하셨다. 근데 문제는 너무 많이 보시는 거였다. 하루에 2,3편에서 많게는 4,5편을 연달아 점심 먹고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그티브이를 보시며 거실을 차지(?) 하시고 계셨다. 소음도 온전히 나와 어머님의 몫이었다. 액션영화나 추격장면이 나오는 영화일 때는 볼륨을 더 크게 해 놓으셨는데 내 방안에도 다 들릴 정도이니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간혹 참다못한 어머님이 '소리 좀 줄이세요.'라는 말에 버럭 하시는 아버님을 보면 나는 더더욱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주말 아침에 침대배달이 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 신랑과 나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거실에 계셨던 아버님이 현관문을 여셨는데 외국인이 뭐라고 하니 급히 우리 방문을 두드리셨다. 그 소리에 급히 일어나 신랑이 밖으로 나고 나는 일어나서 옷도 갈아입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매만지고 나서 밖에 나갔다. 이미 침대는 안으로 들여진 후였다. 배달기사들은 돌아가고 우리 모두 거실에 모여있는데 아버님이 한마디 하셨다.

 " 하여튼 잠은 많아가지고."


순간 나는 '설마 나한테 하신 말씀인가?' 싶어 머리가 멍했다. 어머님은 이미 일어나 계셨고 신랑도 아버님 소리에 바로 일어나나 갔고 그렇다면 그 얘기는 나에게 한 말씀이셨다. 그렇지만 그 어떤 대꾸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불편한 마음에 오후쯤 돼서 신랑과 둘만 있을 때 신랑에게 말했다.

" 자기야, 들었지? 아버님이 나한테 잠 많다고 하신 거?"

" 응, 근데 그거 엄마한테 말한 거 같은데?"

" 무슨 소리야?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셨는데?"


 신랑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며, 아버님이 그냥 말한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리고 그 후로 나는 아버님의 그 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낮에 잠이 와도 낮편히 잘 수 없었고 아침에도 아버님이 일어나 계시면 부리나케 일어나서 거실로 나와 내가 늦게까지 자지 않음을 증명(?) 해 보이고자 부단히 도 애썼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또 말씀은 안 하셨지만 무언가 내가 마음에 안 드시는 모습이 있을까 어머님아버님이 집안에 계시는 동안 온 신경이 어머님아버님께 가있다 보니 내 방에서 무언가를 한다 해도 맘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나는 신경성 위염이 심해졌고 음식이 소화가 안 돼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조차도 나는 어머님, 아버님에게 맞추고자 나는 먹지도 못하는 식사를 차려드리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착하다는 게 뭐길래, 인정받는다는 게 뭐길래 그것들을 위해 나를 버리고 남한테만 맞춰 지내면 되는 걸까?'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결국 그 부조화는 나에게로 돌아왔고 나 자신의 몸에 병을 나았다. 그것은 나 자신으로서 살지 못한 나의 죗값이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아버님이 잠 많다고 한 거지 잠을 많이 자지 말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고, 두 분 식사를 나한테 차려달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나중에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 시부모님들은 정말로 본인들을 위해 내가 식사를 차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그저 나 혼자 나만의 생각으로 '그들의 기대가 이럴 것이니 나는 그 기대에 맞춰야 돼.' 라며 내 안의 나의 모습을 점점 깎아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잠이 많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여드리면 되는 거였다. 그것이 죄가 아니었다. 왜 그땐 나에게 그렇게 당당하지 못했을까, 며느리면 죄지은 게 없어도 주눅 들어있어야 한다고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나 스스로 그렇게 지내왔던 걸까? 며느리여서가 아니라 그저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바꾸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것은 내 안의 나의 진짜모습은 잘못된 것이라고 나 스스로 나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모든 이에게 인정받을 수 없음을. 그것은 나의 욕심이자 이기심이자 이루어질 수 없는 과대망상임을.. 많은 이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예수님도 하물며 그를 해하고자 하는 반대파가 있었는데 하물며 나는 뭐라고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으려 했던 것일까?


 그저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못난 모습은 못난 모습 그대로 잘난 모습은 잘난 모습 그대로 가감 없이, 나 그 자체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이와 합일에 이르는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못난 나를 드러내자. 그러면 나는 더 잘나질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나를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아줄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만이 서로 사이에 거품이나 포장이 사라져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초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다.


 " OO 아, 시어른들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면 돼. 더 잘하려고 애쓰면 너만 힘들어지고 시부모님들도 결국엔 그것이 너의 진짜 모습이 아닌 걸 아시게 될 거야. 그러니 처음부터 너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드려. 그게 서로 잘 지내는 방법이야."

 

 그것은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중 10년 넘게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다섯 명의 손위시누이들과 지내며 깨달았을 엄마의 삶의 지혜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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