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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태

by 고양이삼거리

서랍을 열고 흰 비닐봉지에 담긴 서리태를 한주먹 쥐어서 사기그릇에 담았다, 촤르르. 물을 적당히 채우면 준비가 끝난다. 10분쯤 지났을까, 동그란 검은 콩이 물을 머금기 시작하고 껍질이 먼저 불려지면서 자글자글하게 주름 잡히다가, 또 10분쯤 지나서 ‘이제 밥 해야 하는데’하고 돌아보면 그제야 붉은 기운을 내뿜으면서 둥그런 축을 따라 통통해지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따로 불리고 있던 쌀을 냄비에 안치고 콩을 얹는다.


불을 켜고 기다린다.


그러면 그 안에서, 서리 맞으며 꼬투리 안에서, 달그락 소리 내며 단단해진 것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냄비 안에서 제 모양을 찾아낸다. 살짝 껍질이 벌어지면서 드러난 초록의 결이 그의 본모습, 사람들은 속청이라고도 불렀다. 채소도 아닌 것이 푸르디푸르고 말려서 가루 내어도 쓰고 고소한 게 곡물인가 싶지만 풋풋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콩이라는 것이 가진 독특함, 그중에서도 이 서리태의 매력에 빠져서 며칠째 밥을 해서 입에 넣고 꾸욱 눌러보며 오물거리고 있다, 씨앗이기도 하고 열매이기도 하고. 붉은 기운은 어느새인가 ‘청’ 보랏빛이 되어서 밥을 물들였다, 희한하다. 옛사람들이 붙인 이름에서부터 그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준다, 서리 맞은 ‘太 태‘, 장 만들고 두부 만드는 일은 중요하지. 좋은 거라며 한 봉지 가방에 넣어 준 아빠 때문이었나 이 콩 밥 한 그릇에 담긴 것들은 따라갈수록 깊어진다. 그것이 네 안에서도 고스란히 힘내기를 바란다, 서리태 밥 한 그릇.


서리태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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