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마루

by 고양이삼거리

이어 쓰는 글


이번 숙소는 꽤 긴,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고요하고 어둑한 길을 걷는 것이 조심스러웠는데 굽은 길을 돌자 환영의 전구를 밝힌 대문이 보였다. '저기닷.' 문 앞에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도착했습니다!' '잠시만 계세요.' 저-쪽 골목 끝집 대문이 열리고 밝은 목소리의 호스트와 인사를 나눴다. 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면 문이 열리고 우리는 집을 안내받는다, 이어지는 '집 사용법'.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오른쪽 방을 쓰시면 됩니다.

공용부엌은 이쪽에 있습니다.

온도 조절기는 여기 있어요.


따뜻한 실내에 들어서서 툇마루 사이 현관에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을 밟아서자 안도와 편안함이 밀려들며 자연스레 집에 대한 애정이 흘러나와 몸과 마음을 녹이고 우리 모두 오늘은 어디에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r은 벌써부터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들어가 쉬고 있고 나는 공용거실에 있는 마당이 보이는 테이블 한편에 평소 좋아하던 만화책 시리즈가 잔뜩 꽂혀 있는 것을 보고는 몇 권 빌려와 바닥에 앉아서 보기 시작했다, j는 느긋하게 믹스커피 한 봉을 타서 마시고 마당을 둘러보고 있다. 나는 사실 저번에 바닥 재료에 대한 글을 던져놓고 마루 바닥의 느낌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애를 먹던 차였는데 양말을 벗고 실내에서 발 디딘 나무 마루의 매끈하면서도 고요한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난방의 열기는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의 재료가 주는 나무가 주는 따스한 감촉은 다르다. 발을 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두터운 재료의 특성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복도와 공용부엌, 거실에만 마루 마감이 되어있다. '이곳은 모두의 공간입니다.' 작은 공용거실에는 길고 낮은 탁자가 자리 잡았고 방석이 놓여있다. 아무리 그래도 개구쟁이 꼬마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웃방 문 앞에서 총총총 걷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방 안은 장판으로 되어있었는데 온돌바닥의 따끈함을 잘 전달해 주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계량형 한옥, 대추나무집은 마루를 가진 집이었다. 여기서의 마루는 재료 나무 마루와 대청, 큰 마루, 툇마루를 포함한 마루이다. 여름에는 마당에서 놀다가 마루에 올라가 물에 만 밥을 한 숟가락 물고 놀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곳은 경계가 없다. 햇살이 들어오는 나무 바닥에 드러눕는 일은 일상사고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상하는 모든 일은 마루에서 이뤄졌으나 한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가래떡 썰고 김장무 썰고 김 재우는 일 등이 모두 방에서 벌어졌다.


그다음 2층 양옥주택에 살 적에도 마루가 있었으나 실내 거실에 재료로써 바닥난방하지 않고 마루를 깔았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부엌과 거실 사이에 열대어를 키우는 커다란 수족관이 있었는데 한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수족관을 보온재로 꽁꽁 감싸주었고 그 옆에서 밥을 먹으면서 프레임에 맺힌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곤 했다. 그리 따뜻한 기억은 아니다. 게다가 그 집은 현관문이 새시에 끼워진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겨울에는 문틀 주위가 얼어서 문 열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은 억지로 힘을 주다가 유리가 깨지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마루를 철거하고 바닥난방공사를 해서 모노륨을 깔았는데 마루만 시공을 해서, 바닥 시멘트 양생기간 동안 현관을 열고 길게 이어진 나무널빤지를 밟으면서 방으로 들어갔었다. 방 앞에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꽤 이런 낯선 경험을 재밌게 즐겼던 것 같다. 어느 시기, 한옥에서 양옥으로의 변화에서 거실, 마루에 대한 개념이 애매하게 작용하던 때였었나 보다.


그다음 1990년대의 신축 아파트에서는 조금 재밌었던 것이 기본 옵션이었는지 우리 윤여사님의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의 바닥 마감이 종이로 되어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칠을 해서 관리했고, 만들고 수선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 때문이었는지 꾀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사용했는데 그 특유의 광택 있고 오래된 질감이 좋았다. 전지 사이즈의 종이가 겹쳐진 부분들이 격자로 드러났고 새로 한 부분은 다른 톤을 띄었다. 어릴 적 옛날 집에서는 주기적으로 창호지의 종이를 새로 붙이는, 집을 수선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런, 청소나 정리가 아니라 뭔가 집을 꾸준하게 손대며 관리하는, 이어지고 있는 작업이 하나 있었던 샘이다.


바닥에 대한 얘기들을 시작하니까 짧게 끝내기가 어렵다. 오래전에 건축가가 설계한 2층집이었던 큰 이모네 집 실내 계단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그 생소한 분위기가 좋아서 바닥에서 오르내리며 종일 놀았던 일부터 다른 여행지에서 경험한 집들, 운 좋게 답사할 기회가 있었던 외국 건축가의 주택들로도 이어진다.


사실 내가 이 연재글을 시작한 것은 새로 이사 온 집에 대한 약간의 불만 섞인, 재료들에 대한 관찰과 생활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생각나는 대로 바닥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 놓고 있는 지금, 나의 집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하고 있는 보통 재료들의 레시피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은 언젠가 시장에서 재철 재료를 사서 내 부엌에서 단순한 방법으로 맛을 살리는 따뜻한 식탁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같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보통의 재료들이 만들어낸 반짝이는 순간들.


집에서 바닥 재료는 집 구조의 일부이자 공간의 경계이고, 난방설비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건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이고 그에 맞춰 놓이는 가구들과 기기, 특히 잠자리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목화솜 요를 바닥에 깔거나 대 자리를 펼치고, 그때의 낮은 가구들은 이불 올리기에 알맞았다, 침대가 놓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매트리스 위에 다시, 전기장판이 올라가기도 한다, 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따끈한 돌침대라는 것도 있다. 예전에는 흔하던 목화솜 요였는데 요즘은 침대를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토퍼를 쓰기도 해서 이불 매장에서도 볼 수 있는 곳이 드물고 인터넷에서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 상업공간의 인테리어 자재가 들어온 집을 보기도 하는데 보이는 것뿐 아니라 내가 맨발로 디디는 공간의 밀접함에 대해서 충분히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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