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채소 + 소금
몇 해 전 없어졌지만 동네에 독특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레몬을 이용한 무언가 들을 만들어내던 사장님은 '세상에 없던 맛'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다양한 메뉴를 적어놓았었는데 아쉽게도 지금, 특별하게 생각나는 것은 없다. 무난한 레모네이드만 먹어봤을 뿐 다른 것은 시도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가게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동네 산책길의 재미있는 풍경 중 하나였는데 오래 버티어주기를 바랐지만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은 그 메뉴판에 있었을 법한 '신'메뉴를 만들었기 때문에 적어본다.
주말에 만들어 먹은 메밀 소바 재료로 사놓은 무가 있어서 무를 썰고, 자투리 채소들을 모아 소금에 절여서 물김치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번 오이미역냉국을 시작으로 간단 물김치에 대한 나의 자신감이 꺾일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어서 이건 일도 아니게 느껴졌다. 그래서 눈길이 닿은 레몬을 한 조각 넣은 것은 물 흐르듯 매끄러운 움직임이다. 레몬 카페 사장님은 이런 기분으로 실험을 계속했던 것일까. 무, 마늘, 양파, 오이, 고추, 레몬 몇 조각씩 넣고 소금으로 버무리고 상온에 세 시간 두었다가 생수를 붓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저녁에 꺼내 먹었는데, 간간하고 김치와 냉국을 오가면서 레몬 맛이 잘 어울리는 게 가볍게 먹기 좋은 여름 메뉴가 되었다. 소금에 더 절이고 며칠을 익혀서 김치에 가까워져도 좋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도 만족한다. 묵은 김장김치와 장아찌가 있어서 한 상 차림에서는 균형이 맞춰진 것 같다. 두 끼 먹을 분량이 되었는데 다음에 먹은 것이 맛들이 잘 베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